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소박한 촬영의 미덕을 아는 남자
2007-05-31
글 : 김민경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전설의 고향>의 손원호 촬영감독

<전설의 고향>엔 과장된 역광 조명이나 선혈 낭자한 효과가 없다. 김지환 감독이 원한 건 <디 아더스> 같은 톤의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였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게 촬영감독의 미덕이라면, <전설의 고향>에서 손원호 촬영감독의 성과는 초반부의 안개 자욱한 정자신이다. 보기만 해도 답답할 만큼 묵직하게 안개가 낀 장면을 얻기 위해 엷게 흩날리는 기존의 스모크 효과를 포기하고 갖가지 재료를 태우며 시행착오를 거쳤다. 공포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사운드로 적당히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감독의 지향이 그게 아니란 걸 손원호 촬영감독은 이해하고 있었다.

<전설의 고향>은 33살의 손원호 촬영감독이 성장멜로 <울어도 좋습니까?>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한 장편영화다. 여느 공포영화처럼 <전설의 고향>도 넉넉한 예산과 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세운 목표는 하나였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효과를 내는 것. “물론 그 결과가 ‘베스트’가 아닌 건 저도 알죠. 하지만 베스트를 만들기 위해 20억원짜리 영화를 100억원짜리 찍듯 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컨셉은 ‘덜어내기’로 잡았다. 괜히 벽에 빗자루, 소쿠리 하나 더 걸고 그림을 만드는 것보다 잔재주를 최대한 비우고 가기로 했다. 대신 집중한 건 조명이다. 강렬한 조명 없이 ‘보여줄 것과 안 보여줄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 조명의 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가릴 것과 보일 일의 황금비를 이룬 선영(한여운)의 ‘깨 목욕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손원호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업으로 삼은 건 대단한 의지 때문은 아니다. 막연한 호감만으로 입학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선 적성을 못찾아 헤맸다. 일단 군대로 도망쳤다가 다른 진로도 알아봤지만, 동기들이 조수 경력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그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배운 것 중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카메라였다. “16mm 카메라가 아주 좋았거든요. 찰칵찰칵도 아니고 달달달달 하면서 돌아가는 게.” 전문적인 교육과 인맥을 쌓기 위해 진학한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선 박찬욱 감독의 단편 <잠복>, 박은영 감독의 <랑데뷰>를 찍었다. <생산적 활동>의 오점균 감독과 <모두들, 괜찮아요?> <친절한 금자씨>의 정서경 작가와 함께한 작업도 그가 만난 즐거운 배움의 인연이다.

촬영감독으로서 그는 현장을 충분히 컨트롤할 때 나오는 본인의 편안함을 중시한다. 그래서 지금은 단순하고 간결한 영화로 경험을 많이 쌓고 싶다. “<울어도 좋습니까?>처럼, 제가 편하게 찍은 영화는 그 편안함이 묻어나요.” 좋아하는 촬영감독도 코언 형제 영화를 찍은 로저 디킨스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처럼 장면마다 불필요한 요소는 죄다 덜어낸 심플함이 좋아요. 보는 사람도 편안하고요.” 이 풋풋한 촬영감독은 무리한 패기보다 소박한 안정 속에 최선을 다한다. “제 성격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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