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배우이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특별한 거다
2007-05-16
글 : 문석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세븐데이즈>로 2년 만에 돌아온 김윤진

“놀리시는 거죠?” 첫인사를 나누며 ‘월드스타’라고 불렀더니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김윤진은 “일부러 놀리려고 혀를 굴려서 ‘워어ㄹ드 스타ㄹ’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쩔 건가. 김윤진은 실제로 월드스타인 것을. 2004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로스트>에서 선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 그는 MSN이 뽑은 ‘세계의 미녀 22인’으로 꼽혔을 뿐 아니라 <인 스타일> <맥심> <아레나> <TV가이드> <스터프> 등 유명 잡지의 표지와 화보에 자신의 모습을 선보였다. <로스트>의 세 번째 시즌 촬영을 막 마친 그는 <세븐데이즈>라는 영화를 찍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괴당한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한 살인범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역할을 맡은 그는 남편의 말에 순종적인 <로스트> 속 ‘해변의 여인’에서 역동적인 여성 캐릭터로 돌아온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였다.

-한국에는 얼마 만에 온 것인가.
=지난해 여름에 잠깐 들렀고, <세븐데이즈> 때문에 한달쯤 전에 며칠 왔다간 적이 있다. 오래 머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로스트> 한 시즌을 찍는 게 보통 9개월 반에서 10개월가량 걸리는데, 촬영이 끝나면 한국에 온다. <로스트>의 이번 3시즌 촬영은 불과 일주일 전에 마쳤고 한국에 들어온 지는 한 5일 정도 된다.

-<6월의 일기> 이후 2년 만의 영화인데 부담되지는 않나.
=오랜만에 찍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 때문에 부담된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무서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끌고 가는 큰 배역이라서 말이다. <밀애>도 비슷했지만, 대사는 별로 없었잖나. 이번에는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유능한 변호사 역인데, 미국에서 계속 활동하다보니 혀도 꼬부라진 것 같다. (웃음) 한마디로 겁이 나더라. 그리고 그렇게 겁이 나서 이 영화를 하기로 했다. <로스트>에서 3년 동안 같은 역할을 하다보니 선이라는 캐릭터가 일상이 된 것 같다. 게다가 계속 같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니 촬영장에 가도 긴장을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세븐데이즈>의 대본을 보니까 ‘아, 이런 게 영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 소식이 미국 언론에 날 정도로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굳이 한국영화에 출연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내가 한국 영화배우이기 때문에 <로스트>에 캐스팅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 배우니까 한국말을 하는 캐릭터가 된 것 아닌가. 만약 한국 활동을 포기하면 할리우드에서 나는 더이상 특별한 배우가 아니다. 내게는 한국과 미국, 양쪽이 다 필요하다. 그래야 지탱되는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좋은 남자친구가 두명 있는데, 여기서 질리면 살짝 이쪽으로 갔다가 거기서 질리면 다시 저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고보니, 미국에서 한 여러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를 남자친구에 비교했다.
=윌리엄 모리스와 에이전시 계약을 할 때 한 간부급 에이전트가 그런 말을 해줬다. 할리우드를 남자친구 대하듯 하라고.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서 그러려면 좀 바쁜 척하고 피하기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영화사와 미팅을 하더라도 한국에서도 바쁘니 여기서는 3주밖에 스케줄이 없다고 한다면, 스케줄을 연필로 잡는 게 아니라 볼펜으로 잡을 것 아닌가. 그것이 내 나름의 전략이다. 그래서 미국에 간 초반에는 일도 없으면서 그냥 한국을 왔다갔다했다. 그러니까 남자친구를 사귀듯 튕기고, 잘난 척, 바쁜 척했다. 늘 ‘나 한가해요’, 그러면 좀 그렇잖나. (웃음)

-<세븐데이즈>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
=약간 걱정이 된 점은 <6월의 일기>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질은 다르더라. 그리고 원신연 감독님의 <구타유발자들>을 보고 믿음이 생겼다. 폭력이 많은 것도 아닌데도 공포감을 주잖나. 이를테면 이문식씨가 안 익은 삼겹살을 억지로 먹이는 장면이라든가. 이게 기술이더라.

