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Diary
옥사이드 팡/ 홍콩/ 2006년/ 86분/ 부천 초이스
타이의 옥사이드 팡이 호러물의 재주꾼임을 보여주는 소품이다. 그닥 새롭지 않은 소재로 출발선을 잡고서, 게다가 적당한 복선과 관습적인 카메라워크를 지극히 제한된 공간 안에서 펼치는 것만으로 기승전결의 맥을 만들어낸다. 귀신은 없으나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이 있다. 선천적 악마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후천적으로 앓은 사랑의 후유증이 위니의 몸뚱이를 감싸고 있다. 그녀가 기괴한 기운을 내뿜으며 불길해 보이는 목각 인형을 만들어내는 건 저주의 영혼을 불어넣겠다, 는 의지가 아니라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일거리다. 그녀의 본업은 예쁜 뷰티숍의 점원이다. 그곳에서 나와 상당량의 생선과 고기를 사고, 그 생선과 고기를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칼로 다지며 요리를 만드는 건 저주의 카니발 의식이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 세스를 위한 애정 행위다. 문제는 그 세스가 떠나버렸다는 점이다. 혹은 증발했거나.
그런 위니가 세스를 닮은 레이를 우연히 발견하고, 차를 마시자며 수작을 걸고, 마침내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 자기 집 식탁에 초대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건 레이다. 레이는 여자친구가 있을 것만 같은데 위니의 집에 아주 길게 머물며, 심지어 회사에서 잘렸다고 풀이 죽어서도 위니의 집을 떠날 줄 모른다. 그리고 점차 말을 잃어간다. 비밀 풀이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않는 건 마지막 반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