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카메론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07-06-01
글 : 최하나
<슈렉> 시리즈의 피오나 공주, 그녀를 보기만 해선 알 수 없는 카메론 디아즈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반짝거리는 금발 머리에 청량한 하늘빛 눈동자, 그리고 미끈하게 뻗어나간 몸매. 묘사의 상투성만큼이나 그녀의 시작은 전형적이었다. 1994년, 발그레한 조명 아래 스타킹을 걷어올리며 짐 캐리의 눈을 튀어나오게 만들었던 <마스크>의 그녀는 ‘금발 미녀’라는 말이 흔히 제시하는 이미지 그 자체였다. “골 빈 마네킹”류의 꼬리표가 즉각 따라붙었고, 사람들은 섹시한 포즈로 반짝 눈길을 끈 여배우의 미래는 너무나도 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3년. 그녀는 줄리아 로버츠에 이어 할리우드 여배우 중 두 번째로 ‘2천만달러 클럽’(영화 한편의 개런티가 2천만달러를 넘은 배우들을 일컫는 말)에 합류했고, 마틴 스코시즈의 <갱스 오브 뉴욕>을 포함해 30편에 가까운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금발 미녀가 아닌 <슈렉>의 녹색 괴물로 사랑받고 있다. 카메론 디아즈, 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그곳에서는 그저 짙은 화장과 부풀린 헤어스타일을 가진 멍청한 섹시 걸을 연기했을 뿐. 내가 그렇게 각인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론 디아즈의 출발은 사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책장을 장식할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 16살, 할리우드의 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모델 에이전시 소속의 사진작가를 만나 호감을 얻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모델의 직함을 달고 일본, 호주, 모로코, 파리 등 5개국을 넘나들었다. 캘빈 클라인, 리바이스, 코카콜라의 얼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21살,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마스크>의 오디션을 봤고, 본래 안나 니콜 스미스가 맡기로 되어 있었던 티나 역을 낙점받으며 다소 요란하게 스크린에 입성했다. 모두가 모델 출신의 금발 미녀를 적당히 속물적인 시선으로 환호할 때,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발견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21살 먹은 어린애였지만, 그때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무엇보다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차기작으로 정해져 있던 <모탈 컴뱃>을 위해 무술 훈련을 하다가 손목 부상으로 낙마하게 된 것은 그래서, 어쩌면 그녀에게 불운보다는 행운이었다. 디아즈는 서둘러 적당한 영화에 발을 담그는 대신, 놀랍게도 1년을 “놀면서” 흘려보냈다. 러브콜은 무수했으나, 쏟아지는 시나리오의 대부분은 제2의 티나, 제3의 티나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들이었고, 디아즈는 “골 빈 여자(bimbo)가 아닌 다른 역할을 제시하는” 작품을 기다렸다. 그리고 향후 3년 동안, 그녀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인디영화들에 잇따라 출연했다. <마지막 만찬> <그녀를 위하여> <필링 미네소타> <섹시 블루> 등 4편의 출연작은 딱히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디아즈 자신이 섣불리 이미지를 굳히는 대신 돌아가는 길을 택하더라도 “연기를 배우고자” 했던 결심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다. 97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걸치고 천사처럼 등장하던 디아즈는 곧장 “어머, 어머 당신이 줄스군요!”를 외치며 폴짝거린다. 나사 하나가 빠진 듯 호들갑스럽고 민망할 정도로 지독한 음치인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키미’는 로맨틱코미디 여주인공의 정형성을 무너뜨리며 디아즈를 스타덤에 올렸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녀의 선택은 화장실 유머로 악명 높은 패럴리 형제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였다.

“몸무게가 100kg가 넘고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는 여배우에게 ‘밥맛 떨어지는 외모를 가진 기분이 어때요?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나는 뚱뚱하고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는 배우와 다를 바 없이 그저 연기를 할 따름이다.”

