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쟁점] 관객 맞춤형 극장 브랜드가 뜬다
2007-06-06
글 : 강병진
2030 여성관객 타깃으로 한 <쉬즈 더 맨>의 성공, 극장의 캐릭터화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2007년 5월, 극장가의 보이지 않는 승자는 거미도 아니고 해적도 아닌 남장여자였다. 지난 5월3일 개봉한 <쉬즈 더 맨>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를 원작으로 한 작품. <스텝 업>으로 주목받은 채닝 테이텀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개봉 4주째를 맞은 지금까지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봉 첫주부터 4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10위로 진입한 <쉬즈 더 맨>은 둘쨋주에는 7만명, 셋쨋주에는 10만명으로 관객 수를 늘려가더니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가 개봉한 5월 넷쨋주까지 12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 급기야 10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당초 전국 5만 명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던 수입사 데이지엔터테인먼트도 기대 이상의 결과에 놀라는 눈치.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의 흥행이 예상된 결과였다면, 진정한 반전의 승자는 분명 <쉬즈 더 맨>일 것이다.

‘영화의 흥행은 신도 모른다’는 속설을 입증한 걸까? 하지만 <쉬즈 더 맨>의 예상치 못한 흥행에는 결과를 예상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지난 한달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는 <쉬즈 더 맨>이란 제목 대신 ‘무비온스타일’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비온스타일은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가 전국 지점을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런칭한 브랜드다. 무비온스타일을 기획한 메가박스 프로그램팀의 장경익 팀장은 “극장에서 재밌는 영화를 보거나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에 또다시 같은 극장을 찾는 관객의 구매성향이 뚜렷이 보였다”며 “극장의 예고편이나 포스터만으로도 관객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장의 마케팅 도구를 활용하는 것과 함께 상영관을 메가박스 지점으로 제한하여 마케팅의 집중도를 높이는 전략인 것이다. 무비온스타일의 첫 실험대상인 <쉬즈 더 맨>은 지면광고나 인터넷 배너광고 없이 예고편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고, 메가박스 각 지점에서 지속적으로 상영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입소문이 늘면서 오히려 포털사이트에서 예고편을 메인에 올려놓거나 영화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장경익 팀장은 “지금까지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은 극장에 투입되기보다는 매체로 흘러들어가는 돈이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재밌는 영화를 예쁘게 포장하면 굳이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걸 확인했다”고 실험의 경과를 설명했다.

2030 여성관객을 모십니다

하지만 극장을 활용해 마케팅의 집중도를 높인 것만으로 <쉬즈 더 맨>의 흥행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무비온스타일이 메가박스의 자매회사인 온미디어의 온스타일 채널에서 이름을 빌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비온스타일은 20, 30대 여성들을 집중타깃으로 설정하여 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영화들을 골라 마케팅하고 상영하는 전략을 가진 브랜드다. 때문에 <쉬즈 더 맨> 또한 주인공인 아만다 바인스보다 상대역인 채닝 테이텀에게 포인트를 맞추고 마케팅을 진행했다. 예고편에서 채닝 테이텀을 부각한 것은 물론이고 각종 사진자료와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여성관객이 스스로 스타를 창출해내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전략이었다. “채닝 테이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극장을 찾고, 나올 때는 아만다 바인스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기대했다. <쉬즈 더 맨>은 10대 후반의 여학생들까지 타깃으로 설정했는데, 워낙 입소문의 효과가 강력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무비온스타일은 이후에도 여성들을 주제로 그들의 사랑, 일, 성공,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갈망을 다룬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할 계획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영화라도 여성관객을 공략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전국적인 체인망을 이용해 배급하겠다는 전략이다. 무비온스타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국의 워킹타이틀처럼 관객이 이름만 들어도 영화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작은 영화들이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인디영화관을 통해 관객에게 소개된 것과는 다른 색깔의 포장인 것. 장경익 팀장은 “예술이나 인디란 이름이 관객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나타낼 때가 있다. 실제로는 유럽에서 흥행한 영화인데도 예술영화로 포장되어 적은 수의 관객을 동원하고 사라지고 만다. 무비온스타일은 영화의 이미지를 더 쉽게 풀어가면서 단지 2차 판권으로 가는 경유지 역할에서 벗어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멀티플렉스의 캐릭터 브랜드 개발의 성취와 한계

