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굿바이 미리, 굿모닝 아미
2007-07-06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뜨거운 것이 좋아> 촬영 중인 김민희

느닷없는 표지라고 할지 모르겠다. 왜 지금 김민희였냐고 묻는다면 ‘너무 궁금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잡지모델로 시작해 CF, 드라마, 영화를 아우르던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1페이지 이상의 인터뷰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검색창을 가득 메운 기사들은 대부분 그녀의 사생활을 들추거나 몸매를 찬양했고, 패션 스타일을 품평했다. 김민희 자신은 “처음 만난 사람과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어렵기 때문”에 사양한 인터뷰가 많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시선 자체가 그녀의 입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건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서 미리를 연기했을 때였다. 사랑을 찾아 가족을 버린 미리는 바보 같은 사랑에 웃고 울던 노희경의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고,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김민희는 온몸으로 웃고 울며 미리를 완성해냈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김민희는 기약없는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잦아들 때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로 다시 나타났다. 현재 촬영 중인 이 영화에서 김민희는 집에서는 조카에게까지 구박받고, 집 밖에서는 매일 같이 넘어지고, 마음속으로는 현실의 비루함을 한탄하는 시나리오작가 아미를 연기하고 있다. 언제나 거침없고 당돌한 이미지의 역할만 맡아왔던 그녀에게는 <굿바이 솔로>의 미리와는 또 다른 도전이 될 작품일 듯. 영화는 올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에 ‘많이’ 일찍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서프라이즈> 이후 5년 만의 영화다. 그동안 출연 제의가 없었던 건가.
=그런 걸 러브콜이라고 그러나? (웃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영화쪽에서는 거의 없었다. 아, 호러영화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워낙 무서운 영화를 못 보는 체질이라서 시나리오를 읽다가 너무 무서워서 중간에 그냥 덮어버렸다. (웃음)

-인터뷰를 꺼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외였다. 전혀 낯을 가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그러게 말이다. (웃음) 내 평소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들 생각하는데 어떤 때는 나도 극복하기가 힘들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린다.

-그래도 <뜨거운 것이 좋아> 현장에서는 스탭들과 잘 어울린다고 소문이 났더라. 조용규 촬영감독이 김민희 팬클럽 부회장이라고.
=좀 웃기긴 한데, 왠지 신기하다. 이번 현장에는 우선 내 또래도 많고 나보다 어린 배우도 2명이나 있는데,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더라. 감독님이랑 대화하는 것도 정말 편하고. 이제야 현장에서 즐거움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웃음)

-권칠인 감독 말로는 스탭들과 아예 작정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더라.
=작정한 건 아니었다. (웃음) 원래 술 먹는 건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다. 그날은 고깃집에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는데, 소주를 한잔씩 주거니받거니 하다보니 어느 순간 많이 먹었더라. 꼭 MT 온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다같이 소리지르며 건배하는 모습도 재밌었고, 나도 덩달아 신나는 기분에 달린 것 같다. (웃음)

-<뜨거운 것이 좋아>의 아미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선택했나.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아미는 딱 하나로 규정된 여자가 아니라 내가 연기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생각 잘하고, 혼자서 결론내리고 혼자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와 많이 닮은 것 같았고. 실제 내 경험과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아미에 깊이 빠진 것 같다.

-이미숙, 안소희랑 연기하는 건 어떤가. 지금껏 출연한 작품 중에 유독 다른 배우들과 수다를 떠는 장면이 많은 작품 같은데.
=이미숙 언니는 원래부터 팬이었기 때문에 왠지 설레는 게 있었다. 소희는 잘 몰랐는데, 나이는 어려도 어른 같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온다. 어떤 때에 소희가 날 부르면 ‘네~’ 그러곤 한다. (웃음)

-어떻게 데뷔했는지 이제는 기억이 까마득하다. 조세현 사진작가가 쓴 글을 보면 한 스타일리스트가 대학가 옷가게에서 발견하고 모델로 추천했다던데 맞는 얘기인가.
=중3 때 잡지화보를 먼저 시작했다. 친구하고 이대에서 옷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옷가게 주인 언니가 몇살이냐고 물어보더니 명함을 주더라.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전화가 와서 가보니 사진을 찍자고 했다. 시작하자마자 표지를 찍었던 걸 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거지.

-어린 나이에 그런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
=많이 힘들었다. 사춘기 때라 민감한 구석도 있었고,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거니까. 게다가 CF, 연기도 하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실 적응을 잘 못했다. 그래서 지금 <뜨거운 것이 좋아>에 같이 나오는 안소희를 보면 매우 대견해 보인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그만큼 하는 게 내 눈에는 신기해 보인다. 나는 그때랑 지금이랑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렀을 뿐이지 크게 변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데뷔 전에 연예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없었나. 그 나이 때의 소녀라면 누구나 있었을 법한데.
=그냥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정도였다. 그때부터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내가 연예계에 나간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드러낸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그냥 평범했다. 친구들하고 잘 어울렸고 시험기간에는 벼락치기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이 나쁜 편도 아니었다. (웃음)

-김민희를 가장 널리 알린 건 모이동통신사 CF였다. 친구의 애인한테 번호를 적어주는 역할이었던가.
=친구의 애인이 내 손에 번호를 적어주는 상황이었다. (웃음) 그 이후로 <학교2>에 출연하면서 연기도 시작했는데, 정말 많은 게 두려웠던 때였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도 몰랐고, 배운 것도 없었고, 내가 끼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항상 머릿속이 깜깜했는데, 다행히 대사가 별로 없었다. (웃음)

