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콩쥐 팥쥐>의 팥쥐가 겪었을 남모를 고민이 궁금했다
2007-05-23
글 :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글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전설의 고향>의 김지환 감독

제목부터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전설의 고향>. 얼마 만이던가. 충무로에 정통 사극 공포영화가 나온 것이 말이다. 70, 80년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일명 ‘처녀귀신’ 영화들. 흰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으스스한 곡성을 일갈한 뒤 힐끗 노려만 봐도 오금이 저리던 그때 그 시절의 영화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처녀귀신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이 이제 추억으로만 자리잡은 때, 정통 사극공포영화를 표방한 <전설의 고향>이 등장했다. 매년 충무로에서 5편 내외의 공포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지만, 사극공포영화는 공포영화 제작 붐이 일어난 뒤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전설의 고향>은 소멸되다시피 한 사극공포영화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끌지만, 김지환 감독이 그간 공포영화 애호가로서 유명했기에 더 주목받았다. 그는 1997년 영화진흥위원회 상반기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한 <좋은 친구들>로 당선된 뒤, 한 영화주간지에서 약 4년에 걸쳐 ‘고어 마니아’, ‘김지환의 금지된 DVD’ 코너를 집필하며 공포영화에 대한 애정을 피력한 장본인이다. 이번 <전설의 고향>을 통해 전통적인 한국 원형의 공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포부를 밝힌 김지환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을 물어보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당선에서 입봉까지 10년이 걸렸다.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인데 <전설의 고향>까지 단숨에 정리하자면.
=당시 공모전 입상작이 <좋은 친구들>이란 작품인데,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을 보고 필 받아서 3일 동안 쓴 시나리오였다. 그 뒤로 이런저런 작품들에 참여했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다 1999년에 인터넷영화 붐이 일었을 때 각본을 쓴 작품이 있었고, 야심차게 준비하던 <가야 뱀파이어>도 흐지부지되었다. 2000년부터 한 영화주간지에 ‘고어 마니아’란 코너를 연재했고, 2년 뒤 ‘김지환의 금지된 DVD’란 코너로 바뀌어 2004년까지 연재했다. 그 뒤 쭉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했었다. 맨 처음 영화사를 갔다가 코미디영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었지만, 내 취향이 코미디쪽은 아닌지라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하고 싶었던 공포영화를 맡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충무로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사극공포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일본에서는 <링> 이후 대안이 없다가 <주온>으로 변화를 맞이했지만, 지금은 그 효과가 다한 것 같다.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전통 사극공포영화가 나름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충무로에서 공포영화 제작 붐이 일어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그간 아무도 사극공포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했다. 같은 공포영화를 만들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의 색깔을 가지자는 의도가 컸던 것 같다. 또 정통 사극이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적 공포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욕심도 생겼고.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이 <령>과 흡사하다. 두명이 물에 빠져 죽고, 그중 한명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깨어난다. 공교롭게도 한명은 착했고, 다른 한명은 못됐다는 설정들이 일치한다.
=일정 부분 비슷하다는 데 대해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공포영화라는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겹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사실 그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그러고보니 비슷한 부분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호러사극을 하려고 했을 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었다. 원래 TV드라마가 가진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하고자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영화의 주제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그렇게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기억상실증이란 소재를 생각했다. 그리고 자아분열이라는 설정을 가져가기 위해서 쌍둥이 자매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맨 처음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령>이 나오기 전이었고, 당신도 그때 시나리오를 읽어보지 않았나? 사실 <령>이든 다른 공포영화든 비슷하다고 얘기할 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은 원래부터가 전형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긴, <령>이 나오기 전에 시작된 얘기이긴 하다. 