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칸영화제에서 만난 <숨>의 장 첸
2007-05-21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올해 중국어권 영화는 단 한편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어권 영화의 부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허우 샤오시엔과 왕가위는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 영화로 칸의 환대를 받았고, 리 양의 <맹산>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최고 화제작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기대와는 달리 보잘것 없는 결과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홍콩의 액션 마에스트로 두기봉, 서극과 임영동이 함께 만든 <트라이앵글> 역시 적지않는 관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영화가 두 편이나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올해 칸영화제는 중국어권 영화들의 다양한 모색을 멋지게 증명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장 첸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기덕의 신작 <숨>에서 대사 한마디 없이 기억할만한 연기를 해낸 늘씬한 대만 남자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전진하는 중국어권 인재들의 물결을 분명하게 따르고 있다. 지중해 태양이 송곳처럼 쪼아대는 칸의 해변에서 장 첸을 만났다.

-이번이 여섯번째 칸 방문인데, 어떤 영화들인지 모두 기억은 나나.
=제일 처음이 <해피 투게더>, <와호장룡>, <2046>, <쓰리 타임즈>, 작년의 <실크>.

-올해는 한국영화로 칸을 찾았으니 예전과는 조금 기분이 다를 수도 있겠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집>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이 같은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계시길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인사를 시켜달라고 했었다. 사실 그때는 이런식으로 다시 만날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김기덕 감독의 어떤 작품을 제일 좋아하나.
=<빈집>, 그리고 <나쁜 남자>

알다시피 대단히 쎈 영화들이다. 캐스팅되는 순간 두려움이나 저항감은 없었나.
=아무런 저항감 없었다. 한국말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만드실까 아주 기대가 많았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정말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다.

-김기덕 감독의 촬영 속도는 엄청나다. 템포에 맞춰가기 힘들진 않았나.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웃음) 빨리 찍는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까지 빠른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스트레스를 좀 받은 것도 사실이다.(웃음)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훌륭한 점은 배우가 스스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한국배우들과의 연기는 어땠나. 준비 기간도 짧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서 호흡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촬영전에 미리 대면식을 해서 어떠한 거부감도 없었고, 모두 대단히 좋은 연기자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지아씨와 연기할때는 대사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야하는데 언제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파악하기가 좀 어려웠다.

-특히 ‘봄 봄 봄 봄’하고 노래가 시작될 때 당신 표정은, 그 장면을 처음 보는 관객들의 표정과 똑 닮았다.
=(웃음) 맞다. 나도 그날 처음 그 노래를 들었는데, 무슨 이런 노래가 있나 싶어서 많이 놀랐다.(웃음)

-주인공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잠깐식 등장한다. 캐릭터의 과거를 미리 설정하고 연기에 들어갔나, 아니면 그에 대한 생각없이 대본만 따라갔나.
=과거를 미리 설정해봤다. 아내와 아이를 살해했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는데, 그걸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연기해야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캐릭터는 가족과 집단 자살을 시도하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남자가 아니었나 싶더라. 어떻게보면 정말로 불쌍하고 아주 재수없는 남자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 죽었는데도 살려는 욕망 또한 강한 남자다.

-당신의 아버지라 할만한 허우 샤오시엔과 왕가위 감독이 각각 프랑스와 미국 영화로 지금 칸에 와 있다. 패밀리가 모인 것 같은 느낌인데 그들처럼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나.
=같이 한 장소에 모여있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 나 역시 국가나 언어에 상관없이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온다면 당연히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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