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은 명성보다는 세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선택했다. 현지시간으로 5월27일 저녁에 열린 제60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영예의 황금종려상은 루마니아 크리스티앙 문주 감독의 <4개월, 3주, 2일>에게 돌아갔다. 크리스티앙 문주의 <4달, 3주 그리고 2일>은 다르덴 형제의 건조한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드라마다. 낙태가 금지된 차우셰스쿠 독재하의 루마니아, 두 소녀가 불법 낙태를 시도하려고 한다. 하지만 소녀들의 대담한 시도는 점점 칠흙같이 어두운 부쿠레슈티의 밤처럼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크리스티앙 문주는 인공적인 조명이나 부드러운 스태디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 카메라를 든 채 소녀들의 아슬아슬한 모험을 따른다. 한정된 공간과 간결한 이야기를 통해 보는 이의 명치를 강타하는 이 작품의 수상은 조용한 미학적 작가주의의 산실이었던 동구권의 영화적 주도권이 젊고 새로운 세대의 손으로 이양되고 있다는 멋진 증거처럼 보인다. 결국 60번째를 맞은 칸은 최근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동구영화,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루마니아 영화의 활력을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그랑프리 또한 루마니아의 크리스티앙 네메스쿠 감독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에게 돌아가 동구와 루마니아 영화의 강세를 여실히 증명했다. 미국 뉴욕의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 센터의 프로그램 디렉터이자 영화평론가 리처드 페냐는 “현재 가장 뜨거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지역은 동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곳이 루마니아”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 영화가 ‘넥스트 아시아’ 또는 ‘넥스트 코리아’라고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최근 칸영화제는 도도한 동구와 루마니아 영화의 흐름을 입증한 바 있다. 지난해 가장 뛰어난 데뷔작을 만든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이 루마니아의 코르넬리우 포롬부이우 감독에게 주어졌고, 2005년에는 크리스티 푸이우 감독의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한편 2위상에 해당하는 그랑프리는 일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모가리 노 모리>(애도의숲)에게 돌아갔다. 만년 ‘영화 소녀’ 가와세 나오미의 <모가리 노 모리>는 일본의 산골에 위치한 한 정신지체자 요양소를 배경으로, 한 정신지체 노인과 젊은 여자 간병인의 이틀간에 걸친 교감을 다루는 작품이다. 가와세 나오미는 마음속의 상처를 지닌 두 인간이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이는 과정을 조용히 카메라로 따르면서 종종 흔들리는 나뭇잎과 보이지 않는 바람을 화면에 잡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문답과 지나칠 정도로 교조적인 명상주의를 거북스러워 하는 반응들이 많았던 탓에 가와세 나오미의 그랑프리 수상은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다.
60주년을 맞이해 칸이 특별히 만든 60주년 기념상은 <파라노이드 파크>를 만든 미국 구스 반 산트 감독에 돌아갔다. <파라노이드 파크>는 우연히 열차 경호원을 살해한 10대 스케이트 보더의 내면적인 움직임을 무심하게 따르는 영화다. 하지만 반 산트는 <제리>로부터 <라스트 데이즈>로 이어지는 전작들과는 분명할 정도로 미학적인 선을 긋고 있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결코 멈추어서지 않으며, 이미 <라스트 데이즈>로 사운드의 실험에 몰두한 바 있는 반 산트는 수십곡에 달하는 사운드트랙을 통해 소년의 내면을 직설적으로 들려준다. 어쩌면 <파라노이드 파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반 산트의 과도기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감독상은 <잠수복과 나비>를 만든 미국 줄리안 슈나벨 감독에게 돌아갔다. 프랑스의 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로크드-인 신드롬(LIS, 리스: 의식은 정상이지만 전신이 마비되는 질병)’에 걸려버린 장 도미니크 보비의 동명 자서전을 영화화한 <잠수복과 나비>는 왼쪽 눈을 제외하면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보비가 나비가 날아가는 듯,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책을 쓰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했다.
한편 남우주연상은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추방>에 출연했던 콘스탄틴 라브로넨코가 수상했다. <잠수복과 나비>의 마티유 아말릭과 <노 컨트리 포 올드맨>의 하비에르 바르뎀 등 강력한 경쟁자를 물리친 그의 수상은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추방>에서 라브로넨코는 고통을 견디는 숙성된 내면 연기를 보여줬으나 다른 후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한편, 각본상은 <천국의 가장자리>의 독일 파티 아킨에게, 심사위원상은 프랑스 마르잔 사트라피와 뱅상 파로노의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와 멕시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고요한 빛>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