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러브 & 트러블>로 돌아온 ‘마돈나의 감독’
2007-06-14
글 : 김도훈
알렉 커시시언의 영화인생 3막

<러브 앤 트러블>의 크레딧에서 브리트니 머피가 아니라 감독의 이름을 먼저 짚어내는 관객이라면 마돈나의 열광적인 팬일 가능성이 크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워킹 타이틀 영화를 솜씨있게 엮은듯한 로맨틱코미디 <러브 앤 트러블>의 감독 알렉 커시시언은 90년대 초를 뒤흔든 마돈나 다큐멘터리 <진실 혹은 대담>의 감독. 이후 단 한편의 장편 영화를 내놓고 사라졌던 베이루트 태생의 커시시언은 어떻게 16년을 돌고돌아 스크린에 복귀했을까.

1988~93년 - MTV 성공시대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

알렉 커시시언의 첫 연출작은 마돈나의 ‘금발의 야망 투어(Blond Ambition Tour)’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1991)이다. 당시 26살이었던 커시시안은 가수 바비 브라운의 뮤직비디오 <My prerogative>를 연출하는 등 (데이비드 핀처와 함께) 당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평가받던 재원이었다. 최고의 뮤직비디오를 위해 수백만달러를 퍼붓는 마돈나가 그를 놓칠 리 없다. 커시시언이 하버드대 졸업 작품으로 만든 팝오페라 비디오 <폭풍의 언덕>에 깊이 감화된 팝의 여걸은 직접 전화를 걸어 “500만달러를 줄 테니 투어영화를 찍어달라”고 요청했고, 커시시언은 16mm 카메라에 흑백필름을 장착하고 22번의 전세계 콘서트에 동행하게 됐다. 하지만 커시시언은 단순한 콘서트 기록이 아니라 백스테이지의 혼란스러운 일상을 담은 진솔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결국 마돈나의 허락 아래 찍어낸 250시간의 필름은 기나긴 편집을 거쳐 2시간짜리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으로 탄생했고, 당시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1994~98년 - 소포모어 징크스 시대

<하버드 졸업반> 포스터

커시시언은 <마돈나의 진실 혹은 대담>의 성공에 이어 장편 데뷔작 <하버드 졸업반>(With Honors)을 1994년에 내놓는다. 브렌단 프레이저, 조 페시와 <그레이 아나토미>의 패트릭 댐시가 출연한 이 영화는 하버드 졸업반 학생과 노숙자의 우정을 그리는 소박한 드라마였다. 당연히 영화계와 관객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버드 졸업반>은 할리우드가 커시시언에게 기대했던 종류의 영화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커시시언이 <청춘 스케치>와 <웨인즈 월드>의 대본마저 집어던지고 이 단순한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는 단 하나, 마돈나와 MTV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돈나의 감독이라는 이름을 떨쳐내고 싶었다. 깊이있는 드라마를 제대로 감독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불행히도 결과는 끔찍했다. 영화는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나 급격하게 순위권에서 토해져나왔고, 비평가들은 거의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진부한 교훈극 <하버드 졸업반>에서 유일하게 쓸 만한 것이라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마돈나의 주제곡 <I’ll remember>가 아니었을까. 커시시언이 직접 감독한 주제곡의 뮤직비디오는 아주 괜찮은데, 영화보다 이게 낫다는 건 정말이지 비극이다.

1999~2007년 - 광명의 런던 시대

<러브 & 트러블>

상심한 커시시언은 미국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고,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 문화의 수도에서 지난 10년간 거주해왔다. 커시시언은 무리하게 메가폰을 쥐는 대신 MTV 영재 시절의 감각을 발휘해 다수의 TV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헤더 그레이엄이 출연하는 일본 음료수 ‘Love Body’ 광고와 마돈나와 또다시 팀을 이루어 만든 화장품 ‘맥스팩터’ 광고가 이 시기의 주요 작품이다. 가수 대런 헤이즈의 첫 솔로 싱글 <Insatiable>의 뮤직비디오는 2002년의 가장 예술적인 뮤직비디오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오랜 친구가 된 대런 헤이즈는 알렉 커시시언을 마돈나에 못지않은 예술적 독재자라고 증언하는데, 이에 대해 커시시언은 “통치광(control freak)만이 또 다른 통치광을 통치할 수 있다”며 당당한 거드름으로 답한다. 어쨌거나 런던에서 예술적 광명을 되찾은 커시시언은 지난 2004년 올랜도 블롬과 빌 팩스턴, 산티에고 카브레라가 주연한 <헤이븐>(Haven)을 제작해 오랜만의 호평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데이비드 핀처와 뤽 베송을 공동제작자로 끌어들인 신작 <러브 & 트러블>을 완성시켰다. 두 번째 영화 <하버드 졸업생>으로부터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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