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십종의 케이크와 과자들은 파리의 유서 깊은 제과점 ‘라뒤레’에서 특별 제작된 것이다. 라뒤레는 샹젤리제 근처에 위치한 럭셔리한 케이크 가게로 1862년에 루이-에르네 라뒤레에 의해 창시됐다. 라뒤레는 ‘더블데커 마카롱’을 처음으로 창조한 가게로도 유명하다. 현재 런던과 제네바, 모나코에 지점이 있으며, 미국과 일본, 아랍에미리트에도 지점을 낼 예정이다. 청담동에서 문을 열 계획은 아직 없는 듯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구두들은 <섹스 & 시티>로 유명해진 구두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이 특별히 디자인한 것들이다.
구두뿐만이겠는가. 평소 마크 제이콥스 같은 일급 디자이너들과 친분이 두둑한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상을 위해서도 일급 디자이너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요한 ‘일’ 중 하나는 잘 차려입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존 갈리아노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곧바로 떠올랐다. 그들이 런웨이 무대에서 18세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지를 상상해봤다.”
2006년 칸영화제의 첫 번째 공식 기자시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엄청난 야유를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기자시사에 참여했던 로저 에버트는 ‘엄청난 야유’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한발짝 떨어져서 공평해지자. 맞다. 야유가 있었다. 그러나 겨우 다섯명 정도의 기자가 보낸 야유였다. 많은 다른 기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게다가 유럽 기자들은 북미 기자들과는 달리 싫은 영화를 보면 즉각 야유를 보내는 습성이 있다. 그들에게는 별로 충격적인 일도 아니다.” 당시 칸영화제에 참여했으나 해당 시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소피아 코폴라는 “차라리 강렬한 리액션을 얻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면서 “어쨌거나 그건 기자 시사였고, 동석한 일반 시사 때는 10여분간에 걸친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칸영화제에서 기자들의 야유는 흔해빠진 일이며, 가장 많은 야유를 받은 작품이 역사적인 걸작으로 칭송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화 가문의 부잣집 막내딸인 소피아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에도 자신과 비슷한 영화 가문의 자제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루이 16세 역을 맡은 제이슨 슈워츠먼은 그녀의 사촌이자 <대부>의 여배우 탈리아 샤이어의 아들이며, 앙투아네트의 오빠 요셉을 연기한 배우는 감독 존 휴스턴의 아들인 대니 휴스턴, 발람 부인은 배우 빌 나이의 딸인 메리 나이, 그리고 마담 뒤바리 역의 아시아 아르젠토는 이탈리아 호러영화 감독인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이기도 하다. 감독 존 부어맨의 딸인 카트린 부어맨은 영국 공작부인으로 잠시 모습을 내보인다. 영화 명문가 자제들의 베르사유 동창회.
“소피아는 미성숙한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 아는 단 한명의 작가이고, 여자들이 개인적인 삶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통과하는 것을 제대로 그려낸다. 사실 세상과의 관계와 투쟁하는 소녀들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없지 않나. 그녀는 내 나이의 여자들에게 진심으로 말을 건넨다.” -커스틴 던스트-
영화의 세컨드 유닛 디렉터(Second Unit Director)를 맡은 사람은 소피아 코폴라의 오빠인 로만 코폴라다. 그가 연출한 유일한 장편영화는 2001년작 <CQ>로, 1969년 파리를 배경으로 <드래곤 플라이>라는 사이파이 스파이영화의 후반작업을 맡은 영화감독의 초현실주의적인 일상을 다룬다. <바바렐라>처럼 키치한 60년대 영화들과 안젤라 린드발 같은 슈퍼모델들의 이미지를 MTV적인 유쾌함으로 버무린 즐길 만한 괴작이다. 하지만 역시 로만 코폴라의 명성은 MTV에서 더욱 빛난다. 팻보이 슬림, 그린 데이, 와이클리프 진 등 유명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그는 MTV 세대의 가장 인기있는 예술가 중 한명으로, 90년대 레이브족과 경찰과의 전쟁을 토마토의 생성과정과 버무린 대프트 펑크의 뮤직비디오 <Revolution 909>는 장편영화 <CQ>가 나온 지금에도 로만 코폴라의 최고 걸작임에 틀림없다. 유튜브에서 찾아보시길.
