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신인배우의 은밀한 자신감
2007-06-14
글 : 정재혁
사진 : 오계옥
<황진이>의 정유미

정유미? <케세라세라>가 아니다. 실례인 줄 알지만 <황진이>의 정유미를 말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다른 정유미를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 <황진이>의 몸종 금이를 연기한 배우 정유미는 <케세라세라> <사랑니> <가족의 탄생>의 정유미가 아니라고. 2003년 영화 <싱글즈>를 시작으로 <실미도> <위대한 유산> <인형사> <댄서의 순정> 등 여섯편의 장편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학생. 연기와 인지도는 아직 신인이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꽤 믿음직스럽다. “제목도 황진인데, 금이의 감정은 진이 아씨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죠.”

몸종 금이를 연기한 정유미의 말대로, 사실 <황진이>는 황진이 혹은 진이와 놈이의 이야기다. 몸종 금이는 말 그대로 황진이의 종. 신분뿐 아니라 사건, 감정의 맥락까지 황진이란 인물에서 시작된다. 괴똥이와의 혼례도 진이와 놈이의 결말을 위한 사건으로 펼쳐진다. “괴똥이와 금이 관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묘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결혼을 하는데, 얘들이 어떤 마음으로 혼례를 치르는지. 감독님께 말씀도 드려봤지만, 다 설명할 수도 없는 거라 그냥 혼자 생각했어요. (웃음) 지금은 어떻게 진전이 되고 있는 거다, 라고.”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통해 한편씩 출연작품을 늘려간 정유미는 작품마다 성실했다. <황진이>를 준비하면서는 원작 소설은 물론 다른 역할의 대사까지 읽었고, 단편영화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을 위해서는 발레 슈즈를 신었다. 중간에 제작이 중단됐지만 첫 주인공 영화가 될 뻔했던 방은진 감독의 <첼로> 때에는 7개월간 첼로를 켰다(이 작품은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성현아 주연의 <첼로-홍미주 살인사건>으로 잘못 검색된다). 2006년에는 중국 드라마 <오성호텔>과 홍콩 드라마 <만남>의 촬영을 위해 1년6개월을 타지에서 보냈다. “중국어는 대사의 30%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중국어가 70%였어요. 한국어로 음을 적어서 대사를 하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죠.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대사를 하면 전혀 감정 전달이 안 될 테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중국과 홍콩에서의 시간을 호텔 방 안에서 보냈다. “통역하는 분과 계속 대본을 보고 외웠어요. (웃음) 그랬더니 되더라고요.”

또 한번의 실례지만, 정유미의 출연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84년생인 그녀의 나이도 생각보다는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꾸준히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걸어왔다. 고등학생 시절 “최지우의 은사”였던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연기학원에 등록했고, 우연한 기회에 흥미를 느껴 연극영화과에 지원했다. <싱글즈>의 출연은 한양대학교 선배인 권칠인 감독과의 학연을 통해 이뤄졌지만, 이후엔 오디션에 또 오디션이었다. <실미도>에서는 시나리오상으로 예정됐던 출연 분량이 편집됐고, <황진이>에서는 3시간30분이 2시간21분으로 편집되면서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장면”도 그냥 날아갔다. “처음엔 별로 잘린 장면이 없어서 이 정도면 좋아(웃음), 라고 했다가 점점 갈수록 많이 편집돼서 조금 속상하긴 했어요.” 아마도 그래서 실례를 범했던 걸까. 정유미의 방식은 조용하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철저하게 준비하는” 그녀의 태도는 화려한 팡파르보다 진중한 침묵에 가깝다. 데뷔 전까지만 해도 전혀 연예계를 꿈꾸지 않았고, 데뷔를 한 뒤에도 스타보다는 “평생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 “이름을 바꾸면 잘될까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가도 “이제는 오히려 편안해졌다”고 매듭짖는다. “연기를 하며 짜릿함을 맛본 작품” <황진이> 이후엔 바로 <두사람이다>의 홍보와 사극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해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낼 배우. 정유미? 그녀는 <황진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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