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음악 한 소절이 열 마디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될 때가 종종 있다.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음악이 그렇다. 내일을 찾고 싶어하는 두 청년의 불안하고 희망없는 오늘을 다루는 이 영화에서, 음악은 주인공들의 삶을 쉽게 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더 많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타 한대의 나지막한 멜로디, 피치카토와 오보에가 단출히 어우러진 화음으로 텅 빈 듯 영화를 채워가는 이 오리지널 스코어는 노동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도 함께했던 권세영 음악감독의 솜씨다.
79년생. 두편의 영화에서 그의 음악이 보여준 절제와 여백의 내공에 비교하면 만 스물여덟살은 많은 나이가 아니다. 권세영 음악감독은 “그냥,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할 것 같아서”, “복잡하게 이것저것 소리를 많이 쓰는 게 내 취향이 아니라서”라고 설명한다. 겉치장없이 겸손한 그의 성격이 음악과 서로 닮았다. 권세영 음악감독은 수원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고1 때까지 음대를 목표로 공부하다가 불쑥 진로를 바꾸게 됐는데, 다시 대학교 1학년 때, 방송음악을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1년간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음악쪽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학교 친구들 단편영화에 음악을 만들어주던 그는 제작자이자 교수이기도 한 최두영 두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마련한 술자리에서 노동석 감독을 만났다. 권 음악감독의 첫 장편 작업의 인연이다.
권세영 음악감독은 케이블채널 CGV가 제작한 HD영화 4부작 프로젝트 ‘18’(에이틴)에서 4편 <램프의 요정>도 작업했다. “처음으로 보컬곡을 만들어봤다”며 그가 넌지시 말한다. 자평을 해달라니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나온 것 같다”고 하는데, 꼭 남의 음악을 듣고 수줍게 뱉는 감상 같다. 사적인 음악 취향도 평범하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얀 티얼슨(<굿바이 레닌> <아멜리에> 음악감독)을 좋아하고 재즈를 주로 듣지만 보사노바 정도가 좋고, <우아한 세계>의 음악이 좋다. 음악감독치곤 너무 무난하고 취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권 음악감독이 소곤소곤 말한다. “간노 요코는 못하는 장르가 없어서 정말 대단한 사람 같다. <램프의 요정> 할 때 감독님이, (웃음) 나보고 간노 요코 같은 음악가가 되어주세요, 하더라.”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벅스뮤직에 들어가 아무 음악이나 마구 골라 듣는다. 희망이라면 “계속 젊은 애들 얘기만 했다”며 이제는 성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정도. 아직 필모그래피는 짧지만 서른 문턱을 넘지 않은 그의 미래에는 계속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두 주인공들에게 그랬듯, 권세영 음악감독은 자신에게도 아무 규정을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