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상상을 해본다. ‘서로 사생활은 존중해야지’라는 쿨함도, ‘당신은 영원한 나의 반쪽’이라는 콩깍지도 없는 관계에서 이런 상상의 날개를 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설마인 거지. 설마 키도 작고 돈도 없고 성격도 별로인 그를 누가 좋아하겠어, 설마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 사고 신라제과 앞도 못 지나가는 소심한 그가 무슨 연애를. 그런데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다가오고 불륜은 뺑소니처럼 지나가니 설마는 언제라도 사람을 잡을 수 있다, 고 무수히 많은 TV드라마와 영화는 말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만약 배우자에게 애인이 생겼다면? 일단 열받겠지만 굳이 TV를 통한 선행학습을 반사적으로 따라하지 않는다면 분노 못지않게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 지루하고 그저그런 인간에게서 불륜의 가시밭길을 함께할 매력을 발견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무런 삶의 활력도 없는 인간에게 이런 열정을 불어넣었을까? 참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은 불륜 드라마가 이런 궁금증을 보여주지 않고 다음 단계- 머리끄덩이이거나 나무관세음보살이거나- 로 넘어간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색다른 불륜영화라기보다 사실감 넘치는 불륜영화로 보인다. 아내가 바람이 났다. 나도 모르게 그만 이름 대신 ‘씨팔’이라는 낱말을 도장에 아로새길 정도로 눈이 뒤집힌다. 하지만 욱하는 성질로 아내를 족치기 전에 상대방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20대 못지않은 몸매와 피부를 지닌 김희애도 아니고, 그래서 교수님과 럭셔리 밀월여행이란 언감생심인 주제의 시골 여편네 가슴에 불을 당긴 작자는 누구란 말인가.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궁금증은 가슴속에 용솟음치는 주먹질을 압도했을 것이고 그 때문에 그는 어렵사리 뒤를 밟아 문제의 바람둥이 중식(정보석)을 알게 됐을 것이다.
아, 이제 단도직입적으로다가 찾아가 귀싸대기를 날릴 것인가, 그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궁금증이 밀려온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것도 아니고 나보다 나은 거라곤 머리숱 많은 것 말고는 별로 없어 보이는 이놈의 뭐가 그렇게 좋았기에 마누라는 불륜의 바다에 퐁당 빠져버린 것일까. 이건 백마 탄 왕자님보다 더 나쁘다.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중식이 운전하는 택시까지 타봐야 하지 않는가.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의 아름다운 귀부인은 궁금해 미친다. 왜 남편은 지지리 못생기고 구질구질한 여비서와 바람이 났을까. “젊고 싱싱한 년이 그렇게 좋아?”라고 한마디 내던지고 육탄전으로 들어가면 간단할 텐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알차게 화를 낼 수도 없다.
복수심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태한(박광정)이 중식의 아내를 찾아간 이유도 궁금증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애인을 만났다. 같이 1박2일을 보냈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도 도무지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다. 여자를 후리는 재주가 좀 있기는 하다마는 구질구질하고 무식하기로는 나와 비슷한 꼬라지다. 그런데 나는 지옥이고 그는 천국이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 거다. 그래서 그는 도무지 별볼일없는 그놈, 중식의 집으로 찾아가 중식의 아내까지 눈으로 확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 둘의 섹스는 복수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다. 숙취 뒤의 여명808이 주는 정도의 위로?
이번에는 중식이 태한을 찾아온다. 그 역시 궁금해서다. 같이 잤냐, 안 잤냐. 한 가지 확실한 건 태한이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궁금증은 버림받은 사람에게 남겨진 몫이다. “그렇게 할 말 많냐, 나도 할 말 많은 사람이야.” 중식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에 태한은 혼자 씩씩댄다. 그렇지만 그는 왜 내 아내를 사랑했냐, 왜 그녀는 네게 반했냐고 끝내 묻지 못했다. 머리끄덩이는 잡을 수 있지만(사실 이것도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왜 사랑했냐고 묻기는 더 힘들다. 불륜에 빠진 당사자는 불안해서 더 짜릿한 행복에 젖는 순간 도탄에 빠진 배우자는 궁금한데 물을 수 없어 점점 더 철학자가 돼간다.
누구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데 누구는 머리에 쥐가 나야 하다니 역시 불륜은 윤리의 문제를 떠나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