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적(敵)이 많아진다. 아니꼬운 시선으로 꼬나보거나 누가 더 센지 자웅을 겨뤄보려는 외부의 적뿐만 아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것처럼 느껴지는 자만심, 내가 아니면 누가 지구를 구하겠느냐는 식의 지나친 공명심은 내부의 적이다. 안팎의 적들이 덤빌 땐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그야 쉽다. 맞서 싸우면 된다. 적과의 일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재확인하고 자신을 한층 더 잘 알게 된다. 우리의 스파이더 맨, 피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토록 잘난 인간의 최측근, 즉 배우자나 연인의 심정은 어떨까. <스파이더맨 3>를 보면서 피터 때문이 아니라 메리 제인 때문에 가슴이 미어졌다. 기쁜 사랑을 할 때 여자의 얼굴빛은 환하게 피어나는 법이다. 꿈이 있어서 더 아름다운 여자 메리 제인. <스파이더맨 3>의 초·중반 피터가 스파이더 맨이 된 뒤 어쩌면 가장 즐겁고 화려한 시절을 구가할 동안, 그녀의 표정은 점점 생기를 잃고 눈가의 그늘은 깊어만 간다.
‘큰일’을 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내 곁에서 여자는 그저 참아야 할 따름이다. 오붓한 데이트 도중의 긴급호출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일터에서 내쳐진 뒤의 절망감에 대해 맘 편히 투정부릴 수 없다. 더구나 눈앞의 모든 문이 닫히고 자기는 나날이 초라해져가는 것만 같은데 (한때 자기보다 좀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그는 승승장구하며 성공을 만끽하는 상황이 아닌가. 제일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에서, 복잡 미묘한 상대적 박탈감이 치솟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세상엔 물론, 공적 가치 때문에 사소한 친밀성의 영역을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그 남자의 여자들이 때론 서운함에 치를 떨고, 때론 외로움에 몸을 떨면서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꾹 참고 내조에 전념하는 이유는 내 남자의 성공과 명예가 곧 나의 상징자본이 된다는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얀거탑>의 장준혁 부인을 보라!). 하지만 메리 제인은 잘나고 바쁜 남편을 어떻게든 참아줘야 할 명분을 가진 그분들과는 사뭇 사정이 다르다. 스파이더 맨 자체가 이미 존재를 감춰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영웅인 것을, 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녀는 ‘스파이더 맨의 여자’라는 비밀을 죽어도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처지다. 메리 제인의 비애는 ‘공유의 아이러니’에서 온다. 스파이더 맨의 쾌락은 공유할 수 없되, 공공과 내 남자를 공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지하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는 이중 스파이를 사귀는 일과 비슷하며, 간첩의 정부와 동병상련의 슬픔을 나눠야 할 형편이다. 내 여자의 속도 모르고 청혼반지를 준비하며 설레는 피터야말로 순진하고 또 무력한 남자다.
메리 제인이 피터에게 이성으로서 강한 매혹을 느끼게 된 데에 그가 스파이더 맨이라는 이유가, 다는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으리라 추측해볼 수도 있다. 평범하고 자상한 남자친구가 사실 스파이더 맨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로, 고립무원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녀는 더욱 서글퍼진다. 모름지기 내 남자가 뜨악해질 때 남의 남자의 살인미소가 유독 해맑아 보이지 않던가. ‘오죽하면 여북한다’고, 늘 샤방샤방 웃어주고 친절하게 챙겨주는 상대 해리에게 은근슬쩍 기대려는 그녀에게 누가 차마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복잡하게 엉킨 줄을 끊어보려던 메리 제인이, 그러나 절대로 사랑의 거미줄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임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스파이더 맨의 여자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상관도 없었을 절체절명의 위험에 빠진 그녀. 결국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날아오는 것은 스파이더 맨이다. 아! 메리 제인을 꽁꽁 얽어맨 저 거미줄은 스파이더 맨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가 제 손으로 직접 친 건지도 모른다. 합리적 이성의 강력한 적은 언제나, 그놈의 사랑이니까. 연애의 함정, 인생의 거미줄이란 참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