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정치적 압제에 항거 <줄 위의 종달새>
2007-05-16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정치적 압제에 항거하는 자유분방한 리비도

역시, 이리 멘젤 감독은 리비도의 유머로 많은 걸 풀어낸다.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종교적 이유로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폐철처리장으로 끌려온 요리사 파벨과 체코를 뜨려고 하다가 국경에서 붙잡혀 감옥으로 온 뒤 폐철처리장에서 노역하는 이트카가 눈이 맞았다. 폐철을 녹여 쓸모있는 무언가로 재탄생시키는 이곳에서 파벨과 이트카는 ‘쓸모있는’ 인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들을 지도하는 당 간부는 유독 아이를 사랑한다. 그의 집에는 아이들이 들끓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사랑에 호응해야 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괴로움이 역력하다. 그는 모종의 장소에서 벌거벗은 여자아이를 손수 목욕시켜주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치르는데 그 도착적 천연덕스러움이 징그럽다.

강압적, 일방적 리비도가 풍요로운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스탈린식 공산주의는 이상향이 될 수 없다는 직접적 비유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촬영된 이 영화는 옛 소련의 무력 진압으로 체코가 다시 철의 장벽이 된 정세 역전을 맞이해 곧바로 상영금지됐다. 1990년 베를린영화제에서 21년 만에 첫 상영을 했고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나라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며 파벨과 이트카의 결혼을 주선하는 당 간부의 호의는 기이한 방식으로 풀려나간다. 파벨은 죄수 이트카 대신 노파를 대리 신부 삼아 결혼식을 올리고, 동료들이 폐철처리장에 꾸며준 신방에 들어가는 대신 더 센 인간 개조 노역장으로 끌려간다. 이리 멘젤은 전작에 비해 대단히 노골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는데, 그가 꿈꾸는 해방의 풍경은 여전히 기발하다. 폐철처리장에서 노역하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지도 아래 엇갈려 서서 포탄 껍데기를 나르기 시작한다. 손과 손이 스치는 스킨십 속에 이들의 표정은 행복해진다. 리비도가 노동의 고역을 해방시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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