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웃어주는 남자는 위험하다. 훈훈한 외모의 소유자인 그가 섹스만 찾는 속물도 아니라면 그의 미소에서 함정을 의심해봐야 한다. 영화 <러브 & 트러블>의 잭스(브리트니 머피)는 자신의 직장에 새로 들어온 파올로를 그런 눈초리로 바라본다. 선한 외모와 균형잡힌 몸매는 그렇다고 쳐도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느끼하게 치근덕거리지도 않는 남자라니. 잭스는 자신의 이상형을 찾았다고 외치는 대신 아예 그를 게이로 단정짓는다. 물론 그녀의 어설픈 ‘게이다’는 이성애자치고 잘생기고 몸매 좋고 성격도 좋은 남자가 없다는 경험적 논리인 동시에 사랑에 빠지기 두려워하는 자신의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파올로를 연기한 산티아고 카브레라의 외모는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섬세한 눈빛에는 이해심이 가득하고 입가에 밴 미소는 경건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드라마 <히어로즈>에서 그가 손과 발을 붓으로 찔려 신음할 때 많은 시청자가 예수의 서거를 떠올린 것도 어쩌면 그의 외모가 대다수 예수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백인남성과 흡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티아고 카브레라는 1978년 칠레 주재외교관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3형제 중 유일하게 칠레에서 태어난 터라 그의 부모는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를 이름으로 붙였다.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캐나다, 영국, 루마니아 등을 오가며 살았던 덕분에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는 카브레라는 한때 프로 축구선수를 목표로 세미프로리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황제를 꿈꾸던 그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이는 고등학생 시절 연극반 선생이었다. <오셀로>의 몬타노 역으로 첫 연극무대를 밟은 그는 런던 드라마센터를 거쳐 여러 영국 TV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2005년 드라마 <엠파이어>에서 옥타비우스를 연기하며 시청자의 레이더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어 캐스팅된 <히어로즈>는 비로소 산티아고 카브레라란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 이 드라마에서 캔버스에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화가 아이작 멘데즈를 연기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자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히어로즈>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히어로즈>는 매우 국제적이다. 드라마의 다양한 캐릭터들은 그들의 취향과 정체성이 저마다 다르다. 나에게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하나의 모험과도 같은 일이다.”
실제의 카브레라는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 반듯해서 재미가 없는 남자다.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냐는 질문에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가족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말하거나, <히어로즈>의 성공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냐는 질문에 “이전보다 많은 행사와 파티에 초대된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고 무심히 대답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평소 즐겨 입는 옷이라곤 “몇벌의 티셔츠와 청바지”가 전부인 그는 <러브 & 트러블>에서도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만으로 잭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잭스를 연기한 브리트니 머피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머피는 카브레라의 스타일에 대해 “그렇게만 입고도 멋있을 수 있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논평했다. 아마도 카브레라의 매끈한 몸매가 청바지를 입어도 슈트를 걸친 듯한 환영을 만들었을 듯. 보기에도 훌륭한 체형을 지녔지만 그가 몸매의 비결을 이야기할 때는 시샘이 나기도 한다. “런던 드라마센터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매일 밤 관광용 자전거에 손님을 실고 뛰어다니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지금의 내 몸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웃음)” 연기 외에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요즘에는 요가와 달리기로 자신의 왕성한 식욕을 달래고 있다. “나는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본 적이 없다. (웃음) 나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우고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마흔이 될 때쯤에는 다이어트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팬들의 기대만큼이나 섬세한 외모와 소탈한 성격을 가졌지만 잭스의 예상대로 그가 게이인 것은 아니다. 현재 그는 연기 공부를 하던 당시에 만난 동갑내기 연극연출가를 아내로 맞아 런던에서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다. 외모와 일, 가정생활 모두 반듯하지만 아이작 멘데즈의 다층적이고 복잡, 다양한 성격을 좋아하는 만큼 이후의 차기작들마저 자로 잰 듯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현재 그의 캔버스에 밑그림으로 나타난 차기작은 <골3>다. 이 영화에서 카브레라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지아니 리베라의 이름을 합친 축구선수 디에고 리베라를 연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