-캐릭터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했나.
=시나리오를 받은 게 불과 한달 반 전 정도다. 그땐 <로스트>를 촬영하는 도중이었는데, 대본을 받고 2주쯤 뒤 아주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감독님도 안 뵙고 출연을 결정할 수야 없잖나. 어쨌건 영화를 하기 전에 감독님은 몇번쯤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븐데이즈>에서 가장 큰 도전이라고 생각되는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법정장면이다. 법정에 가본 적도 없다. 그건 좋은 일이지만(웃음), 감독님이 대본을 쓰기 전에 법정을 가봤더니 생각보다 아주 일상적이란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딱딱하거나 격식을 차리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장르영화니까 너무 딱딱하지는 않아도 영화적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법정용어를 구사하는 것도 어려울 법하다. 설경구도 <공공의 적2> 때 고생했다고 하더라.
=고민이다. <로스트> 촬영 때 대본을 그냥 읽는데도 말이 안 붙었다. 겁이 나고 울렁증 같은 게 생기더라. 정말이지 대사로 이렇게까지 버벅대는 건 처음이다. (설)경구 오빠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도 힘들다는데, 나처럼 버터와 김치가 섞인 혀를 가진 사람은 오죽하겠나. (웃음)

-몸을 직접 쓰는 액션연기를 해야 한다.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그동안 액션연기를 그리 많이 한 것도 아니잖나.
=이번 영화에서는 총 들고 이러는 게 아니라 그냥 달리고 비 맞고 이런 게 액션이라면 액션이다. 하긴, 여전사 이미지를 심어준 <쉬리>에서도 초반부 액션은 다른 배우가 해주셨으니까. <단적비연수> 때는 액션을 많이 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되더라. (웃음) 말 타고 활 쏘는 훈련까지 받았는데 현장에 막상 가니까 말이 너무 늙어서 못 달린다고 하기도 했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했고, 기본적으로 달리기와 수영을 좋아하긴 했지만, 액션 트레이닝을 한 것은 <쉬리> 때부터다.

-<밀양>의 전도연은 유괴범한테 전화를 받는 장면이 난감했다고 한다. 자신이 부모가 아니라서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신은 어떤가.
=나는… 유괴범에게 전화받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온다. 너무 바빠서 <그놈 목소리>도 못 봤고, <밀양>도 못 봤는데, 기회가 닿으면 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30대 여배우가 할 수 있는 배역이란 게 불륜 아니면 유괴 아닌가 하고. (웃음) 그게 가장 드라마틱하니까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남자주인공의 여자친구를 맡기에는 나이가 많으니까.

-할리우드는 사정이 좀 다를까.
=영화보다 TV는 여성의 활동 폭이 넓다. 한 드라마 안에서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그런데 영화는 정말 남자 위주인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여자만의 이야기든가. 사실, 한국에서는 왜 이리 여배우들이 맡을 역할이 없냐고 불만이 많았는데, 미국에 가서 대본을 받아보니 거기도 마찬가지더라.

-<세븐데이즈>의 촬영은 언제쯤 끝나나. 그리고 <로스트> 네 번째 시즌은 언제부터 촬영에 들어가나.
=7월 말까지는 끝나야 한다. <로스트> 촬영이 8월 첫쨋주부터 잡혀 있다.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로스트>는 너무 편해서 괜찮을 것 같다.

-도대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미친 거 아냐?’란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그 얘기라면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들었다. 특히 여기 앉아 있는 매니저에게서. (웃음) 어릴 때부터 할리우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꼭 추진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청룡영화상이었다. <밀애>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나 혼자서.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어떻게 ABC 전속계약까지 이뤄냈나.
=처음에는 에이전트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큰 에이전시 4군데와 작은 곳 몇 군데와 만났는데, CAA나 UTA, 패러다임 등의 에이전시가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윌리엄 모리스와 계약을 한 것은 아시아 여배우로 유명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쯔이가 있긴 한데 나보다 나중에 들어왔다. ABC의 캐스팅을 총괄하는 분은 영화사 관계자들을 만나는 도중 접하게 됐다. 그런데 ABC에서 이틀 뒤에 1년간 전속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결국 2004년 1월 계약을 맺었다.

