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멜로, 코미디, 멜로, 스릴러가 한자리에. <Day…>는 3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네 가지 장르를 맛깔나게 선보이려는 포부를 지닌 옴니버스영화다. 그러고보니 짧은 영어 단어로 이뤄진 제목 역시 무척 암시적이다. 일상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감정과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뜻? 네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정인 듯 사랑인 듯 애틋한 시선의 두 남자(<동거>), 엘리베이터에서 조우한 기묘한 남녀(<긁는 남자>), 이별을 너무 쉽게 극복한 옛 애인에 상처입은 여자(<4월, 회색날들>), 살인과 복수로 뒤엉킨 두 남자(<The Hide>)를 차례로 뒤쫓는 이 작품은, 매번 수수께끼를 내듯 석연치 않은 느낌을 남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니 이 모든 인물들이 은연중에 삶을 공유하고 있음이 폭로된다. 각각의 장르를 책임진 감독들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03학번 동기들인 황성운, 임철수, 장주희, 양기원. ‘디지털 영상 워크숍’이라는 수업에서 같은 조가 돼 3분짜리 단편을 한편씩 연출하는 과제를 맡으면서 이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하나씩의 에피소드를 도맡아 완성했지만 함께 아이디어를 짜내고 제작을 도우면서 이들 역시 얽히고설킨 극중 캐릭터들처럼, 아니 그보다야 훨씬 발전적인 방향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처음에는 개별적인 작품으로 존재했어요. 그런데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통하는 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엮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옴니버스로 만들어보자, 의견을 모았어요.” <The Hide>를 연출한 양기원이 설명했다. 잔잔한 호흡의 <동거>에서 코믹하고 섹시한 <긁는 남자>로, 세심한 연출의 <4월, 회색날들>에서 분노를 발산하는 <The Hide>로. 리듬감있는 구성이나 개성적인 화법을 들여다보면 각별한 사이지만 확연히 차이나는 네 사람의 특징이 느껴진다. <긁는 남자>를 연출하고 <긁는 남자> <The Hide>에서 연기도 선보인 임철수는 “내겐 멜로물이 어울린다”는 주장과 달리 코믹한 말투를 지닌 반면, <동거>의 황성운은 훤칠한 외모처럼 침착하고 진중해 보인다. 촬영, 편집 등에 능숙한 ‘만능맨’이었던 양기원은 팀원들과 보조를 맞추는 데 뛰어나고, <4월, 회색날들>의 장주희는 배터리가 다 닳을 만큼 같은 신을 되풀이해 찍었을 정도로 꼼꼼하고 애착이 많다. 물론 제각각인 성격과 달리 한 가지만은 입을 모아 외쳤지만.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작업 기간을 떠올리는 듯 웃고 있던 장주희는 그들의 별명이 “유난조”였다고 털어놨다. “유난을 하도 떤다고요. (웃음) 커뮤니티에 NG모음, 메이킹필름도 올렸어요.”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도 오히려 도움받았던 일을 떠올리는 쪽이다. “연기를 하다가 처음으로 연출을 했어요. 힘들었지만 희망도 얻었죠”라며 황성운이 말한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라는 협소한 공간을 활용해야 했던 임철수는 어땠을까. “학교에서 새벽에 촬영했어요. 날이 밝아오면서 아줌마들이 청소를 시작하더라고요. 버튼을 막 누르는데 하여튼….” 영화감독, 뮤지컬 혹은 연극배우 등 고심하는 미래는 다르지만 이들은 당분간 협력할 계획이다. 양기원은 황성운, 장주희와 다음 작품을 완성할 것이고,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될 그의 전작 <꿈꾸는 백수 임철수>에는 임철수의 연기가 담겨 있을 것이므로. 상상마당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들었던 호평이 갑작스러운 것 같았지만 “연기자로 참여한 후배들과 김정섭 교수님, 학교 선배인 조범구 감독님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요”라는 준비된(?) 멘트를 남기고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재잘거리며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