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만 보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날렵한 아이라인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달리 차예련은 발랄한 85년생이다. 집에선 두딸 중 막내고 <므이>에서 호흡을 맞춘 조안보다는 세살이나 어린. “그런 이미지, 별로예요. 사실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데. 지금 비웃으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좀 힘들었죠.” 물론 전작에서 우러나는 아우라를 떠올리면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첫 등장에서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던 <여고괴담4: 목소리>의 초아나 폭력과 야만의 현장에 홀로 남겨진 <구타유발자들>의 인정은 아무 여배우에게 덜컥 안길 만한 캐릭터는 결코 아니었다. “이제 이미지 변신의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면서도 음습한 분위기 물씬한 공포영화를, 친절한 듯 도발적인 서연 역할을 굳이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다른 공포물하고 느낌이 달랐어요. 배경이 베트남인 것도 그렇고. 사실 감독님이 절 꼬드겼어요. (웃음) 매력있는 여자로 만들어주겠다. 잠깐 어딜 쳐다봐도 어떤 생각일까 궁금한. 이상한 캐릭터예요. (웃음)”
므이라는 여자와 그녀의 초상화를 둘러싼 전설을 추적하는 <므이>는 평화롭지만 내밀한 베트남의 풍경을 주요한 모티브로 끌어온다. 단짝 친구였던 소설가 윤희를 베트남으로 불러들이는 서연 역시, 알 듯 모를 듯 내비치는 기묘한 느낌이 없었다면 끌리지 않을 인물이다. 가장 잘해냈다고 내심 치하하는 장면도 캐릭터의 분위기와 멀지 않았다. “내가 그런 건 아니고요. 조명감독님과 스탭분들이 마지막에 감정 좋았다고 했어요. 울음을 참으면서도 눈물이 맺힌 듯 표현해야 했어요.” 난생처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두달 내내 머물렀고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말도 안 통하는 현지 춤선생에게 한달 동안 춤을 배웠을 만큼 열성이었지만 아직 아쉬움이 남았을까. 완성된 영화를 봤다기에 어땠냐고 물었더니 대뜸 돌아온 말이, “싫었어요”다. “감독님한테 저 어떡해요,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남들은 괜찮다고 하더라. (웃음) 그러니까 괜찮아.”
앓는 소리를 해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한 차예련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스스로 책임지는 어엿한 프로페셔널이다. 또래보다 살짝 성숙하고 어떤 작품이든 돌이켜 부끄러움이 없는. “관객이 500만, 600만명 들어도 배우가 안 남는 영화가 있는 것 같아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강건향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떤 배우들은 10편의 영화를 해도 프로필에 올린 작품이 네댓편이라고. 나머지는 왜 적지 않느냐. 자신의 연기를, 그 작품을 후회해서라고. 우리는 그러지 말자. 저는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할 거라면 선택하지도 않았겠죠. 아직까지는 정말 좋아요.” 소중하기는 매한가지고 배움의 색깔도 모두 다르지만 그녀에게 가장 각별하게 기억되는 작품은 <구타유발자들>이다. “현장에서 얻는 것이 가장 크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단다. “연기 욕심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구타유발자들>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선배님들하고 공연하는 것도 행복했고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아요.”
지난 4월 서울 컬렉션에서 캣워크를 선보인 경험을 들췄더니, 그 이야기가 흘러흘러 결국 연기의 기쁨과 만난다. 모델과 배우 중에 뭐가 더 좋으냐는 질문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박에 배우를 집는다. 배우에, 영화에 단단히 빠지긴 빠졌나보다. “5년 동안 모델 일을 하면서 패션쇼에 3번 정도 섰나? 이번에도 디자이너 선생님이랑 친해서 선 거예요. 패션 모델이 아니라 잡지 모델을 주로 했어요. 배우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모델로선 가능해요. 현장의 열기와 환호성, 그 눈빛들. <구타유발자들> 선배들은 일 욕심 많다고 좋아하셨어요. 너만 열심히 할 마음이 있으면 연극을 하라시면서. 그때는 1cm 앞의 관객 앞에서도 연기해야 한다고. 워킹할 때도 스릴있어요. 눈앞의 군중을 향해 걸어가고. 포즈를 잡고. 사람들은 열광하고.” <여고괴담4: 목소리>로 데뷔하고 <구타유발자들>을 끝내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찍고 5회 남짓한 분량이지만 <특별시 사람들>에 출연하고 이제 <므이>의 개봉이 눈앞에 있다. 눈에 띄게 예뻐진 외모도, 한층 깊어진 속내도 그 안에 있다. 차예련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