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뉴욕탈출> 양해훈
2007-07-06
애꾸눈의 은밀한 매력

지금부터 언급할 영화는 작가주의영화나 예술영화 혹은 영혼의 울림을 주거나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20년 가까이 나를 유아적 마초로 존재하게 해준 집요한 원흉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건대입구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 근처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다. 거기서 가끔 일명 ‘삐자 비디오’를 틀어주었는데 <뉴욕탈출>(Escape from New York, 1981)이라는 영화를 처음으로 봤다. 그때는 이 영화가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인지도 커트 러셀이 누군지도 모르고 봤다. 단지 애꾸눈으로 나오는 남자 캐릭터가 멋져서 끝까지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고 약국에서 안대를 사다가 사인펜으로 검게 칠하고 아버지 담배를 꼬나물고 거울 앞에서 폼잡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애꾸눈에 매혹되어 마치 그게 남자의 길인 양 살아갔다.

시간이 흘러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모든 게 너무 심심했고 그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학교가 파하면 으레 비디오 가게로 향했다.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호객행위들이 판치는 비디오 시장이었기에 신중히 비디오를 골라야만 했다. 비디오를 고르던 중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비디오 표지에는 멋진 애꾸눈 남자가 유혹하듯 내 심장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애꾸눈이라니, 이건 정말 멋지잖아!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가서 비디오를 데크에 집어넣었다. 한참을 보는데 6학년 때 롤러장에서 봤던 그 영화였다. <뉴욕탈출>이라는 제목이 비디오로 출시되면서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코브라 22시인지 갸우뚱했다. 아마 국내의 비디오 업자가 극중 커트 러셀의 이름인 ‘스네이크 플리스킨’에서 시작한 연상 작용을 코브라에서 끝낸 듯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22시는 설명이 안 된다. 암튼 패스하고 고등학생 때의 감흥을 이야기하자면 마초 히어로 스네이크(커트 러셀)의 강력한 섹시함에 또다시 매혹됐다. 그러니깐 그 섹시함이란 마치 얼씨구하면 절씨구로 받아줄 수밖에 없는 일종의 핑퐁이다. 저쪽에서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낮게 깔아서 읊조리면 이쪽에서는 하이키의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인 지휘관(리 반 클리프)이 스네이크에게 납치된 대통령을 구해오라고 명령할 때 스네이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대통령을 새로 뽑지.” 그럼 나는 “크아악!” 하고 탄성을 지른다는 식이다.

대학교 때 예비역 형들하고 좀 친하게 지냈는데 그중 한명이 좋은 데가 있다며 홍대 뒷골목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 형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무슨 다방 같은 곳인데 거기서는 음료를 주문하고 종이에 보고 싶은 영화나 뮤직비디오 제목을 적어내면 틀어주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또다시 애꾸눈을 만났다. 아, 이놈의 애꾸눈이랑 나랑 무슨 인연이 있긴 하나보다. 나는 또다시 애꾸눈과 핑퐁을 주고받으며 끝까지 감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감흥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한참을 애꾸눈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예비역 형이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근데 그 애꾸눈 너무 뭐든지 잘하지 않냐? 처음부터 비행기도 잘 몰고 폭탄 설치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좀 재수없지 않냐?” 그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다시 이야기한다. “그래도 애꾸눈 멋지잖아!” 형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화가 아무리 반골기질이 다분하다 해도 그 캐릭터의 마초성이라든지 공격성이 거슬려. 그건 너무 제국주의적이야. 완전히 미국식이잖아.” “에이, 그래도 애꾸눈인데.” 잠시 나를 말없이 쏘아보던 형이 한마디 한다. “그러니깐 애인이 없지.”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현재. 다시 <뉴욕탈출>을 감상한다. 20여년에 걸쳐 나를 따라다닌 애꾸눈. 분명 애꾸눈은 마초다. 그리고 안티 히어로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룡 형처럼 훈련을 통해 대항마를 극복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거지발싸개 같은 유아적 마초가 된 건 순전히 애꾸눈 탓일 것이다. 아직도 애꾸눈 따위에 열광하기 때문에 정말 연애를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랴, 애꾸눈이 좋은걸.

*가끔 창작의 정치성이 느껴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가짜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애꾸눈은 은밀한 결정체 같은 것이다.

양해훈/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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