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 사는 두명의 살인마가 처음으로 마주쳤다. 10년 된 살인마 경주(오만석)와 그를 모방하는 연쇄살인마 효이(류덕환)가 동네 문구점의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말을 텄다. ‘모방범죄 스릴러’지만 6월26일이라는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게다가 석관초등학교 정문 앞의 평범한 문구점(간판만 ‘우리왕자 문구’로 바꿔 달았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니 스릴러적 음산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 주변이니 아이들도 시끌벅적 물러설 줄 모른다. 대사만 건지면 된다는 심정처럼 보이는 녹음기사의 난처한 표정이 진정시킬 수 없는 현장 분위기를 일러준다.
하지만 문구점 앞에 어른거리는 경주의 표정에 이르면 순간적으로 싸늘해진다. 모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듯 긴장감 도는 경주가 평범한 대사로 분위기를 냉각시킨다. “사이즈에 맞는 액자 있나요?” 천진난만 친절로 효이가 “가족사진인가봐요?”라고 받아주지만, 이내 그도 심상찮은 기미를 감지한다. “일단, 들어오세요”라는 평범한 응대 속에 효이의 표정은 이미 달라져 있다. 정중동의 대화는 충분한 배경을 갖고 있다. ‘우리동네’에는 이미 다섯 차례의 살인이 일어났다. 미취학 여자아이에서 시작해 20대의 여대생을 거쳐 40대 중반의 여사장에 이르기까지. 하반신 누드에 교수형된 모습까지 비슷하다. 이건 경주와 효이가 ‘따로 또 같이’ 벌인 짓이다. 궁핍한 소설가 경주가 과거를 묻어두고 살아가고 싶었는데 순진무구해 보이는 효이가 도발한 참이다. 누가 자기를 따라하는지 초조하게 비밀을 캐야 하는 건 훨씬 어른인 경주다.
“일반적인 범죄스릴러와 다른 새로운 시도 같고 식상한 연쇄살인자가 아니라서” 경주 역을 붙잡은 뮤지컬 스타 오만석은 “가해자가 결국 피해자이기도 한데 곱씹어볼수록 얘기되어질 게 많은 영화”라고 한다. <우리동네>라는 제목처럼 연쇄살인 같은 범죄는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통해 일어날 수 있지 않냐며. 영상원 출신의 정길영 감독 역시 비슷한 방향에서 데뷔작의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정서적 스릴러다. 정서란 게 사람 관계에서 나오는데 <쎄븐>처럼 단독적 범죄동기나 수사과정상의 미스터리가 초점이 아니라 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여주려고 한다.” 50%의 촬영을 마친 <우리동네>는 올 겨울 찾아올 예정이다.
“생각하는 걸 그냥 표현할 뿐이다”
효이 역의 류덕환
“조금씩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며 즐거워하던 류덕환은 그 이유를 잘 안다. “(먹이가 든) 내 주머니 때문이야.” 영화 속 효이와 함께 커온 말라뮤트 쏘냐 이야기다. 친구 같은 둘 사이에서 쏘냐의 눈빛이 비교할 바 없이 매섭고, 그 덩치가 더 무섭다. 류덕환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밝고 명랑하다. 하여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이나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얀 가면 뒤로 숨긴 무서운 정체. “그렇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걸 그냥 표현할 뿐이다. 내 연기에 대한 기준을 뭐라고 하기 어렵다. 느낌대로 표현한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긴 하다. 진짜 강렬하게 하면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선배처럼 보일 거라고도 하던데 완전히 다른 류덕환으로 보일 수도 있다.” 누가 살인자인지 일찌감치 밝히고 가는 영화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스릴러이기 때문인지 말을 많이 아낀다. 다만 효이와의 남다른 인연에 대해선 즐겁게 이야기한다. “처음 제안이 들어왔던 역할은 경주였다. 시나리오 읽고 무작정 찾아가서 감독에게 왜 나를 캐스팅하려고 했냐고 물었는데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효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 솔직히 효이 역할이 더 맘에 들었던 터라 그 뒤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