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키 매키는 아름다운 호러영화를 만드는 젊은 작가다. 약관의 나이에 만든 데뷔작 <메이>는 타인과의 소통에 애를 먹는 소녀의 고통을 무시무시한 고어장면과 기가 막히게 버무려낸 작품이었고, <마스터즈 오브 호러>의 <식걸>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향을 받은 듯한 기묘한 사랑 이야기였다. 뭐랄까, 한마디로 ‘현대 호러 영화계의 가장 우울한 천재 로맨티스트’라고 표현하면 딱 좋지 않을까. 올해 러키 매키는 감독이 아닌 배우의 입장으로 부천을 찾았다. <메이>와 <식걸>의 주인공인 여배우 안젤라 베티스의 장편 데뷔작 <로만>에서 매키는 마음이 텅 빈 사이코패스가 점차 인간의 마음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간결하고도 애처로운 몸짓으로 창조해냈다. 겨우 3편의 영화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미래의 대가, 러키 매키를 만났다.
-안젤라 베티스는 왜 오지 못했나.
=결혼식 참여를 비롯한, 몇몇 빠질 수 없는 집안 대소사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로만>은 당신이 USC 재학 시절 썼던 시나리오다. 왜 직접 감독하지 않고 안젤라 베티스에게 맡겼나.
=USC 재학 당시 두개의 대본을 썼는데, 그게 <메이>와 <로만>이다. 이후 <메이>를 만들고 나니 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다시 하기가 좀 망설여졌고, 안젤라야말로 딱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기에 전혀 경험이 없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안젤라가 나를 도와줄 수가 있었고, 감독 경험이 없는 안젤라는 내가 도와줄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이 나를 다시 충전시켜주었고, 연기를 함으로써 더욱 좋은 대본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로만>은 <메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영화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로만>에 더욱 극적으로 반응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로만이라는 캐릭터와 동일시할 수 있으니까. <메이>가 미쳐가는 소녀의 이야기라면, <로만>은 정상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안젤라 베티스를 처음으로 만난 건 언제인가.
=<메이> 오디션에서 처음 만났다. 안젤라는 자신이 지난 몇년간 본 최고의 시나리오이며 꼭 출연해야겠다고 강력하게 말했고, 확실히 진심으로 시나리오를 이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안젤라는 정말이지 나의 친여동생, 나의 뮤즈다.
-<마스터즈 오브 호러> 1시즌에 참여한 건 정말이지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듯하다.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존 카펜터와 토브 후퍼와 다리오 아르젠토 같은 대가들과 함께 일해달라니. 그 전까지 딱 1편의 장편을 내놓은 나 같은 감독에게는 엄청난 영광이었다. 원래 감독하기로 했던 로저 코먼이 몸이 좋지 않아서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자 참여한 감독들이 나를 추천했다더라.
-<마스터즈 오브 호러>에 참여했던 선배 호러영화 감독들과는 잘 지내나.
=토브 후퍼, 존 랜디스, 스튜어트 고든 등 아주 잘 지낸다. 가끔 토브 후퍼의 집에 놀러가서 영화들을 보곤 한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나 역시 그에게 영감을 준 것 같다. 그가 <연장통 살인>에 내 카메라맨과 안젤라 베티스를 데려다 쓴 걸 기억하는가? 그의 영화적 유산을 조금씩 훔쳐서 썼으니 그가 내 것을 훔쳐간대도 아무 상관없다. (웃음)
-부천에 오기 전에 한국 호러영화들을 본 적이 있나.
=<친절한 금자씨>를 봤다. 그는 두려움이 없는 감독인 것 같다. 영화 속 테마와 기술적인 요소들이 아주 매력적이다. (박찬욱은 느끼한 상업 광고에 출연하기도 한다고 말하자) 나도 느끼하고 유치한 한국 광고에 출연하고 싶다. 그걸로 평생 돈을 벌 수도 있을거 같은데! (웃음)
-최근작 <악령의 숲>(The Woods)를 만들면서 메이저 영화사들과 꽤나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안다. 차기작은 좀더 작은 작품인가.
=최근에는 대본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금껏 써놓은 최고의 대본들은 이미 영화로 다 만들었다. 이제는 시간을 좀 두고 내가 다음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가 뭔지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내년이 되면 알 수 있을 거다. 뭔가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 거다.
-페스티벌 기간 내내 머무르는 걸로 안다. 뭘 할 건가.
=(몰스킨 노트를 보여주며) 기행문을 쓰는 중이고, 미국 잡지에다 싣게 될지도 모른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