-이후로 줄곧 CF에서나 드라마에서나 거침없고 당돌한 배역들만 맡아왔다.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에서도 차태현에게 먼저 애정공세를 펼치는 역할이었고. 그런 이미지가 실제의 모습과는 얼마나 닮아 있나.
=글쎄, 그게 그때 당시에는 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숫기는 별로 없지만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은 강했던 때였다. 오히려 약한 마음을 감추려고 강한 척하기도 했고, 어느 곳에서나 어린애 취급을 받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 내 안에 있는 모습들 아닌가. 가끔은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나도 모를 때가 있다. (웃음)

-아무래도 그런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굿바이 솔로>의 미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평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어떻게 봤는지.
=<고독>과 <화려한 시절>을 재밌게 본 정도다. 드라마를 보면서 누가 쓴 작품인지를 찾지도 않았을 때였고,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굿바이 솔로> 대본을 받아본 순간, 드라마가 이렇게 세련될 수 있구나 싶더라. 사실 처음 받아본 대본이 1회에 나오는 3신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내레이션으로 시작해서 플래시백이 이어지고 다시 현재로 나오는 구성도 놀라웠고 대사도 거침이 없었다. 이야기를 파악하기도 힘든 분량이었지만, 무작정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희경 작가에게 5번이나 오디션을 봤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하던데.
=오디션을 몇번 봤는지는 나도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는 왜곡된 면도 있다. 기사들을 보니 선생님이 너무 못되게 나와 있더라. 선생님이 나한테 (성대모사를 하며) “내가 미안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하시는 데 정말 난감했다. (웃음)

-당시 제작발표회에서는 눈물을 못 참고 발표회장을 나갔었다. 그때는 어떤 생각이 나서 그랬나.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나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내 스스로의 감정에 북받쳤던 것 같다. 밖에 나가 울면서 내가 왜 여기서 울어버렸는지 한심스러워 울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으니까 더 짜증나서 울었다. (웃음)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도 많이 울었을 텐데.
=아니, 전혀 울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런 걸 처음 해봤다. 기분이 안 좋고 슬플 때 일부러 거꾸로 행동하는 것 말이다. 평소 나는 내 기분대로 행동하는 편이었는데, 그때는 거꾸로 되더라. 막 웃으면서 밖에 나가 재밌게 놀고 들어와서는 나중에서야 대성통곡을 했었다. (웃음)

-사실 김민희라는 배우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선생님을 알면서 그분의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씩 나에게 “너, 슬프다고 하루 종일 슬프냐?”, “똥 쌀 때도 웃냐?”(웃음) 하시면서 드라마의 감정을 이해시켜주셨다. 그러면서 나도 연기라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 자체만 생각하던 그전과는 매우 다른 변화였다.

-그 이후로 한동안 연기를 쉬었지만, 패션지에는 계속 등장하더라. 작품 활동을 안 해도 언제나 패션쇼에 관객으로 나타나서 패션기자들의 품평을 듣곤 했다. 최근에는 패션전문가들이 뽑은 패셔니스트로 뽑히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는 의상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그날그날 다르다. 정말 그날 기분대로 입는다. 화려하고 싶을 때도 있고, 집에서 나간 것처럼 입고 싶을 때도 있고. 아마 그래서 꽤 다양한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평소 김민희 하면 떠오르는 단 하나의 옷은 스키니 진이다. <씨네21>의 어떤 기자는 다이어트 비법을 물어보기도 하던데.
=솔직히 말하는데, 다이어트는 전혀 안 한다. 가끔은 부모님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하는데, 내가 말라서 사진작가님들이 좋아한 것 같다. 왠지 더 괴상해 보이고,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느낌이 있으니까. (웃음)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말라 있었다.
=나보다 마른 사람이 많은데, 왜 항상 말랐다고 하면 나를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그런 소리가 정말 싫었다. 언제나 나를 본 사람들은 인사 대신 “너 왜 이렇게 말랐니”, “너 뭐 먹고 사니” 이러면서 안쓰러워했다. 넌 왜 이렇게 예쁘냐는 소리도 아니고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말랐었다. 한 00kg정도 나갔나? 아, 몇 kg인지는 기사에 담지 말아 달라. 보면 사람들은 항상 그런 것만 기억하려고 하더라. (웃음)

-혹시 그런 체형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가 있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좋을 것 같은데. (웃음) 예전에는 있던 콤플렉스가 지금은 없어졌다. 옛날에는 내 자체가 다 마음에 안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데, 이제는 나의 이상하고 희한한 부분도 모두 좋아졌다. 하긴 어릴 때는 다들 자기보다 예뻐 보이고 저렇게 되고 싶다는 사람도 많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이제는 그런 게 거의 없다.

-그만큼 행복해졌다는 건가.
=그렇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너무 행복한 시절이다.

-이제는 20대 중반이다. 서른을 준비하는 건 있나. 재테크나 뭐 그런 거라도.
=재테크는 무서워서 안 한다. 왠지 위험하게 모든 걸 다 거는 듯한 느낌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서프라이즈> 개봉 당시에는 다른 잡지 인터뷰에서 연기생활을 그만두면 패션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나? 음… 그때는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없다. 내가 좀 변덕이 심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연기생활을 그만두고 싶지가 않다. (웃음)

장소협찬 스튜디오 CUUM·의상협찬 클럽 모나코, 비비안 웨스트우드, 이브 생 로랑, 셀린, 지미추, 타임, 캘빈 클라인, 이카트리나 뉴욕·스타일리스트 서은영·헤어 김정한(고원, 미쟝센)·메이크업 고원혜(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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