-전속 계약금은 얼마였나.
=30만달러였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굉장히 큰 금액을 받게 된 셈이다. <로스트>는 점점 출연료가 늘어나 지금은 편당 10만달러를 받는다. 재방송할 때도 회당 수천달러씩 받는다. 그런데 미국 정부에 내는 세금이 40%다. 거기에 하와이에서 촬영한다는 이유로 하와이주에 세금을 내야 한다.

-안면마비로 고생한 것도 그즈음 아닌가.
=ABC와 전속계약을 맺기로 합의를 보고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얼굴이 마비됐다. 이를 닦는데 한쪽으로 물이 질질 흐르고 힘을 안 주면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 놀랐고 아찔했다. 병원에 4일 정도 입원하기도 했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낫지 않았다. 너무 절실한 마음에 인터넷에 적혀 있는 민간요법으로 닭피나 미꾸라지도 갈아서 얼굴에 발랐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결국 내 의지였던 것 같다. 결국 한달 반 정도 만에 다 나았는데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로스트>의 출연은 어떻게 이뤄졌나.
=제작진한테서 오디션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파일럿 에피소드의 시나리오 안에는 내가 맡을 역할이 없었다. 그런데도 주인공인 케이트 역할로 오디션을 본 것은 이런 기회를 자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J. J. 에이브럼스를 만나두면 좋을 것이라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다. 에이브럼스는 재미동포가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미국에서 활동하게 된 이야기를 궁금해하더라. 바로 그날 전화가 걸려왔다. 나를 위한 배역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선이다. 3일 뒤에는 내 파트너인 진 역할을 만들었다고 연락이 왔다. 정말이지 어리둥절했다.

-혹시 왜 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지에 관해서는 들었나.
=J. J. 에이브럼스한테 들어보니, 생존자들 안에 말을 못하는 여자가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디션을 하고 나서, ‘아, 쟤가 한국말을 하지. 그럼 한국 여자로 하자’고 결론냈다는 거다. 더 나아가서 ‘그런데 이 여자는 어떻게 소통을 할까. 파트너를 만들어주자’, 그렇게 해서 진이 만들어졌단다.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로스트>는 리얼리티쇼 <서바이버>와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결합된 듯한 드라마다. 그러니 <서바이버>처럼 언제든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법하다.
=그렇다. 시즌1에서 분이라는 캐릭터처럼 언제든 죽는 설정이 될 수 있다. 아직 말해줄 순 없지만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 한명이 죽는다. 우리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은 ‘퇴장하는 건 좋은데 부디 미리 알려주기나 해달라’고 제작진에 부탁하곤 하는데, 비밀 유지를 고민하는 제작진은 불과 2주 전에 통보한다.

-선의 임신은 어떤 변수가 될까.
=그 섬에서 임신하면 임산부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선의 삶도 한두달 정도 남은 셈이다. 하지만 걱정하진 말아라. <로스트>의 두달은 시즌으로 치면 3개 정도 되니까. (웃음)

-<로스트> 속 당신은 한국에서와는 정반대로 순종적인 여인이다. 불만은 없나.
=처음에는 아주 좋았다. 한국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잖나. 여성스러운 역할은 <밀애>가 처음이었는데, 그나마 굉장히 격정적이었잖나. 그런데 순종적인 여성 역할도 1년 정도 하니까 지겹더라. 나도 액션을 잘하는데, 왜 안 시켜줄까(웃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미 짜인 배역이니 어쩔 수 있나. 그리고 갑자기 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하면 오버잖나. 그래도 초반보다는 자기 의사를 분명히 이야기하는 역할이 됐다.