코폴라가 마담 두바리 역으로 가장 강력하게 원했던 배우는 안젤리나 졸리였다. 기가 막힌 캐스팅이었겠지만 졸리는 로버트 드 니로 감독의 <굿 셰퍼드> 출연을 위해 코폴라의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역할은 캐서린 제타 존스를 거쳐 아시아 아르젠토에게 돌아갔다. 노와이유 부인 역의 주디 데이비스는 마리안 페이스풀이 연기한 합스부르크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역에 최초로 거론되었던 배우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장 독창적인 조연상은 앙투아네트의 참견쟁이 시누이 빅토와르 역의 몰리 셰넌에게 돌아감이 마땅하다.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이자 <슈퍼스타>(1999), <무서운 영화4>(2006) 등의 괴작들에 집중적으로 출연해온 슬랩스틱 개그우먼 몰리 셰넌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고전적인 사극 캐스팅에 반기를 든 영화라는 사실을 기막히게 입증한다.
부르봉 왕가로 시집가던 날,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물건은 하나도 프랑스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관례에 따라 오스트리아에서 가져간 옷과 소유품들을 모조리 국경에서 반납하게 된다. 애완견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전기와 코폴라의 영화에서 앙투아네트는 퍼그종 애견인 ‘몹스’를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프레이저의 전기와 인터넷 퍼그 동호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사적 기록들은 당시 앙투아네트가 오랜 간청 끝에 시추종 애완견인 슈니치를 프랑스로 반입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시절의 앙투아네트는 몹스라는 퍼그와 슈니치라는 시추를 모두 길렀던 것이 정설이며, 두 마리 축생을 모두 프랑스에 반입하려다 더욱 애정이 가는 놈을 선택했으리라는 가설은 가능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앙투아네트가 혁명으로 인해 베르사유에서 쫓겨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코폴라 역시 초고에서는 기요틴에서 목숨을 잃는 앙투아네트의 최후를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요틴에서의 최후를 쓰자마자 깨달았다. 그건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영화라는 걸 말이다. 우리는 미니시리즈가 아니라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베르사유에서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나는 영화의 엔딩을 앙투아네트의 개인적인 진화와 변화로 끝맺는 게 옳다고 느낀다. 이후에 이어지는 재판 과정은 지나치게 긴 이야기, 또 다른 영화여야만 한다.”
소피아 코폴라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베르사유에서 촬영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아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상 최초로 전편을 베르사유 내부에서 촬영한 영화가 됐다. 코폴라는 대체 어떻게 허가를 받아냈던 것일까. 해답은 의외로 담백하다. “나는 영화를 만드려는 나만의 접근법을 베르사유의 관리 감독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스크립트를 읽더니 앙투아네트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내 시도를 매우 좋아했고 베르사유를 활짝 열어주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보다는 훨씬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었다.” 물론 코폴라 가문의 명성과 소피아 코폴라 개인의 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게다가 고집 세기로 유명한 코폴라는 “백업 플랜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안 되면 아버지를 졸라서라도 베르사유를 침공하지 않았을까.
앙투아네트의 옷장은 과하게 화려한 핑크와 터퀴즈(turquoise)색으로 넘쳐나는데, 일부 의상전문가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종류의 핑크색이 1955년 이후에나 복식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들어 고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코폴라는 영화속의 핑크와 터퀴즈색이 “진짜 앙투아네트의 색깔”이라고 변론한다. “나는 앙투아네트가 밝은 핑크와 터퀴즈색을 좋아했다는 기록을 읽었다. 사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18세기의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그녀가 좋아했던 것들을 더욱 강렬하고 흥분된 색채로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앙투아네트의 의복들은 오랜 세월로 색이 바랜 것들이다. 그것들이 살아 있었던 시절을 느끼고 싶었다.”
앙투아네트에게 쏟아진 궁정 안팎의 비난들은 그녀의 사치 성향보다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게르만족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영화 속에서도 궁중의 귀족들은 끊임없이 “오스트리아 촌뜨기”라는 표현으로 그녀의 험담을 늘어놓고, 혁명 세력들은 그녀를 ‘오스트리아 매춘부’로 표현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외국인 혹은 외국 혐오증에 걸린 영화라는 비판을 종종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코폴라에게 도쿄는 베르사유와 마찬가지인 ‘앨리스의 이상한 세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4천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여됐으며, 북미에서는 모두 1500만달러, 세계적으로는 총 6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모두 400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북미에서만 4500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고, 전세계적으로는 1억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남겼다. 600만달러가 소요된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은 북미에서만 48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코폴라의 영화에서 소녀들은 언제나 침대와 소파와 풀밭 위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풀썩 드러눕는다. <필름코멘트>에 따르면 소피아 코폴라는 “소녀들을 가장 제대로 침대 위에 던질 줄 아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