정액을 헤어젤 삼아 머리를 세웠던 ‘메리’는 박스오피스에서 1억7천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디아즈에게 뉴욕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미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정말로 멍청한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디아즈는 곧이어 <존 말코비치 되기>에 출연하며 자신의 호언장담이 번지르르한 빈말이 아님을 입증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구질구질한 옷차림, 화장기 없이 번질대는 얼굴. 떼어낼 수 없을 것 같던 특유의 글래머러스함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탈수시킨 디아즈는 남자의 몸에 들어가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기이한 여자 로테를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짜릿하게” 연기했다. 놀랍게도, 제작진을 직접 찾아가 오디션을 자청한 결과였다. “오디션 없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원하는 작품이 항상 품 안에 던져지지 않는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번, 디아즈는 오디션을 위해 줄을 섰고, 화장조차 직접 하지 못하는 맹인 교사 캐롤을 연기했다. “여자의 일생이 무슨 흥밋거리나 되겠어”라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캐롤의 모습은 그때까지 디아즈가 맡아왔던 밝고 쾌활한 모습에 그늘을 드리우며 그녀의 얼굴에 입체성을 부여했다. 2000년, <미녀 삼총사>와 함께 밀레니엄을 시작한 디아즈는 <슈렉>의 피오나 공주가 됐고, <바닐라 스카이>에서 광기를 뿜어내며 시카고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2년, <갱스 오브 뉴욕>으로 마침내 “꿈과도 같던” 마틴 스코시즈 작품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역시, 오디션의 결과였다.

“사실, 돈은 벌 만큼 벌었다. 너무 엄청나게 벌어서 더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예전부터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 마음이 가는 것을 할 뿐이다.”

카메론 디아즈가 유년 시절을 보낸 LA의 서쪽 근교는 할리우드가 총격신을 촬영할 때 단골 로케이션으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여자아이들이 13살이 되면 문신을 새기기 시작하는 동네에서 정유회사 직원이었던 디아즈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거리에서 꺾이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아버지로부터 난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내게 욕을 하는 법과 날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법을 가르쳤다.” 자신이 “심장 속까지 톰보이”임을 이야기하는 카메론 디아즈는 그래서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천진무구한 여인보다는 거침없이 트림을 내뿜고, 호쾌한 발차기를 날리는 <슈렉>의 피오나 캐릭터에 가깝다. “집에 돌아가면 절대로 거울을 안 본다. 눈곱이 붙어 있는지 코딱지가 붙어 있는지도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야 겨우 알 정도”라는 디아즈가 지금까지 자신이 수상한 최고의 상으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어린이 케이블 채널 니켈오디언에서 피오나 공주 앞으로 선사한 “최고의 트림상”이다. “사람들이 내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못생긴 캐릭터를 연기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그때마다 나는 말해준다. 피오나는 아름답다고.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행복을 찾아나가는 그녀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리고 사실, 피오나의 동그란 얼굴과 코는 귀엽지 않나?”

스스로 “식당에 저녁 예약도 미리 하지 못할 정도로 계획없음”을 이야기하는 디아즈의 즉흥성은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독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직도 상습적인 지각으로 악명이 높고, 한때 알코올 중독 근처에 갔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배우이기도 하다. 빅맥과 감자칩을 무분별하게 즐기는 탓에 피부 트러블이 심해져 <갱스 오브 뉴욕> 시사회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등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대체 나는 언제나 철이 들까? 인생을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 는 없는데”라고 탄식하면서도 “그때 그때 순간을 즐기는 삶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디아즈는 여전히 치밀한 사업가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아낌없이 탐하는 천방지축 소녀에 가깝다. 커리어를 향한 대단한 야망이나 욕심은 애당초 그녀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영화를 찍는다. 무엇보다 이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다. 난 그냥 내 자신의 삶에 집중하려고 할 뿐이다.”

“군중 속에서 머리를 곧게 들고,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 그건 정말 멋진 기분일 거다.”

2003년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이후, 카메론 디아즈는 목소리 연기를 했던 <슈렉2> <슈렉3>를 제외한다면 <당신이 그녀라면> <로맨틱 홀리데이> 단 두편의 영화에만 출연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결별을 둘러싼 타블로이드와 파파라치의 공세에 “활동을 줄이면 관심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자발적으로 취했던 휴식기였다. 배우가 되고 나서 가장 힘겨운 점이 “마음 놓고 디즈니랜드에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디아즈가 생각하는 배우란 엔터테이너라기보다는, 스토리텔러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근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의 욕망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우리가 동굴에 벽화를 그리던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던 것 아닌가. 배우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존재다. 내가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영광이다.”

13년 전, <마스크>로 처음 기자회견 자리에 앉은 신인배우 카메론 디아즈에게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10년 뒤에는 당신이 어떤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죠?” “와… 10년요…? 그때도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솔직히 10년 뒤에도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때도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면, 그건 연기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뜻일 거예요.” 13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아직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은, 여전히 그녀의 모든 관심사다. “내가 쫓고 있는 것은 단지 행복이다. 그렇다. 나는 행복한 것을 좋아한다. 불행한 것은, 재미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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