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시시하게 산다. 나가시마 데쓰야의 영화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생명 에너지로 충만한 여자에 비해 규범에 따라 직장, 돈, 명예를 좇는 남자의 삶은 심심하기 그지없다. 나가시마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는 순정만화와 공주의 전설을 비웃는 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영화였다. 피 묻은 드레스에 새겨진 여자의 우정을 얕봤다간 어떻게 되는지 경고하는 영화였다. 반대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시치미 뚝 떼고 한 여자를 착취한다. 영화는 마츠코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동생은 누가 봐도 시시한 삶을 살았던 누나로, 마츠코를 회상한다. 그녀가 살았던 끔찍한 집에서 그녀가 겪었을 나락이 짐작된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2001년까지 되돌아보는 영화는 마츠코의 53년 일생을 예상과 전혀 다르게 재구성한다. 23살 여선생이 저지른 실수는 그녀를 흥미진진한 세상의 입구로 이끌었을 뿐, 그녀의 삶을 격렬하게 뒤흔든 건 지옥행도 불사하는 사랑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어린 마츠코에게도 루비 구두가 있었고, 도로시가 걸었던 노란 벽돌길을 마츠코도 걸었다. 그런데 마츠코는 영화 내내 현실 안에서 맴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오즈의 나라도, 에메랄드 시티도 없다. 마츠코가 ‘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뻔뻔한 교훈을 전할 리 없는 것이다. 대신 그녀는 사랑을 베푼다. 그것이 남자의 일방적인 판타지로 보이지 않는 건, 그녀가 이뤄낸 삶의 가치가 기대 이상으로 뭉클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태어나긴 했다만…’이라며 낙담할 때가 있다. 마츠코가 벽에 남긴 ‘태어나서 미안해요’ 같은 낙서를 누군들 써보지 않았겠나. 삶의 마지막 순간 마츠코는 별빛이 수놓인 길을 걸었다. 그녀의 몸이 싸늘하게 식을 동안에도 별들은 빛을 잃지 않았다. 태어나서 미안한 인생은 없다. 시종일관 화면 아래를 장식한 꽃송이와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의 수는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세상에 사는 수많은 당신이 바로 꽃이고 별이다. <여자의 일생>과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시민 케인>을 모두 탐해, 그렇게 화려했던 영화의 주제는 얄미울 정도로 소박하다.
DVD는 현란한 영상과 뮤지컬 음악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홈비디오가 제대로 담기 힘들다는 붉은색 표현도 기대 이상이다. 음성해설에 따르면, 제작진은 DVD 매체의 특성에 맞게 따로 몇 장면의 영상을 손보았다고 한다. DVD의 훌륭한 만듦새는 그렇게 정성을 다한 결과다. 본편의 챕터 기능이 특이한데, 출연자·노래·시기별로 원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도록 각별히 구성해놓았다. 음성해설은 일일 스낵바 ‘마츠코 클럽’에서 진행됐다. 감독, 제작자 등 많은 참석자의 목소리에 얼음, 술, 캔이 만들어내는 여러 소음이 더해져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쉴새없이 불려나오는 일본 연예인 이름과 뜻 모를 진지한 농담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골라 듣는 게 힘들 지경이다. “촬영 도중 즐거운 적은 없었다, 현장은 첫날부터 붕괴됐다, 지금도 나 혼자 흥이 나서 떠드는 것 같다, 영화가 완성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라며 끊임없이 농담하던 나가시마 감독은 끝부분에 이를 즈음 불현듯 “결국 저는 마츠코를 좋아했나봐요”라고 고백한다. 역시 한순간에 감동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두 번째 디스크는 2개의 미공개 장면(3분), 제작 뒷모습을 묶은 ‘영화를 즐기는 방법’(20분), 본편과 비디오·그림 콘티 비교(13분), 가수 보니 핑크의 뮤직비디오(4분), 본편 하이라이트(21분), 논크레딧 엔딩(4분), 감독과 배우 인터뷰(36분), 두개의 메이킹 영상(15분) 등 110분이 넘는 부록을 수록하고 있다. 언뜻 다양해 보이기는 한데 정작 건질 만한 내용은 적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