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미셸 공드리의 농담에서 진심 찾기, <수면의 과학>
2007-06-08
글 : ibuti
스테판, TV는 꿈을 만들어드립니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가 복잡하고 어수선해 보였던 건 필립 카우프만의 정신없는 각본 탓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터널 선샤인> DVD의 음성해설에서 카우프만이 도리어 공드리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공드리는 “볼 때마다 이전에 못 본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답할 따름이다. 마침내 공드리 혼자 각본을 쓴, 그래서 그의 내면이 온전히 반영된 <수면의 과학>은 이전 작품보다 더 뒤죽박죽이다. 오죽했으면 제작자가 메이킹 필름에 나와 “영화 속 공드리의 모습만 있다면 그의 영화를 제작하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할 정도일까. 주인공 스테판이 ‘꿈 수프’에 넣기 위해 들춰내는 ‘잡다한 생각, 그날 보고 들었던 것, 온갖 감정, 과거의 추억과 뒤얽힌 오늘의 추억’을, 공드리는 따로 뒤섞어 영화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당연히 <수면의 과학>을 보다 궁금한 게 무지 많았을 당신에게 DVD의 부록 사이로 여행하기를 권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 스테판과 이웃 여자 스테파니의 사랑이야기 안에 숨은 것들을 속속들이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공드리가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사샤 부르도와 함께 맡은 음성해설은 카우프만과 했던 예전 것보다 훨씬 경쾌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프랑스판 DVD에서도 영어로 음성해설을 진행했던 공드리와, 마찬가지로 비영어권 출신인 세 사람의 영어 음성해설은 짐작대로 떠들썩해,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즐겁기로 소문난 공드리 영화의 현장 분위기를 음성해설로 대신 전하는 것 같다. 공드리는 베르날이 왜 자기 목소리를 일부 더빙 처리했느냐고 물으면 슬쩍 넘어가버리고, ‘스핀 아트’ 효과를 두고 ‘구토장면’이라고 농을 치며, 말이 없는 갱스부르를 대화에 끌어들이고자 때때로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고 우스갯소리로 일관하진 않는 것이, 장면과 주제에 관한 각자의 생각과 의도,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만 아는 사실들, 카메라 뒤로 가려진 에피소드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다. 음성해설의 끝에서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미래에 대해 베르날이 비관적으로 예상한 반면 갱스부르가 낙관론을 펴자, 공드리는 “남녀 관계에선 여자의 결정이 우선이다”라며 선뜻 여배우를 따른다. 공드리의 농담에서 진심을 찾는 걸음은 그의 영화를 읽는 것만큼 헷갈리면서도 흥미롭다.

영화의 구상을 담은 오리지널 스케치.
꿈속의 해피엔딩이 현실로 이어질까요?

음성해설 다음엔 40분짜리 ‘메이킹 필름’이 기다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동화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환상적인 특수효과가 전부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졌다는 건데, 본격적인 촬영 전에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된 현장이 상세히 공개된다. 꿈에 등장하는 세상이 주인공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창조물인 만큼 느낌이 묻어나는 수작업을 선택했다는 공드리의 말에 설득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예상 밖 인물들의 스케치로 나머지 짤막한 부록들을 구성한 것도 영화에 어울리는 발상이라 하겠다. ‘날 구조해줘’(4분)는 루 리드의 곡을 빌려와 <날 구해준다면>으로 개사한 여자를 소개하는 것이며(‘고양이 구호 단체’의 대표라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날 구해준다면>은 스테판이 스테파니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 고양이 구조에 관한 것이란다), ‘마술사 소개’(9분)는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의 집에 찾아가 그의 본래 직업인 마술사의 일상을 즐기는 코너다. 이어 모형과 미술 담당자의 인터뷰(11분), 감독과 배우 알랭 샤바의 영상 통화(7분) 등을 들러본 다음엔 마지막으로 ‘관객과의 대화’(19분)를 빼놓지 말고 봐야 한다. 특별시사에 관객으로 참석한 인지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들과 ‘꿈과 현실’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공드리는 상담이라도 받는 듯 진지한 모습이다. 영화의 제목에 ‘과학’을 괜히 붙인 게 아닌 모양이다.

<수면의 과학>은 바로 제 이야기죠. 미셸 공드리 감독.
스테파니의 꿈에선 거북과 사마귀가 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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