그럼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실질적인 이야기의 틀을 마련한 것은 <콩쥐 팥쥐>에서다.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아는 얘기이지 않은가. 콩쥐는 늘 착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고, 팥쥐는 그 반대로 미움의 대상이다. <콩쥐 팥쥐> 이야기를 다룬 고전동화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콩쥐는 항상 예쁘게 그려놨고, 팥쥐는 퉁퉁한 몸에 심술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모습이다. 거기서 나는 팥쥐가 만약 콩쥐처럼 예쁜 외모를 가졌다면 사람들에게 과연 미움받는 캐릭터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팥쥐에게는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고민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설의 고향>에서 예쁜 쌍둥이 자매로 설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물귀신은 <령>이 아니라, <검은 물밑에서>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전에 <씨네21>에서 촬영현장 방문 기사가 나왔을 때, 사다코의 망령을 몰아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시사회가 끝나고 나온 평가에서 “또 사다코야?” 하는 지적들이 많다.
=그 역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다코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핑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관객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얘기해서 처녀귀신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것은 소복을 입은 귀신은 아니다.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기 때문에, 풀을 먹은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귀신에 대해서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고 분명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설의 고향>에서 볼 수 있는 귀신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처녀귀신의 이미지 그대로다. 굳이 사다코와 닮았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관객의 견해이기 때문에, 그 역시도 틀린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통 전통 처녀귀신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감한 블루, 레드 조명을 받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흡혈귀 야녀>에서는 드라큘라처럼 이가 뾰족하거나 노골적인 흡혈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공통적으로 억울하게 죽은 뒤에는 경공술은 기본에 공중제비, 그리고 어디서 배웠는지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였지만 대부분 곧바로 무술 고수로 등극한다. 또 가끔 머리카락을 입에 문 채 강력한 포스를 발산한다. 이런 것들이 관객이 기억하는 처녀귀신의 이미지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이유는 주인공인 박신혜의 얼굴이 너무 귀엽다는 게 문제였기 때문이다. (웃음)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뒷모습만을 찍어보기도 했고, CG를 활용할까 고민도 했다. 아무래도 귀신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인상을 줘야 하는데, 얼굴이 계속 드러나면 박신혜의 귀여운 마스크가 공포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보통 고양잇과 얼굴형이 귀신 분장에 잘 어울리는데 박신혜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지 않나. 무서워야 할 장면에서 역효과를 일으키면 곤란하기 때문에 고민, 고민하다 머리카락으로 얼굴 부분을 가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실 그 한국적 처녀귀신의 이미지를 지금 공포영화에 고스란히 살리면 오히려 욕을 먹지 않을까? 공중제비에 무술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특징이 잘 어울릴 수 있는 이야기라면 몰라도, 이번 <전설의 고향>에서는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무서워하는 처녀귀신의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은 외형적으로 봤을 때 다들 차이가 있다. 물에 빠져 죽었기 때문에 물귀신이 되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공간에서 나오는 귀신의 모습이 다 제각각이다.
=시나리오작가와 작업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공포스런 장면에서 왜 무섭게 하려고 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애초 추구했던 것은 많은 피나 과도한 신체적 훼손으로 공포를 주기보다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통해 공포를 주고 싶었다. 가령 곳간에서 귀신이 거대해지는 것은 그 귀신이 약자 혹은 피해자였기 때문에, 신체 비대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방을 압도해나가는 그런 이미지를 강하게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 공포영화들은 귀신을 정적으로 표현하지만, 나는 좀더 역동적인 귀신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곳간에서는 천장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귀신이 몸을 꺾는 장면이 있는데, 옆으로 꺾인 채 튕겨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찍었다.

