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Roman
안젤라 베티스/ 미국/ 2006년/ 92분/ 부천 초이스
안젤라 베티스를 아십니까.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열혈 호러영화팬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안젤라 베티스는 러키 매키 감독의 <메이>와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1의 <식걸>을 통해 호러 영화계의 새로운 뮤즈로 칭송받아온 여배우다. 그녀의 첫 연출작인 <로만>은 안젤라 베티스가 매키 감독과 작업하면서 그저 대본이나 열심히 암기한 건 아니라는 멋진 증거다. 러키 매키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 용접공 로만은 이상한 남자다.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직장 사람들에게 왕따당하며, 오직 옆집 사는 귀여운 여인을 흠모하는 것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듯하다. 그의 배배 꼬인 흠모는 여인을 살해한 뒤 신체를 얼음에 재워놓고, 가끔 신체의 일부를 조각조각 잘라서 소풍에 데려가는 기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시체애호증 환자 로만의 삶은 갑자기 찾아온 한 여인으로 인해 서서히 바뀔 조짐을 보인다. 문제는 이 여인도 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만과 여인은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보통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살면서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타인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로만>에서 러키 매키 감독의 영향력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게다가 러키 매키 감독은 주인공 로만 역을 맡아서 사회와 동떨어진 숫기없는 사이코 역을 기가 막히게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만>은 매키의 그림자를 슬그머니 지워내고서 새로운 독립감독 안젤라 베티스의 가능성을 지켜봐도 좋을 만한 수작이며, 올해 부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비극적인 신체절단 왕따의)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저예산의 퀄리티와 간간이 등장하는 생뚱맞은 장면들만 참아낸다면 눈시울이 슬금슬금 붉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