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다카시가 도요시마 게이스케와 함께 만든 <유령 대 우주인>은 올해 PiFan에서 가장 빨리 매진된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주온> 같은 호러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황당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HD카메라로 가볍게 찍은 <유령 대 우주인>은 시미즈 다카시 스타일의 끈적끈적한 호러영화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본의 기담과 키치적인 SF물을 뒤섞어놓은 요절복통 코미디다. “나의 전작들과는 굉장히 다른 영화라 다들 약간 황당했겠다”는 시미즈의 얼굴에서 악동 토시오의 웃음이 묻어난다. 하긴, 같은 날 부천을 방문한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인터뷰에서 “시미즈 다카시는 요괴”라고 했단다.
-놀이하듯이 만든 영화 같다.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호러영화 전문감독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은 코미디 장르를 무척 좋아한다. 웃거나 공포를 느낄 때 인간의 감정은 일종의 해방 상태가 되니까, 나로서는 한편의 영화에서 두 가지를 모두 느끼도록 만들고 싶다. <주온>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굉장히 무서운 영화를 만들어야 했으나 현장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가야코 역을 맡은 배우에게 “이렇게도 기어 내려와보고, 저렇게도 기어 내려와보라”고 요구한 뒤 촬영에 들어가는 순간 다들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때 느꼈던 것 같다. 무서운 장면이 들어가는 코미디영화도 할 수 있겠다고.
-일본의 전통 괴담과 B급 호러의 믹스 같은 영화던데, 원래 어린 시절부터 괴담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감명 깊은 이야기는 책을 덮으면서 감동을 받지만, 괴담은 책을 덮고 난 뒤에 훨씬 더 무서워진다. 어릴 땐 괴담을 읽고선 화장실도 혼자 못 갔다. (웃음) 열네살이 될 때까지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보지도 못했을 정도니까.
-할리우드에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작업할 때와 가장 다른 점이 뭔가.
=일단 기본적으로는 ‘놀라는 포인트’가 다르다. 아시아 사람들은 유령이 나온다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데 비해 미국인들은 귀신이 와서 덮치지 않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또, 나는 귀신이 천천히 다가오는 게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인들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걸 무서워한다. 스케어(Scare)보다는 서프라이징(Surprising)을 선호하는 거다. 뭐, 어느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느 부분은 거부하면서 조금씩 맞춰나갈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이지 않은 부분은 어떤 것들인가.
=갑자기 덮치는 장면을 많이 넣어달라는 요구. 그러면 기존의 미국 호러영화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문화가 다르니까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내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닌데(웃음), 미국에서 데리러 온 것을 보면 그쪽도 소재가 어지간히 부족한 듯하다.
-하지만 <주온> 비디오판, 두편의 <주온>과 두편의 <그루지>까지. 스스로도 좀 지겹지 않은가.
=완전히 질렸다! 그래서 <유령 대 우주인>처럼 공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만드는 거다. 스스로 지겨워지면 안 된다. 만드는 쪽에서 즐겁게 만들지 못하면 관객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들이야 뭔가 보장된 게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계속해서 비슷한 것만 만들자고 한다. 그런 걸 막기 위해서는 제작자들에게 비슷비슷한 작품들을 다 보여주는 게 낫다. 한국에서 비슷한 영화들이 해마다 나오지 않나.
-한국 공포영화는 관객의 신의를 잃었다. 한국 표절작들의 오리지널 감독으로서, 죽어버린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일본도 같은 상황이다. 호러영화에 대한 공부를 이러저러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호러영화들을 많이 챙겨보는 편이다. 하지만 어느 것을 봐도 <링>이나 <주온>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새로운 시선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로 <유령 대 우주인> 같은 실험작들을 만들고 있다.
-<주온3>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글쎄. 언젠가 할 생각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 10년 뒤에나 만들게 되지 않을까. <주온>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기쁘긴 하지만 다른 타이틀도 갖고 싶다. 나로부터 관객이 기대하는 것을 배신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다.
-할리우드에서 곧 들어갈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나.
=내년에는 할리우드에서 한편을 만든다. 호러 장르적인 요소가 있지만 가족영화나 SF장르적인 요소도 넣고 싶다. 확정은 아니라 아직 말할 수는 없다. 내가 계속 호러영화만 찍는 걸 부모님이 그리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웃음) 가족이 모두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기도 하다.
-감독님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가.
=여자. (웃음) 남자들끼리는 싸워도 그 자리에서 풀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영원히 가슴에 담아둔다. 그게 제일 무섭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