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장애인, 당신들이 사회에 적응해라?
2007-05-24
리얼리티 떨어지는 동구, 고민 없는 동구 아버지 <날아라 허동구>

영화인들이 인터뷰 때 자랑스럽게 애기하는 것이 있다. 자신이 권투선수 캐릭터를 연구하려고 몇달 동안 실제 권투선수와 생활했다, 형사 역을 위해 현직 형사들을 수개월 따라 다녔다는 등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치열하게 연구했음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런 피나는 노력은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어 영화의 진정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영화만은 예외인 것 같다. 제작진이 장애인 캐릭터를 연구하려고 몇달 이상을 장애인과 생활한 경우는 실제 초원이의 모델인 발달장애인을 1년 이상 연구했다는 <말아톤> 이외에는 들은 기억이 없다. 대다수 제작진은 기껏해야 몇주 정도, 그것도 실제로 장애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연구하는 데는 극히 짧은 기간만을 투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연구가 미미한 가운데 만들어지는 작품 수준은 불을 보듯 자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IQ 60의 11살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날아라 허동구>도 제작진의 장애인에 대한 연구 부족으로 또 하나의 뻔한 장애인 영화임을 보여주어 씁쓸하기만 하다.

허동구(최우혁)의 아버지(정진영)는 아내를 병으로 잃고 혼자서 돈벌랴, 집안일하랴, 지능이 낮은 아들을 위해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까지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하느라 자기 몸은 돌볼 겨를 없이 사는 아버지다. 장애인 자식만 없다면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우리 사회 대다수 고단한 아버지 모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런 사회적 능력이 없는 장애아동을 둔 가정을 묘사하면서도 어떠한 대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동구가 오직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된다는 소망만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뒤의 삶에는 전혀 대비하는 모습이 없다. 실제 동구 같은 장애인을 둔 부모들은 장애인 복지체계가 거의 없는 우리 사회의 암담한 실정에서 자식이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며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데, 동구 아버지에게서는 자식의 미래를 고민하는 장면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동구 캐릭터도 리얼리티를 느끼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동구가 지능이 60이라고 하는데 애가 과연 정신지체인지, 발달장애인지, 아니면 단순한 학습 지진아인지 혼동된다.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장애인들을 접해왔는데도 동구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 도대체 무슨 장애인인지 도통 짐작이 안 간다. 또 학교에서 동구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심장병으로 힘든 삶을 사는 처지의 친구뿐이다. 이렇게 둘을 짝지은 것은 동구는 정신에 문제가 있고, 친구는 심장병으로 육체에 문제가 있는 존재라 서로 장애의 아픔을 지닌 아이들끼리 보완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주고 있고, 비장애인 급우들은 장애인들을 놀리고 괴롭히는 사람들로만 묘사했다. 이것은 장애인은 장애인끼리,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끼리만 어울려야 하는 대립적인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지능이 낮은 장애인들이라 해도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일이나 행위는 반복적인 학습을 통하면 어느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나 장애인 부모들의 견해다. 하지만 11살인 동구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전자 당번과 학교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없다. 화장실 볼일까지 아버지가 일일이 지시해주어야 하고, 학교수업은 단 0.1%도 이해하지 못하는 등 배움의 능력은 전혀 없는 아이로 묘사된다. 마지막에 번트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친구가 지시해서 수동적으로 따라하는 행위일 뿐 동구가 야구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날아라 허동구>에서 감동을 주는 아버지와 동구의 모습은 리얼리티가 바탕에 깔리지 않은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제작진이 실제 발달장애인을 1년간이나 연구해 만들었다는 <말아톤>도 발달장애인인 초원이(조승우)의 개인 캐릭터는 리얼리티가 넘치도록 묘사했지만 감독(이기영)이 초원이의 관점으로 이입하지 못하고 비장애인 자신의 관점으로만 몰아가는 우를 범했다. 그래서 감독은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열악한 사회환경을 꼬집는 부분은 철저히 외면하고 초원이가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주장하는 것은 비장애인의 관점에 서서 사회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장애인들이 문제가 있는 존재이니 피나는 노력을 하든, 대충 살든 너희가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체계가 거의 없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생활 전부가 치열한 전투를 의미한다. 거리를 마음놓고 다니기도 힘들뿐더러,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취업기회를 얻을 수도 없고, 결혼이나 아이를 기르는 것 하나하나가 고행의 연속이다. 이렇게 현실의 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게 열악한 사회환경 때문에 고민하지만 영화 속 장애인들은 사회환경은 아무 문제가 없으니 장애인들이 희망을 갖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승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미디어 모니터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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