-그 곳간에서 귀신이 거대해지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마치 길거리 홍보를 할 때 큰 풍선이 꺾이다가 튕겨져 올라오는 그런 느낌이다. 언뜻 보면 디지털 효과로 보이기도 하고, 아날로그 방식 같기도 하다.
=원래 곳간 귀신의 모습은 포커스 인 아웃하면서 흐릿하게 보이면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다가오는 모습을 의도했는데,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제작비 압박 탓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좀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로 구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들에서 보면 구석 한쪽에 자리잡은 귀신의 존재가 굉장히 기분 나쁘지 않은가? 그런 느낌을 얻고 싶었다. 커지는 귀신은 팬더라고 하는 장치를 이용해서 찍은 것이다. 옷은 그 사이즈에 맞추어 제작했고, 귀신을 연기하는 배우가 팬더 위에 서 있는 상태에서 다른 스탭들이 조작해서 위로 올려서 작업한 것이다. 거대해지는 귀신의 모습은 모두 수작업이고, 촬영시에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의자 같은 것들은 CG로 지우고 최종 결과물을 얻었다.

-성황당에서 귀신과 접촉하고 피부에 검은 깨가 생기는 장면이 있다. 검은 깨가 왜 생긴 것인가? 영화에서는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호수가 워낙 더럽기 때문에 감염된 것인가, 하고 나름 생각도 해봤다.
=여중고생들 사이에 떠도는 도시괴담이 있다. 피부병이 생겼는데, 깨를 바르면 좋아진다는 얘기가 있어 깨를 바르자 몸속으로 파고들었다는 그런 얘기다. 남자들은 잘 모르는 얘기이지만, 여자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영화가 12세 관람가이긴 한데, 아무래도 공포영화다운 징글징글한 장면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데없이 검은 깨가 왜 생겼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얘기했던 대로 호수가 굉장히 더럽기 때문이고 그곳에서 빠져 죽은 귀신이라는 설정 때문에 성황당에서의 신체적 접촉에서 일어나는 감염의 형태로 보면 될 것 같다.

-영화 초반부 안개에 싸인 호수에서 머리를 감는 여자는 누구인가? 야밤에 그렇게 혼자서 머리를 감고 있으려면 보통 담력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다. 어찌 보면 귀신 같기도 한데,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따르지 않아서 궁금하다.
=머리를 감는 여자는 귀신이 맞다. 원래 콘티상에서는 머리를 감는 여인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카메라가 호수 위를 유영하듯 머리 감는 귀신을 잡고 지나가면 정자에서 술을 마시는 양반들이 나오는 것이 원래 구상했던 것인데, 여건상 쉽지 않았다. 그 부분이 조금 튀어 보일 수도 있는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한국적인 해학과 풍류를 내 나름대로 으스스하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왜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가 그렸던 단옷날 머리를 감는 여인의 그림 말이다. 그걸 영상으로 재현해본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 머리 감는 귀신을 연기한 사람은 레이싱걸 출신의 여성이다. 몸매가 워낙 좋아 좀 에로틱한 느낌을 강하게 가져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웃음)

-영화 배경은 조선시대인데, 극적 분위기를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보면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데, 배경으로 이따금씩 등장하는 안개에 싸인 숲이나 호숫가가 발산하는 분위기는 유럽 공포영화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 유럽 공포영화들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이야기였다.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느낌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슬리피 할로우> <디 아더스> 같은 비주얼이다. 극적 분위기로 공포를 만들기보다는, 잔혹한 이야기가 공간에 녹아 있는 그런 음산한 분위기에 주안점을 두었다. 역시 TV드라마와의 차별성을 확실히 두기 위한 선택이다. 영화만의 특별한 장점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독특한 비주얼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야가 꽉 막혀 있는 안개 효과를 통해서 극장용 영화만의 분위기를 내고자 했다.

-<전설의 고향>은 원한을 품고 죽어서 복수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가.
=단순히 원수를 갚는다는 얘기에는 크게 흥미가 없다. <전설의 고향>에서 소연의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이어지면서, 그녀가 사람들한테 의심받고 미움받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나. 똑같은 상황에 처해봐야만 당사자의 고충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을 졸리던 소연이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다. 극중에서 죽은 이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은 인간이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희생양들이다.

-그렇게 보자면 좀더 드라마적으로 정교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많은 것을 다루고 그것들 모두 좋은 결과물로 나왔으면 싶은 욕심이야 굴뚝같지만, 아무래도 경험 부족에 따른 허점이 많을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나고, 좀더 많은 준비 과정을 거쳤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좋은 경험을 했고 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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