-그러면서도 <로스트> 안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섹시한 쪽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순종적인 여성이 조금 섹시한 분위기를 보여주면 ‘이런 모습 처음이야’, 이러면서 의외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동양 여자이기 때문에 좀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여러 잡지의 모델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 섹시한 이미지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나를 섹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기분이 좋다. 한국에서는 별로 누릴 수 없는, 그리고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영화에서는 대부분 노메이크업으로 나오는데 화보 촬영을 하면 화려한 변신을 할 수 있으니까. 사실, 한국에서는 그런 게 저질스럽다는 인식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비키니 입고 하는 것을 아무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상당히 많은 대목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뿌듯한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미국 내 활동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로스트>에서 한국어를 쓴 것은 나름의 자랑스러움으로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선과 진이 한국어를 쓰는 것은 제작진이 먼저 생각했지만, 플래시백 장면에서도 한국말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이디어를 줬다. 애초 제작진은 할리우드영화에서처럼 한두 마디만 한국어를 하고, 나머지는 영어로 하려고 했었다. 한국어를 쓰는 건 좋았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대본이 나왔는데 정말 영어를 기계적으로 한국말로 옮긴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번역해야 했다. 그리고 간판이나 표지판의 한국어도 내가 고쳐야 했다.

-얼마 전 <로스트>에 나온 작고 아담한 ‘한강대교’ 모습이 화제가 됐다.
=촬영 당시 나는 그 다리 위에 있어서 미처 보지 못했다가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든 장면을 하와이에서 찍다보니 벌어진 해프닝이다. 영국이나 이라크도 다 하와이에서 찍고 있으니까. 하와이에는 한강대교처럼 길고 멋진 다리가 없다.

-이제 유명 배우가 됐는데 파파라치가 따라다니지는 않나.
=일단 하와이에는 파파라치가 없다. 물가가 비싸잖나. 그러다가 LA에 가면 파파라치가 나타나는데, 나는 그들을 좋아한다. 어디에서든 그들을 만나면 ‘너 파파라치야? 예쁘게 찍어주세요’, 한다. (웃음) 파파라치에게 사진이 찍혀서 인터넷에 올라가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웃음) 그래서 <로스트>를 하와이가 아니라 LA에서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신기하잖나. (웃음)

-제임스 카메론과 어떤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카메론 감독이 현재 제작 중인 <아바타>의 시험화면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2005년 겨울인가 최첨단 CG를 영화사쪽에 보여주기 위해서 5분짜리 장면 두개를 미리 제작했는데, 그때 나를 캐스팅했다. 들어보니 <단적비연수>에서 활 쏘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이게 애니메이션이니까 내 얼굴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모션캡처를 위해서 온몸이 드러나는 슈트에 수천개의 점을 붙인 채 촬영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일주일 동안 촬영해 몹시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농담을 던지더라. “<쉬리>가 전세계에서 <타이타닉>을 이긴 유일한 영화인데, 이건 그에 대한 복수”라고. (웃음)

-<할리우드 플레이>라는 책도 썼다.
=출판사에서 제안이 들어왔는데, 한국말로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고민하다 결국 수락했다. 사실, 10살 때 미국으로 와서 한국말로 리포트 하나 써본 적이 없었다. 타자도 못 친다. 8개월 동안 독수리 타법으로 책을 썼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할리우드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것부터 그 과정을 적었는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던 아이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로스트>의 배역이 왜 이렇게 작아’, 이런 사치스런 얘기를 못하겠구나 하고 다시 느꼈다. 6월 초에 출간될 것 같다.

-이제는 어릴 적 품었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나.
=아직은 아니다. 꿈이란 게 한도 끝도 없잖나. 어차피 목표는 영화다. 지금도 큰 영화의 작은 역할은 들어오는데, 그래도 자존심이 있잖나. 한국에서 톱은 아니지만 주연으로 활동했던 배우인데 공리나 장쯔이보다 작은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빌리 밥 손튼과 <조지아 히트>란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기로 한 상태인데, 3년째 공전 상태다. 할리우드에서는 독립영화가 훨씬 투자를 받기 어렵다. 빌리 밥에 따르면, <몬스터 볼> 때도 예산이 40억원에 불과한데도 자신과 할리 베리만으로도 투자가 안 됐다고 한다. 나중에 히스 레저의 출연이 확정되고서야 투자가 됐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진짜 목표란 이런 거다. 나의 캐스팅으로 독립영화의 투자가 가능해지는 배우가 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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