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매체가 변화해도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2007-07-14
글 : 김민경
사진 : 오계옥
<열흘 밤의 꿈> 중 ‘일곱 번째 밤’의 아마노 요시타카, 가와하라 심메이 감독

현대 일본의 대표 감독들이 100년 전의 천재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열개의 꿈을 해몽한다. 근대일본문학의 기념비적 작가의 기이한 10개의 꿈 이야기 <몽십야>는 그의 몽상과 불안증이 소용돌이치는 난해한 환상소설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들불>의 이치가와 곤 같은 원로감독부터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등이 그의 꿈의 편린들을 하나씩 맡아 <열흘 밤의 꿈>을 만들었다. 그중 ‘일곱 번째 밤’은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에피소드. 메이지 일본이 배경인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일곱 번째 밤’은 시공을 알수 없는 무한한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장엄한 판타지다. 특유의 몽환적인 그림체와 거대한 세계관, 그리고 아마노 요시타카라는 크레딧에서 벌써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아루스란 전기> <창룡전>, 오시이 마모루의 <천사의 알> 그리고 <파이널 환타지>의 작화 및 일러스트로 유명한 그 아마노 요시타카 선생이다. 아마노가 그리고 그가 아끼는 후배 가와하라 심메이가 움직인, 소세키의 일곱 번째 꿈 이야기를 이들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이렇게 화려한 감독진이 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함께 만들었다니, 애초 프로젝트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가와하라 심메이(이하 가와하라)=영화사 닛카쓰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게 20년간 숙원이었던 프로듀서가 있다. (웃음) 기획 과정에 일본영화를 이끄는 젊은 감독들과 선배감독이 서로 격돌하는 장으로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말하자면 일본의 신구세대 감독들의 ‘배틀 로얄’인 영화랄까.

-아마노 요시타카 감독은 15살 때부터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해 독특한 판타지 일러스트로 일가를 이룬 아티스트다. 한편 가와하라 심메이 감독은 광고와 게임의 오프닝 무비를 만드는 컴퓨터그래픽 아티스트다. 어떻게 <열흘 밤의 꿈>에서 만나게 됐나.
아마노 요시타카(이하 아마노)=가와하라가 전체 컨셉을 잡고, 내 일러스트와 그 안의 세계관을 영상으로 옮겨줬다.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가 CM에서 묶여 있는 작가성을 본격적으로 펼치길 바랐다.

-왜 열개의 에피소드 중 ‘일곱 번째 꿈’을 택했나.
가와하라=우린 이번 작업을 계기로 <몽십야>를 처음 읽게 됐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곱 번째 밤은 배경이 모호해 우리의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 원작의 세계관보다 많이 확장됐다.

-확실히 ‘일곱 번째 밤’은 원작의 10개 단편 중에서도 가장 시공간이 모호한, 이질적인 에피소드다. 원작에도 없는 파티장 천장을 날아다니는 동물이나, 비상하는 빛나는 물고기 등 비현실적인 판타지도 가득하고.
아마노=전체 모티브가 ‘꿈’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우선하고 싶었다. 한폭의 그림 같은 꿈결같은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게 주안점이었다.

-디자인의 컨셉이나 참고한 작품이 있었나.
가와하라=아마노의 작품들! (웃음) 애니메이션 작업도 많이 했지만 아마노 감독은 다수의 화집을 내며 방대한 작품세계를 완성한 분이다. <파이널 환타지>나 <천사의 알>처럼 <열흘 밤의 꿈>도 아마노 감독만의 자유로운 화풍과 세계관이 총체적으로 융합된 작품이다. 다른 걸 참고할 필요가 있겠나.

-기술적으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가와하라=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에서도 3D애니메이션 하면 미국의 픽사 스튜디오나 드림웍스의 <슈렉> 같은 애니만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노 감독의 그림처럼 선과 색채가 살아 있는, 손으로 그린 회화도 디지털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다. 아주 고급스럽고 아름답다.

-아마노 감독의 화풍에 담긴 동양적 이미지가 늘 인상적이다. <열흘 밤의 꿈>도 나비의 꿈이나 비상하는 거대 물고기 같은 도교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영감을 받은 동양의 고전이 있는가.
아마노=글쎄, 당나라 시절의 <양귀비>나 일본의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서양의 판타지 고전에선 그다지 참고한 게 없다. 하지만 판타지란 게 특별히 동서양이 없다. 어차피 현실세계가 아니니까. 다만 내가 동양인이니까 서양 캐릭터를 그려도 동양 느낌이 나는 것 같다.

-<파이널 환타지> <열흘 밤의 꿈>처럼 앞으로도 일러스트를 넘어 새로운 매체와 결합할 생각인가.
아마노=매체란 생길 수도 없어질 수도 있다. CG란 것도 곧 사양 기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회화 작업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온 행위가 아닌가. 그러니 난 2D든 3D든 셀이든 컴퓨터든 매체의 변화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또 다음 세대의 기술이 등장한다면 그 매체에 내 그림을 이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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