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궁금해지는 인물, 작가라면 한번 재창조해보고 싶고 여배우라면 한번쯤 연기해보고 싶은 인물 중에 황진이는 단연 앞자리에 놓일 만한 인물이다. 지난해 TV드라마 <황진이>가 안방의 주인 행세를 한지 불과 1년도 안 돼 영화로 만들어진 <황진이>가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이유다.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6월6일 개봉)는 여기에 홍석중의 원작 소설 <황진이>가 부여한 이야기의 힘과 디자이너 정구호가 시도한 스타일의 파격을 양 날개 삼아 황진이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놓는다. 다섯 개의 열쇠말을 징검다리 삼아 그 길을 밟아본다.
(*주의! 스토리가 낱낱이 공개됩니다. 온전한 영화 감상을 원하시면 관람 뒤 읽어주세요.)
의상 & 메이크업, 블랙과 H라인 실루엣의 모던한 신여성
절제되고 세련된 H라인의 검은색 치마, 검은색 아이라인을 강조한 스모키 메이크업. 유리로 만들어진 초현대식 건물에서 근무를 마치고 고급 와인바에 데이트하러 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외양을 묘사하는 듯한 이 문장은 16세기의 신여성 황진이가 사또의 부름에 집을 나서는 모습을 옮겨놓은 것이다. 이처럼 영화 속 황진이는 ‘붉은 치마, 붉은 입술’로 상징되는 조선시대 기생의 이미지를 뒤집는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정구호가 구현한 황진이의 외양은 한복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는 표현보다도 한 발짝 더 앞서간다. 검은 치마와 녹색 저고리, 보라색 치마와 검은 저고리, 녹색 치마와 청색 저고리 등 한복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색의 배합에 ‘시스루’를 연상시키는 레이스 겹침, ‘빈티지’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은박 무늬 등이 마치 2007 S/S 컬렉션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유난히 스크린 한가운데 정 중심 클로즈업이 자주 등장하는 송혜교의 얼굴과 머리 스타일도 모던한 매력을 주긴 마찬가지. 화장기 없는 진이에서 또렷한 아이라인과 어스름한 잿빛 섀도, 그리고 붉은 입술 대신 글로시한 입술의 명월이로 변신한 모습은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따라하고 싶은 메이크업이다.
이러한 외양은 단지 요즘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출신성분이 폭로되면서 세상의 비정함을 알아버렸고 그 차가운 세상보다 더 차갑게 살기로 작정한 명월이의 캐릭터를 드러낸다. 원작 소설에서 기생 명월이를 묘사할 때 “차디한(??) 얼음장 위에 비낀 조각달”이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세상을 자기 발밑에 두고 그 세상을 비웃으며 살겠다는 황진이의 다짐이 검은 치마에 은박 무늬 같은 무채색의 대비나 붉은색 대신 푸른 기운의 옷이 보여주는 단아함 속의 단호함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무려 6kg나 빠지면서 얼굴의 윤곽이 더 뚜렷해진 송혜교의 성숙한 얼굴도 16세기 ‘모던 걸’의 스타일을 멋지게 소화했다.
공간, 보라색 너울 속이 궁금한 황진이의 집
영화 <황진이>에서 공간은 현대적이고 절제된 의상이 3차원으로 확장된 버전이다. ‘붉은색을 제거하라’가 의상에 내려진 특명이라면 ‘촛불을 없애라’는 방방마다 내려진 특명이다. 모든 조명은 섬세하게 디자인된 등갓을 쓰고 있다. 촛불과 함께 사극의 방이 보여주는 상징 가운데 사라진 게 창호지 문이다. 명월의 집 마루를 가리는 건 창호지 문이 아니라 보라색 너울 같은 천이다. 창호지 문이 손가락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면, 이 천은 슬쩍 들춰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6월의 은은한 훈풍에 가볍게 흔들리는 너울은 창호지 문보다 훨씬 관능적이다. 또 커튼처럼 보이기도 해 서구식 건물의 홀을 연상시키도 한다.
서구적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이국적인 풍경은 황진이 집의 ㅁ자형 건물들로 둘러싸인 연못이다. 이 연못은 물 중간에 징검다리와 괴석을 빼놓으면 영락없는 서구식 가내 풀장을 연상시킨다. 원작에서 명월이와 노닐고 싶어하는 양반집의 심부름꾼들과 한양의 세도가들에게도 그 끈이 닿아 있는 명월이에게 아첨하려는 사람들, 명월이의 아름다운 자태를 훔쳐보려는 더벅머리 총각들까지 부산하게 건너는 곳이 바로 이 연못의 징검다리다.
어떤 세도가 앞에서도 속눈썹 한 가닥 떨리는 일 없이 당차고 냉정한 여인이지만 황진이도 자기만의 공간에서는 무너진다. 집 안의 다른 방과 달리 책과 종이, 벼루와 먹이 그 옛날 명민한 소녀 진이를 기억하는 좁은 방 한칸에 들어오면, 명월은 허무하게 사라진 꿈과 삶의 비루함, 자신의 처량함을 한탄한다. 검고 어두운 가구들은 안으로 삼키는 진이의 조용한 한숨과 같은 빛깔이다.