메가박스의 이런 시도를 극장 관계자들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와이드 릴리즈를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 이상 극장 마케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어차피 영화의 타깃은 극장 관객인데, 1억원을 들여 다양한 매체에 광고를 하는 것보다 극장에만 5천만원을 투자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팩토리 걸>을 무비온스타일 망에 태울 스폰지는 이후 라인업의 영화들도 극장 마케팅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누도 잇신의 <황색눈물>은 CGV의 16개관에서만 상영할 예정이며 <열세살, 수아>는 프리머스 체인의 40개 스크린에서만 상영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진흥위원회 국내진흥팀의 김보연 대리는 극장이 먼저 자신을 캐릭터화하는 작업을 높이 샀다. “작은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은 영화 자체의 특징보다 극장을 먼저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시네큐브나 미로스페이스 등을 찾는 관객은 특정 감독, 배우의 영화를 본다기보다 그 극장의 영화를 보러 간다고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메가박스가 특정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메가박스의 경쟁사인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 또한 “같은 방식의 마케팅을 검토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멀티플렉스가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메가박스의 시도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극장 관계자는 “수익보다는 극장 자체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이루어진 계획일 것”이라며 “과연 언제까지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무비온스타일이 타깃 설정을 2030에 맞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메가박스 코엑스점을 중심으로 한 강남지역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매출에 큰 도움이 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메가박스쪽도 “<쉬즈 더 맨>이 가져온 수익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경익 팀장은 “<쉬즈 더 맨>을 코엑스나 신촌지점에서만 상영한 건 아니었다”며 “전국 11개 지역으로 스크린을 넓힌 것은 무비온스타일이란 브랜드를 각인하려는 전략이었다. 브랜드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이익도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실험이라는 의미가 크지만, <쉬즈 더 맨>의 성공은 이후 지속적인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알아야 홍보가 보인다

장경익 메가박스 프로그램팀 팀장

-무비온스타일이 메가박스가 자체 수입한 영화를 독점상영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기획이라는 말이 있다.
=무비온스타일은 배급, 수입을 모두 총괄하는 브랜드다. 수입은 단독으로도 할 수 있고 <쉬즈 더 맨>처럼 다른 수입사의 영화에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단지 무비온스타일이라는 브랜드가 하나의 종류를 각인하는 역할을 기대할 뿐이다.

-강남지역 2030 여성들이 집중타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거란 지적도 있는데.
=물론 온스타일 채널은 강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비온스타일은 온스타일과 프로그램 성격이나 타깃 대상은 같아도 매체가 다르지 않나. <쉬즈 더 맨>을 전국 11개 지점으로 펼친 이유도 수익보다는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해서 좋은 영화를 상영할 기회를 많이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마케팅을 시도하게 된 배경에는 요즘 멀티플렉스가 느끼는 위기요인들이 작용했을 것 같다.
=당연하다. 하지만 자구책을 세우겠다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 메가박스를 어떻게 차별화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예술영화 전용관도 고민했지만, 그것은 작은 영화들의 정류장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타깃으로 설정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하다가 로맨틱을 떠올린 것이다.

-브랜드 측면에서 벗어나 극장 마케팅 측면에서 기대하는 건 뭔가.
=무조건 처음부터 200, 300개 스크린에 거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해서 확대 개봉하는 사례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다. 과거 <왕의 남자>도 작게 시작해서 확대개봉하지 않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의 마케팅 지점을 정확히 짚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비온스타일도 메가박스라는 멀티체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멀티플렉스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케팅비를 적게 썼다가는 아무 흔적도 없이 극장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을 텐데.
=무조건 돈을 쓸 게 아니라 의미있는 광고매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2년에 개봉한 <집으로…>는 일반시사를 많이 했고 그로 인해 입소문이 퍼진 경우였다. <두사부일체>도 유료시사를 통해서 호감도를 만들어낸 뒤 확대개봉한 사례다. 또 <쉬즈 더 맨>은 타깃이 분명하기 때문에 스폰서 광고유치가 매우 쉬웠다. 영화는 파급효과가 많은 산업인데, 그동안 그런 효과를 다른 데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했었다. 그들이 영화의 특징을 활용하게 하면서 영화의 홍보에도 영향을 가져오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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