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이 죽었다. 컴퓨터 모니터는 그의 부고를 짧게 전하며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굳은 표정이다. 한참을 멍하게 기사를 되풀이해 읽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인생을 3배 길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 <하나 그리고 둘>을 남기고 에드워드 양 자신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망연자실한 감정을 추스르기 앞서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내가 본 그의 영화는 <하나 그리고 둘>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에드워드 양은 그만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감독이다. 하지만 <하나 그리고 둘>과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영화뿐 아니라 현대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 가운데 한명이라고. 부고를 접한 뒤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을 조악한 화질의 동영상 파일로 보면서 <씨네21> 창간 10주년 영화제 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 못했던 사실을 거듭 후회했다. <하나 그리고 둘>의 양양처럼 묻고 싶다. 우리는 왜 언제나 세상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걸까?
고작 <하나 그리고 둘>밖에 못 봤지만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예정에 없던 게스트라 갑작스런 인터뷰 약속이 잡혔고 김혜리, 정한석 두 기자도 인터뷰 질문을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 귀한 기회인데 놓칠 순 없고 우리는 세 사람이 가면 준비없이 가도 말이 끊길 염려는 없으리라 서로를 믿으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에드워드 양은 부인과 함께 나타났고 인터뷰에 까다롭다는 소문과 달리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환대했다. 즉흥인터뷰라 깊이있는 문답이 오가지 못했지만 그는 <하나 그리고 둘>의 일본인 사업가처럼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목소리를 들려줬다. 당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나루세 미키오 감독에 관한 얘기를 하다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오래 살며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예감한 것일까? 7년간 투병생활을 했다니 그랬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날의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 학생과 존경하는 선생님의 대화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주워들은 지식으로 당신 영화는 이렇다고 하던데, 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면 그는 그런 구분들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답했다. 부족한 학생들은 그저 받아 적기 급급했지만 지금 읽어보니 그는 우리에게 은연중에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책에 적힌 것을 외우지 말고 당신 자신의 눈으로 영화와 세상을 보고 느끼라는 교훈. 우리는 세상의 절반을 보지 못하면서 우리가 못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이번 호 에드워드 양 추모기사에서 영화평론가 남다은씨는 <하나 그리고 둘>의 마지막 장면을 인용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 보내는 양양의 편지를 에드워드 양을 향해 들려주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득 할머니가 손녀 정정에게 남겨주신 종이 나비가 떠오른다. 자신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고 믿는 소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과 가장 참혹한 순간을 막 경험한 소녀에게 남겨준 종이 나비가 그녀를 다독여줬듯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삶의 아픔과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거짓없는 위로였다. 그는 갔어도 그의 영화는 잠든 사이 우리 손에 놓인 종이 나비로서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세상의 절반을 볼 용기를 얻게 해준 에드워드 양에게 마지막 인사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