남자, 사랑했으나 사랑할 수 없었던 남자, 놈이
홍석중의 원작이 다른 황진이 소설과 가장 다른 점은 황진이를 사랑했던 남자 놈이의 존재다. 유지태가 연기한 놈이는 누구보다 황진이를 사랑했으며 또 사랑에 눈멀어 황진이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진이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던 놈이는 그가 영원히 진이의 곁을 떠나기 전까지 진이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아이 진이의 떼 같은 요구를 다 들어주고, 다 큰 처녀가 된 진이가 호기심에 남장을 하고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을 때 그녀를 구해주며, 기생이 된 진이가 안하무인의 양반 무뢰배에게 모욕당했을 때는 열배로 보복한다.
그러나 그는 진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신분의 벽 때문에 자신과 진이가 맺어질 수 없음을 깨닫자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진이의 출생의 비밀을 진이가 정혼한 승지 댁에 폭로한다. 결국 그가 얻은 건 비참하게 살다간 생모를 따라 기생들의 거리인 청교방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진이의 애정 없는 처녀성과 기둥서방 노릇뿐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이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과 사랑하는 이가 다른 남자들 품에서 벚꽃 같은 웃음을 흩뜨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에 놈이는 결국 진이를 떠나 산적이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묘하다. 명월이가 된 진이는 자신의 신세를 망친 놈이의 고백을 듣고 오히려 의연하다. 이렇게 냉정한 명월이지만 놈이가 자신을 떠나게 된 것을 알고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결국 그녀의 마음이 의지할 곳은 놈이였던 것이다. 황진이는 놈이가 이 세상에서 받는 마지막 술을 따라주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진이도 아무런 기약 없이 자신의 거처를 떠난다.
남자‘들’, 벽계수와 서화담, 김희열 그리고…
명월이가 된 황진이에게는 두 갈래의 남자들이 있으며 이것은 영화 <황진이>를 굴려가는 두 개의 바퀴이기도 하다. 하나가 놈이와의 끊어질 수 없는 질긴 운명이라면 다른 하나는 기생 명월이가 스쳐가는 남자들이다. 원작에서도 꽤 긴 분량을 할애하는 벽계수 에피소드는 기생으로 ‘활약’하는 황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송도 유수로 온 김희열의 초대를 받은 벽계수는 김희열과 친구들이 기생들과 질펀하게 벌이는 술자리를 마다하고 홀로 방에서 독야청청하다가 상복을 입은 진이를 본다. 진이에게 한눈에 반한 그는 자칭 도학군자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유혹당하고 만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의 ‘위선’을 까발리려는 김희열과 진이의 내기였음이 드러나면서 망신살을 뻗친다.
반면 유수의 주연 초대를 번번이 거절하는 서화담을 똑같이 골탕먹이고자 김희열은 황진이를 서화담에게 보내지만 황진이는 자신을 천것으로 하대하지 않고 선비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대하는 서화담에게 크게 감화받는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게 묘사된 두 남자에 비해, 송도 유수 김희열(류승룡)과 황진이의 관계는 다소 특이하다. 문벌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조금도 옹색하지 않은 김희열은 황진이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대신 그녀를 대화상대로 감싼다. 16세기식 ‘쿨’한 관계인 셈이다. 그러나 놈이 탓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불리해지고 또 진이를 가운데 둔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황진이는 자신의 하인이자 놈이의 심복인 괴똥이(과똥이??)를 구해내기 위해 김희열과 동침한다. 김희열은 드디어 송도 최고의 명기를 정복했다고 만족해하지만 황진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다. 기생 황진이가 조선시대 남자들에게 해준 것은 쾌락의 제공이 아니라 양반네들의 얄팍한 위선의 꺼풀을 벗겨내는 것이었다.
원작 vs 영화, 양반사회의 추악함을 알게 된 여성의 투쟁기
<황진이>의 원작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자 북한의 소설가 홍석중이 2002년 발표한 소설이다. 2005년 판권 계약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영화화가 시작된 이 작품은 배경이 지금의 개성인 송도인 만큼 상당 부분을 북한에서 촬영하고자 했으나 북핵 사태 등의 악재가 터져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집을 떠난 황진이가 버선발로 눈 덮인 험산을 올라가는 장면을 원경에서 보여주는 금강산의 설경 정도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보는 즐거움의 차원에서는 북한 소설 원작에 거는 기대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지만 이 영화가 다른 황진이 작품과 결정적으로 다르게 보일 수 있는 토대가 된 건 역시 홍석중의 원작이다. 이 작품에서 황진이의 태도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건 계급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냉소와 혐오다. 성인군자로만 알았으나 천하의 색마였던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비롯해 그가 기생이 돼 접하는 남자들을 통해 황진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중성을 뼈저리게 확인한다. 특히 겉보기에 호방하고 시대를 앞서간 것 같았던 김희열의 폭력적 면모는 이 작품이 계급이라는 문제를 얼마나 단호하게 보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애절하지만 결국 현실세계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황진이와 놈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또 신분의 벽 앞에서 좌절한 놈이가 산적이 돼 양반들의 식량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양반들의 부정을 폭로하는 건 놈이가 모델로 했다는 임꺽정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놈이가 이끄는 산적패와 관군이 대결하는 액션장면은 다소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비웃은 황진이와 황진이를 품기 위해 애간장을 태웠던 남자들의 대결은 이 소설, 또는 영화가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