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거세된 욕망의 치정극
2007-07-12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로라> EBS 7월14일(토) 밤 11시

흑인 음악 프로듀서로 명성을 쌓은 알란 제임스는 노년의 백인 남자다. 그에게는 러시아 여행 중에 만난 젊은 아내 로라와 어린 아들이 있다. 아름다운 아내와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 그리고 부유한 삶까지 그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남자의 완벽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로라의 결핍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조각상처럼 아름답지만 무표정한 이 여인의 얼굴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오래전에 잊어버린 듯한 자의 것이다. 그녀의 늙은 남편은 그녀에게 일상의 순간들을 진심으로 나눌 상대가 아니라, 그녀에게 미국의 풍요로운 부를 안겨준 사람일 뿐이다. 남자는 가끔씩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언제나 자신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는 호색한 예술가이며 탐욕스러운 천재다. 이 관계의 불행은 그녀가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그녀의 외로움을 둔감하게 지나쳐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때마침 알란 제임스와 전 아내 사이에서 낳은 아들 마이클이 등장한다. 그는 젊고 건장하고 무엇보다 상처입은 영혼이다. 상처를 간직한 자는 상처입은 자를 알아보는 법이다. 로라와 마이클의 사랑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시작되지만, 그 사랑의 불가능성 역시 필연적이다.

애증과 원망이 얽힌 부자관계, (새)어머니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경쟁관계 등 <로라>의 기본구조는 오이디푸스의 익숙한 뼈대다. 그러나 영화는 이 위태로운 치정극을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상당히 차분한 심리극으로 바꾸어간다. 그 중심에는 한 여자의 욕망이 있다. 얼음처럼 차갑던 여자의 내면이 서서히 열려가다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드는 과정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그녀를 두고 삼각구도를 형성하는 알란과 마이클의 심리가 겹겹이 쌓아올려지며 한 집안, 엇갈리는 세 남녀의 눈길, 표정, 시선이 표현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그것을 지켜내는 방법도 모르는 이 부유한 겁쟁이들은 결국 자기 욕망을 거세하는 길을 선택한다. 슬프고 불행하다. 감독 아이라 잭스는 이 영화로 200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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