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빨강머리 에이미의 도약
2007-06-28
글 : 장미
<준벅>의 에이미 애덤스

에이미 애덤스. 당신이 수상쩍을 만큼 평범한 이름을 가진 이 배우를 기억한다면, 그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초짜 간호사 브렌다 스트롱 때문일 것이다.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교정기를 낀 채 울음을 터뜨리던 그녀는 세상을 조롱하던 프랭크 애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유일하게 본명을 속삭인 상대다. “그녀는 정말 다정하죠. 프랭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결국 천재적인 누군가와 함께할 만한 매력이 있었어요.” 스필버그가 지휘하는 대작 프로젝트에 디카프리오와의 협연과 키스신. 프랭크가 브렌다에게 전혀 다른 삶을 선사했듯, 이 영화는 애덤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됐다. 1999년 <드롭 데드 고저스>로 스크린에 데뷔했으나 크게 히트한 영화에도, 크게 호평받은 영화에도 출연한 적 없었던 그녀였다. “이 영화는 분명히 변환점이었죠. 그렇지만 이건 레오의 영화예요, 나는 그 사실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와의 작업이 나를 더 멀리 데려갔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이죠.”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디카프리오의 영화였다면 에이미 애덤스의 영화는 <준벅>이었다. 시카고에서 어엿한 갤러리를 운영하는 손윗동서 메들린(엠베스 데이비츠)에 비해 애슐리 존스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촌구석에 틀어박힌 한심한 신세다. 곧 태어날 아이가 남편의 식은 마음을 되돌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는, 그러나 질투해 마땅한 메들린을 반기고 감싸고 위로하기까지 한다. 어찌 보면 천진하고 어찌 보면 괴짜 같은 이 캐릭터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영화의 색채를 가장 극적으로 전달한다. “나는 꽤 열린 사람이지만 애슐리를 내쫓았을 거예요. 아마 이랬겠죠. ‘아, 그녀는 정말 나를 신경질나게 해’.” 하지만 애덤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애슐리는 전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준벅>에서의 열연은 그녀에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전미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 인디정신상 여우조연상 등 적지 않은 트로피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가 되는 영광을 안겼다. 동시에 디카프리오와의 키스가 어땠는지 캐묻는 짓궂은 기자들도 사라졌다. “나는 오스카의 경험이 스쳐지나가길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물만 마시고 샴페인은 그냥 보냈죠.”

사실 애덤스의 데뷔담은 여느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슷하다. 1974년 8월 군인인 아버지의 근무지였던 이탈리아 비첸자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국 콜로라도 캐슬 록에서 6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라났다. <준벅>에서 광기에 휩싸인 듯 반짝이던 옅은 붉은 머리칼은 타고난 것이었다. 인형 같은 외모, 달짝지근한 목소리와 달리 소탈한 콜로라도 토박이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댄서를 꿈꿨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날 준비가 돼 있었죠. 그게 옳은 것 같았어요. 대학에 가는 것은 상상도 안 했어요. 세상으로 뛰쳐나가 일을 시작하고 싶었죠. 정확히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춤, 공연예술쪽과 관계있다는 사실은 알았어요.” 몸매를 드러내는 유니폼으로 유명한 술집 겸 식당 ‘후터스’와 식당식 극장 등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던 사이 어느 영화 제작자의 눈에 들어 운좋게 연기자 데뷔를 준비했다. 고난이 닥쳐온 것은 그 이후였다. 1999년 드라마 <맨체스터 프렙>이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2>라는 제목을 단 채 비디오 가게로 직행하면서 그녀의 할리우드 입성은 좌절됐다. <드롭 데드 고저스>로 데뷔하고 <싸이코 비치 파티> <펌프킨> <엘리자베스 헐리의 못 말리는 이혼녀> 등에 출연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준벅>

“배우로서 내 철학은 이거예요. ‘과거의 어떤 것도 부정하지 말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단숨에 파악할 수 있어요. 그건 식당식 극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이죠.” 여배우의 휘광을 거부하듯 애덤스는 자신이 시시한 사람이라고 토로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준벅>이 덧씌울 선입견 역시 가볍게 밀어내면서. “내 성격은 내 얼굴과 정반대예요. 사람들은 나를 과대평가해요. 그래요, 사람들은 내 주변을 편안하게 느껴요, 너무 거리를 두지 않으니까요. 내가 교양과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요.” 파티를 기꺼워하지 않는 대신 친구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는 그녀의 차기작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조합된 <인챈티드>. 왕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 사악한 왕비를 분노케 해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추방된 한 여자를 뒤쫓는 영화다. 미국 맨해튼에 떨어진 그녀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진정한 사랑을 구해야 한다. 간소함을 즐긴다는 평소 고백과 달리 동화 속 공주로 등장한다니, 그 변신이 왠지 궁금해진다. 물론 애덤스 자신이야 아무렇지 않게 탄성을 내질렀지만. “내가 디즈니 공주가 된다고요! 부담은 없어요.”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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