[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김명준 <우리학교> 감독
2007-05-11
글 : 오정연
아마드에게 쓰는 답장

고마운 아마드에게.
안녕 아마드. 이렇게 너의 이름을 부르니 조금은 어색하구나. 너는 멀리 이란의 작은 시골에 사는 소년이었고 난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분단된 나라 코리아에 사는 영화감독이고.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는데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어색하네. 그래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생각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의 이유가 있단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은 사라진 동숭씨네마텍라는 한국의 작은 극장이었어. 그 극장의 작은 영사막 속에 너의 착한 눈빛이 빛나고 있었지. 너는 이란의 가난한 시골에 살고 있는 조그만 아이였지만, 너의 동무를 생각하는 그 착한 마음씨가 나의 가슴을 때리고 심장을 흔들어놓았지.

당시 나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단다. 워낙 늦게 시작한 공부여서인지 후배들의 작품활동에 늘 따라다니면서 조명기를 나르고 전선을 정리하면서 영화를 배웠어. 그렇게 영화는 남들이 잠자는 밤에 환한 조명등을 켜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어느 날 영화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게 됐었지. 누구나 그렇지 않겠어? 뭔가를 즐거워서 신나서 하다가도 그게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되는 때가 오겠지. 그래서 정리를 해야만 하는 거겠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일까?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 잘할 수 있고, 내가 해서 행복한 일이 되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 말이야.

나는 그때 한참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영화감독이 되고 자기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지. 그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어떤 영화는 내 마음에 들고 또 어떤 것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또 어떤 것은 보고 나면 극장을 나오는 순간 그냥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럼 나는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자꾸 이런 질문을 하면서 괴롭히고 있었어. 그리고 그때 우연히도 너가 출연하고 있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저씨의 영화를 보게 된 거야. 그 영화에 출연하는 너는 우연히 자기 가방에 들어 있던 친구의 숙제장을 보고, 안 그래도 숙제 때문에 선생님에게 항상 야단맞는 그 친구에게 숙제장을 돌려주기 위해 먼 길을 걸어서 친구의 집을 찾아갔지. 처음 가는 친구의 집이라 몇번이고 허탕을 치고, 중간에는 자기 마음도 알아주지 않는 무심한 어른들이 방해를 하기도 하지. 그래도 우리 아마드는 열심히 친구 집을 찾았는데, 가엾게도 밤이 깊을 때까지 친구를 만나지는 못했어. 착한 아마드는 빵 심부름을 시켰던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친구를 위해서 숙제를 대신해주었다는 이야기.

아마드야,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매면서 보여주었던 너의 눈빛, 너의 표정에는 ‘친구의 숙제장을 돌려주어야 해, 친구가 한번만 더 숙제를 안 해오면 선생님께 퇴학당해, 퇴학당하게 해서는 안 돼’라고 쓰여 있었지. 그 맑은 눈망울에 담긴 착한 마음씨. 별 대사도 없고, 신나는 이야깃거리도 없고, 특별한 촬영술, 편집술도 없었지만, 이 영화는 너의 고운 마음씨가 지구 반대편의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

그때 극장 밖을 나오는 내 얼굴에는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피어 있었단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질문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한꺼번에 풀려버렸기 때문이지. 아… 영화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구나. 저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한 인간의 고민을 풀어주는구나. 나는 그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아저씨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생각을 했지 뭐니. 너무 어려워 말고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그렇게 영화를 하는 거야. 영화는 일기와는 다른 거야. 일기는 혼자서 읽고 혼자서 이해하면 되지만, 편지는 누군가 읽어주는 사람이 있지 않니. 그러니까 문법도, 글씨도, 편지지도, 편지봉투도 정성들여서 준비해야 해, 그리고는 이 편지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쓰는 거야. 너무 자기 이야기만 해서도 안 돼, 상대의 안부도 물어주어야 하지. 상대가 편지를 읽으면서 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너무 어려워도 안 되는 거야.

아마드와 키아로스타미 아저씨가 나에게 보내준 편지. 그 편지를 읽고 나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단다. 그리고 그 뒤 어떻게 영화를 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보아야 할지 더이상 고민하지 않았어. 물론 그 뒤로 나에게 편지처럼 말 걸어주었던 영화가 몇편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마드야, 더 많은 이야기해주고 싶고, 너가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도 너무 궁금하지만 그만 줄여야겠다. 잘 지내야 해. 건강하고. 키아로스타미 아저씨에게도 안부 전해줘.
2007년 봄. 김명준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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