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 공항, 뉴욕을 지나 이번에는 사이버테러다. 세월은 흘렀지만 존 맥클레인의 아날로그식 다이하드 액션은 디지털 시대에도 어김없이 그 괴력을 발휘한다. 지난 6월12일, <다이하드4.0>의 개봉을 앞두고 브루스 윌리스, 매기 큐, 저스틴 롱, 이렇게 세 사람이 일본을 찾았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프로모션으론 첫 방문이라는 브루스 윌리스는 기자회견에 앞서 일본 취재진을 향해 ‘겐키데스카’로 인사를 건네며 연이어 일본 관객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일본에서 89년 2월에 개봉한 <다이하드>는 흥행수익 18억4천만엔(134만명), 90년 9월에 개봉한 <다이하드2>는 51억1천만엔(343만5천명), 그리고 95년 7월에 개봉한 <다이하드3>는 무려 72억엔(432만명)이라는 초대박 흥행수익을 기록,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 위력을 더해갔다. <다이하드3>의 일본 성적은 이 영화의 전세계 매출의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였다고 하니 이 정도가 되면 이번 작품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브루스 윌리스가 일본을 첫 프로모션 방문지로 결정한 까닭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당일 롯폰기 도호시네마에서 오전 9시로 예정되어 있던 시사가 시작되기 전, 폭스 관계자는 일본 홍보를 위해 어렵게 상영프린트를 준비했지만 이번에 상영되는 필름은 100% 완성버전이 아니라 아직 색보정 등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90% 정도의 완성버전이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브루스 윌리스 역시 이번 상영필름이 완성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종버전에 대해서는 렌 와이즈먼 감독만이 알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12년 만에 돌아온 다이하드의 베테랑 형사 존 맥클레인의 이번 상대는 하이테크로 무장한 사이버 테러리스트다. 독립기념일 전야, 워싱턴 DC의 FBI 본부에 설치된 사이버범죄부의 교통, 통신, 원자력, 금융 등 미국의 모든 인프라를 감시하는 시스템에 누군가가 해킹을 시도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서 작동되는 한 국가의 네트워크 시스템은 너무도 간단하게 마비되고, 전 미국은 이제 통제불능상태의 혼란에 빠진다. 사이버테러를 지휘하고 있는 이는 전 FBI 멤버인 가브리엘. 그의 목적은 미국을 접수하고 금융시스템을 이용해 거액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맥클레인은 여전히 부인과는 이혼한 채이고 딸과의 사이도 썩 매끄럽지만은 않다. 사이버테러 집단의 의뢰로 멋모르고 프로그램 개발에 참가했던 해커들이 하나둘 제거되자, 맥클레인의 상부는 해커 중 한명인 매트를 연행하라고 지시한다. 매트의 아파트를 찾은 맥클레인은 테러리스트 용병들과 맞부딪히면서 다이하드한 육탄전을 마침내 시작한다. 물론 상대가 사이버 테러리스트인 만큼 아날로그 구세대인 맥클레인과 디지털 세대의 해커 매트가 멋진 파트너십을 이룬다.
고교 시절 16mm로 자작 <다이하드>를 만들어 본인이 맥클레인 역으로 출연할 정도로 시리즈의 팬이었다고 고백하는 와이즈먼 감독은 데뷔작 <언더월드>에서 보여준 액션과 디지털 특수효과를 <다이하드4.0>을 통해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었던 듯하다. LA공항과 다운타운을 잇는 고속도로를 12시간이나 봉쇄하고 감행한 액션신이나 윌리스 자신이 자부하는 5층짜리 엘리베이터 샤프트신 등을 보고 있노라면 와이즈먼 감독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 흔적이 잘 들여다보인다. 닌자를 연상시키는 마이(매기 큐)와의 액션도 나름 인상적이다. 하지만 플롯이나 인물들은 단순하고 성기다. 전체적으로 전작들의 패턴이나 캐릭터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예전의 <다이하드>를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익숙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다만 전편들의 톡톡 튀는 유머감각이나 독특한 상황은 좀 옅여졌고, 테크놀로지의 과용으로 만들어진 액션장면이나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와 대결구도는 시리즈에 플러스 알파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맥클레인의 <다이하드> 액션은 7월19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