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마이클 무어의 <시코>, 칸을 달구다
2007-05-19
글 : 문석

3년만에 돌아온 마이클 무어가 칸에 큰 바람을 몰고 있다. 2004년 <화씨 9/11>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2002년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55주년 기념상을 수상하는 등 칸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무어인만큼 칸의 환대 또한 각별했다. 특히 그의 상영작 <시코>(Sicko)는 비경쟁부문에 속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언론의 관심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시코>는 알려진 바대로 미국의 의료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가 오히려 미국인들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의료보험업체와 제약회사에게 터무니없는 이윤을 보장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무어는 우선 5000만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시스템 바깥에 있음을 드러낸다. 두개의 손가락이 잘린 한 미국인의 경우, 병원에서 중지 손가락을 붙이는데 6만 달러, 약지를 붙이는데 1만2천 달러가 든다는 통고를 받는다. 결국 그는 1만2천 달러짜리 수술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시코>가 진정으로 초점을 맞추는 분야는 의료보험 시스템 안에 포괄돼 있는 ‘혜택받은’ 나머지 미국인들의 처지다.

잡지 편집장인 여성과 기술자 남성이 둘다 병을 앓게 되면서 결국 파산해 딸의 집으로 가게 된 사연, 교통사고를 입어 병원에 갔으나 의료보험 회사로부터 병원비 지불을 거부당한 한 여성의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허점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철저하게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는데, 이들의 보험비 지급은 너무나도 자의적이라는 게 무어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너무 말라서 보험이 안되고, 어떤 이는 너무 뚱뚱해서 안된다. 마이클 무어는 의료비 지급을 거부당하는 사례를 A부터 정리해서 <스타워즈>의 인트로 형식으로 보여준다. <시코>에는 피해자들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 의료비를 지급하지 않는 노하우를 잘 알고 있는 한 보험회사 직원도 등장한다. 무어는 이러한 왜곡된 의료체계가 닉슨 정부에서부터 시작됐고, 클린턴 정부 시절 힐러리에 의해 주도됐던 의료개혁 또한 별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폭로한다. 물론 힐러리의 개혁이 저지된 데는 보험회사와 제약회사 등의 엄청난 로비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무어는 미국만 의료체계에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캐나다, 프랑스, 영국으로 간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놀랄만한 이야기 뿐이다. 모든 의료행위가 무료인 캐나다, 아무리 약을 많이 사도 10 달러만 지불해도 되는 영국, 역시 의료비가 무료인 프랑스를 돌면서 무어는 우울해진다. 게다가 그는 9.11 사태 당시 영웅으로 간주되던 소방관이나 자원봉사활동가들에게도 어떤 의료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당시 가해자들과 관련 테러리스트들이 갇혀있는 관타나모 기지의 사정은 어떨까? ‘적’들에게도 굉장히 훌륭한 시설과 서비스가 그들에게 제공된다는 관타나모의 공식 입장을 들은 그는 9.11 사태 때 다른 사람들을 돕다가 다친 이후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는 미국인 3명과 앞서 언급된 사례들의 주인공을 데리고 관타나모 기지로 향한다. 하지만 관타나모에서는 그들의 출입을 거부하고, 그는 이들을 데리고 쿠바로 향한다. 그리고 쿠바에서 이들은 또 한번의 충격을 겪는다. 빈곤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의료환경을 갖춘 쿠바에서 이들은 정성껏 치료를 받게 된다.

미국정부가 마이클 무어를 압박하고 있는 것도 바로 미국인들을 쿠바로 데려간 사실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마이클 무어가 정부의 허가 없이 사람들을 데리고 쿠바로 갔으며, 쿠바에 무역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 무역금지법을 위배했을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정부의 방침과는 무관하게(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칸은 열광적인 호응으로 무어의 신작을 환영했다. 5월19일 오전에 열린 <시코>의 첫 시사에서 관객들은 영화 중간중간 큰 박수로 지지의 뜻을 보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동안 상영작 중 가장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기자회견장 또한 만원을 기록해 수많은 기자들은 로비에 설치된 TV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무어는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어떤 정치집단의 편을 들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크루아제트의 뜨거운 분위기에서 한발 떨어져 냉정하게 평가하더라도 <시코>는 전작인 <화씨 9/11>보다 한 단계 성숙한 무어의 세계를 보여준다. <시코>는 부시 정부, 또는 공화당을 비웃고 있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기 보다는, 사영화돼 있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다른 나라처럼 보편화, 공영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치는 영화다. 비꼬고 뒤트는 그 자신의 특기는 간혹 드러나지만, 이 보다 그는 의료보험체계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 미국인들의 불행한 모습에 상당 시간을 할애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보태려 애썼다. 물론 <시코>는 미국에 집중되는 이야기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잘못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영화의 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게다가 미국의 9.11 자원봉사자들이 쿠바의 한 소방서를 방문하는 장면은 심지어 감동적이기도 하다. 쿠바의 소방대원들은 이들의 방문에 격의있게 사열을 하면서 “당신들은 우리에게도 영웅”이라고 말한다. 이런,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핑 돌다니, 믿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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