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장전하고, 돌리고, 쏜다. <13 자메티>
2007-06-27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도박사는 쇼펜하우어를 읽지 않는다

프랑스 이민자 집수리공인 22살의 세바스찬(게오르기 바블루아니), 그는 자신이 수리하던 집에서 일하면서 우연히 집주인이 어떠한 ‘횡재’할 게임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지를 가로채 죽은 집주인 대신 기차에 오른 세바스찬의 삶은 의지와는 관련없는 어떠한 ‘우연’의 판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철저히 운에 명을 맡기는 러시안룰렛 게임에서, 인간은 자유의지의 개별자가 아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세바스찬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서스펜스로 지속된다. 기차표와 호텔 예약증 외에 그에게 던져진 단서는 없다. 호텔에서 받은 전화의 지령을 따라서 만난 낯선 남자가 주는 13번(Tzameti란 13의 그루지야 말), 이것이 그의 운명의 숫자다. 영화의 전반부가 탄력적인 음악에 따라 우아한 템포로 전개됐다면,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음악이 사라진다. 꽉 짜인 긴장감이 음악마저 밀어내는 것이다. 장전하고, 돌리고, 쏜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삶인 양 이 ‘강렬한’ 흑백영화는 세번 반복되는 러시안룰렛 게임장면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전부지만 참 놀라운 전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영상과 전개 스타일, 극도의 긴장과 잠시의 탈진 상태의 반복으로 구성된 이 영화엔 결말을 제외하면 어떠한 부수적인 신도 없다.

감독 젤라 바블루아니는 1979년 그루지야 출생으로, 장편 데뷔작 <13 자메티>로 2005년 베니스영화제 신인감독상과 이듬해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는 그루지야의 유명 감독인 테무르 바블루아니의 아들로, 영화에 빠졌던 10대 시절을 동구권 해체라는 격동 속에서 보냈고, 17살 때 형제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왔다. 참고로 주연인 게오르기 바블루아니는 감독의 친동생이다. 각본 완성 뒤 자비로 찍은 ‘집단 러시안룰렛’ 장면을 영화사에 보내 투자를 얻고 가까스로 완성한 첫 장편 <13 자메티>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2008년 하반기에 완성될 할리우드 리메이크 역시 그의 손을 거칠 예정. 소비에트 무성영화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은 강렬한 흑백 영상은 인상적이며, 단호하고도 꽉 짜인 스타일은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폐쇄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이지? 영화관을 나서면서 이윽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장전하고, 돌리고, 쏜다. 그게 다다. 영화 속의 도박사의 말처럼 운은 논리와는 반대로 나가며, 도박사는 쇼펜하우어를 읽을 틈이 없다. 의지와 표상으로는 세계가 구성되지 않는, 이렇게 철저히 운에 달린 인생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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