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자> The Butcher
김진원/ 한국/ 2007년/ 76분/ 금지구역
<도살자>를 본 관객은 배우들의 신변과 영화를 만든 데빌그루브픽쳐스가 도대체 어떤 일당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한 부부가 어느 도살장에 끌려온다. 이곳에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가 있다. 그는 괴물의 희생양이 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카메라를 매달아놓고 그들의 사지를 절단하며 영화를 찍는다. <도살자>는 극중 피살자들의 머리에 4대, 도살장에 1대, 도살업자의 목에 1대씩 달려 있는 총 6대의 카메라로 난장의 살육을 담는다. 피와 배설물, 내장의 냄새들이 이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 밖으로 진동한다. 몸에 달린 카메라는 고통과 함께 요동치고 거친 사운드는 대사보다 비명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특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시점과 탈출하는 시점을 담을 때는 다급한 듯 하면서도 느긋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작정한 고어영화인 <도살자>는 공포감 조성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잔혹함까지 놓치지 않는다. 톱에 갈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비명이 귀청을 때린 뒤에는 돼지발정제를 먹은 괴물이 남자를 강간하고, 손가락을 자르고, 눈알을 파내는 광경이 여과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아내를 죽이고 자신은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남편의 몸부림이나 목숨을 놓고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는 도살업자의 만행도 잔인하긴 마찬가지. 심지어 “너의 아내를 죽일 수 있는 멋진 방법을 알려주면 살려주겠다”는 도살업자의 제의에 남편이 내뱉는 아이디어는 기가 찰 정도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도살업자가 어머니와 통화하며 나누는 살가운 대화에 서정적인 음악을 덧입히는 악취미도 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제발 이 모든 게 쇼였다는 반전이 있기를 바라게 될 듯.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살자>는 그런 자비심 따위를 갖추지 않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