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뮤즈, 에디 세즈윅. 타인에게 영감을 주되 자신을 위한 불꽃은 채 피워 올리지 못했던 다른 여성 예술가들처럼 워홀과 갈라선 세즈윅은 스물여덟 해를 뒤로하고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60년대, 그 누구보다도 날 매료시켰던 사람이 있다. 그때 그 감정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워홀의 고백에서 출발하는 <팩토리 걸>은 팩토리의 일원이거나 세즈윅 자신이 아니라 단지 ‘팩토리 걸’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그를 좇는다. 쓰라리고 슬프지만 또 눈이 멀 정도로 화려했던 세즈윅의 삶을 네 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1. 가정사
에디 세즈윅의 가정은 부유했다. 조각가이자 자선가이며 거대한 목장의 주인이기도 했던 프랜시스 민턴 세즈윅은 남태평양철도회사 사장의 딸 앨리스 델란노 드 포레스트와 결혼했다. 집안의 권세가 권세이니 만큼 세즈윅가의 아이들은 모두 사립학교에서 교육받았고 매일 비타민B를 담은 주사를 맞았다. 또 세즈윅가는 당시로선 급진적으로 흑인 여성에게 법적인 자유를 안겼던 테오도르 세즈윅 판사를 비롯해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조상들을 자랑했지만 빛나는 위상과 달리 정신병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지니기도 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역시 정신병을 앓은 적이 있어 의사가 그들은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했을 정도. 그럼에도 그들은 다섯 딸과 세 아들을 뒀으며 마약을 남용해 죽음에 이른 에디 외에도 그의 오빠들인 민티와 바비 또한 정신병을 앓다 자살과 교통사고로 삶을 등졌다.
2. 앤디 워홀과 밥 딜런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지적이고 아름다우며 자유로운 에디 세즈윅에 앤디 워홀은 분명 매혹됐다. <말>(1965)과 <비닐>(1965)에서 함께 작업한 이후 워홀은 세즈윅을 “팩토리의 여왕으로 만들겠다” 공공연히 선포했다. 이어 세즈윅의 대학 친구인 척 웨인이 워홀의 시나리오작가가 되면서 워홀과 세즈윅, 웨인 삼총사는 <뷰티 넘버 투>(1965)를 완성했다. 1965년 7월 처음 상영된 이 작품으로 세즈윅은 갑작스레 스타덤에 올랐다. 부쩍 가까워진 워홀과 세즈윅은 똑같은 복장을 한 채 공식 석상에 나서는 등 대단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불운의 씨앗은 서서히 싹을 틔웠다. 그 사이 세즈윅은 밥 딜런를 사랑하게 됐고 술과 마약에 집착했으며 주위에선 그에게 워홀과 이별하라 권유하기 시작했다. 1966년 딜런과 사라 론스가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다름 아닌 워홀이 전하면서 그들의 사이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해 재활시설을 전전하던 세즈윅은 1971년 6월 마이클 포스트와 결혼하며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패션쇼의 파티에 참석한 뒤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3. 최후
에디 세즈윅의 사인은 진통제나 최면제로 주로 쓰이는 바르비투르산염 중독이다. 자신을 헤로인 중독자라고 몰아붙이는 사람을 만나 쫓기듯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포스트는 자신의 곁에서 꿈꾸듯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팩토리 걸>에서 그의 역할로 캐스팅된 시에나 밀러가 말했듯 세즈윅은 자신만만한 겉모습과 달리 한없이 연약한 사람이었다. 두려운 현실과 마주할 수 없었던 그는 평생을 마약에 빠져 지냈다. 남편 포스트와도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재활시설에서 처음 만났으며 한때는 마약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몸을 섞었을 정도다. 금세 꺼져버릴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을까. 죽기 전날 파티장에서 일어났다는 일은 죽음을 앞둔 세즈윅의 담담함을 증언한다. 분위기를 돋우려는 듯 파티에 손금 읽는 사람이 불려왔다. 손금을, 특히 끊어진 생명선을 보고 흠칫 놀라는 그에게 세즈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
4. 음악
에디 세즈윅과 관련한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드 니코>(The Velvet Underground and Nico)에 실린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루 리드의 기억에 따르면 그 곡이 탄생한 배경은 이렇다. “앤디는 내가 에디 세즈윅에 대한 노래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예를 들면?’이라고 되물었고 그는 ‘오, 너는 그녀가 팜므 파탈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루’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팜므 파탈>을 썼고 우리는 그 곡을 니코에게 줬다.” 한때 뜨거운 관계였다는 밥 딜런의 앨범에도 세즈윅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있다.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이나 <레오파드-스킨 필-박스 햇>(Leopard-Skin Pill-Box Hat)이 그것들. 반면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은 이 역시 세즈윅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루머에도 시기상 그들이 서로에게 빠져들기 전에 녹음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