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어두운 근현대사 호접몽 시각으로 재구성 <별빛 속으로>
2007-07-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시간의 이 주름진 경험을 오롯하게 이해할 방법이란 있는가. 장자의 그 오래된 깨달음 아니 물음처럼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그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현자의 질문은 지금도 우리의 몽롱한 삶 안에서 유효하다. <별빛 속으로>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불가해한 그 문답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 환상을 펼치되,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역사의 한 장을 출입의 문지방으로 선택한다. 이 이야기는 감독 황규덕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자전적 이야기이며 또 한 편으로는 잊혀진 시대를 지금 그려내기 위한 도전적 연출의 방식이기도 하다. 정직한 리얼리스트로서 맑은 진실의 채집에 관심을 보여 왔던 감독 황규덕은 <철수 영희>의 후속작으로 놀랄 만큼 다른 선택을 했다. 혹은 <철수 영희>의 마지막 판타지 장면이 예고라도 되었던 양 지금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첫 번째 본격 환상 양식의 영화를 만들어 부천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중년의 독문학과 교수 수영(정진영)앞에 한 쌍의 나비가 홀연히 나타난다. 그 나비를 따라 홀린 듯 따라가던 수영은 강의실에 도착한다. 수 십 년 전 자신이 배웠고 지금은 그가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에서 수영은 첫 사랑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에 못 이겨 마침내 입을 연다. 수영은 젊은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으며 오래 동안 기억 속에 있던 기이한 인물 삐삐(김민선)에 대해 털어 놓는다. 대학생 시절의 수영(정경호)은 그리 특출해 보이지 않으며 모나지 않고 평범해 보이는 보통 학생이다. 어느 수업 시간, 그의 눈을 사로잡은 특별한 소녀가 삐삐다. 삐삐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여느 학생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독어 실력으로 감정의 공기를 만들어 낼 줄 알며, 더 알고 보니 운동권으로서 적극 유인물을 발행하고 배포할 만큼 실천적이기도 하다.

그런 삐삐에게 수영이 매력을 느낄 즈음 삐삐는 독재 정권에의 항거를 외치다 학교 옥상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다. 수영의 기이한 경험은 그때부터 일어난다. 수영은 노란 샤쓰를 입은 남자(김C)의 여동생(차수연)에게 과외를 하게 되고, 그 집으로 향하던 중 하늘에 수를 놓듯 퍼지는 아름다운 광선을 버스 안에서 목격한다. 그리고 그 즈음 죽은 줄 알았던 삐삐가 그의 눈앞에 자꾸 나타난다. 영화는 점점 수영의 현실 인식을 벗어나 꿈을 꾸듯 펼쳐지는데, 우리는 그의 혼란만큼이나 이 영화에 슬며시 환상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어디서부터 시간의 전진이 구부러진 것인지 그리고 인물들의 이상한 존재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혹은 수영이 왜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지 그건 수수께끼이자 이 영화를 보는 감상 포인트다.

정직하고 사랑스러운 소극의 리얼리즘 영화 <철수 영희>로 맑은 감명을 선사했던 황규덕은 <별빛 속으로>에서 어두운 근현대사를 호접몽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이야기꾼이 되어 나타났다. 눈치 챘겠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 호명이나 발언을 통해 시대를 재현하고 해석하려는데 집중하는 편이 아니다. 그보다 <별빛 속으로>는 우리의 가장 어두웠던 독재의 시대조차 애매함의 시간적 주름 안에 접어놓고 보고자하며, 거기에서 더 넓은 시간으로서의 삶의 연장을 다뤄보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별빛 속으로>는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혹은 공존하는 무한한 무경계의 우주적 시간을, 그 나비의 꿈과 인간의 꿈 사이의 시간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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