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여덟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라따뚜이>가 그 먹음직한 모양새를 드러냈다.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제목은 둘째치고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된 뒤 처음 내놓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나 질병의 상징인 쥐가 요리사가 된다는 설정, 작업 중간에 감독이 갈렸다는 사연들이 다소나마 우려를 자아냈지만 배경으로 등장하는 프랑스 파리의 색다른 풍경과 115분의 러닝타임을 꽉 채우는 다채로운 에피소드, 여느 실사영화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스펙터클한 장면 등은 애초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듯하다. 로튼토마토(www.rottentomatoes.com) 역시 96%의 신선도를 부여하며 픽사의 새 요리에 호의를 내비친 상태. 잔 핑카바에게 총주방장의 모자를 물려받은 브래드 버드도, 지금쯤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 않을까. 천재적인 요리 감각을 지닌 쥐 레미가 인간 친구 링귀니와 합심해 프랑스 일류 레스토랑을 수호하려 한다는 내용의 <라따뚜이>는, 그가 <인크레더블>에 이어 픽사에서 두 번째로 조리한 장편애니메이션이다. 할리우드 실사영화의 단골 메뉴인 ‘중년 가장과 가족의 위기’라는 주제를 차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인크레더블>을 기억한다면 그의 행보가 이제 확실히 궁금해졌을 듯. 열혈팬을 양산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한 <아이언 자이언트>를 선두로 <패밀리 도그>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등을 레시피 삼아 브래드 버드라는 주방장의 세계를 슬쩍 들여다봤다.
불어로 쥐(rat)와 휘젓다(touille)의 합성어이자 소박한 요리의 일종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한 <라따뚜이>는 애초 브래드 버드의 차기작이 아니었다. ‘요리하는 쥐’라는 창의적이고 기발하나 한편으로 위험부담이 적지 않은 모티브는 1997년 <제리의 게임>(Geri’s Game)이라는 단편을 만들어 오스카에서 수상한 체코 출신 애니메이터 잔 핑카바의 머릿속에서 태어났다. 아이디어로는 픽사의 까다로운 임원진의 심미안을 충분히 만족시켰던 핑카바는 그러나, <라따뚜이>의 제작자 브래드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연출하기 극히 까다로운 작품”이라는 이유로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각본부문의 크레딧에 새겨놓은 이름이 무색하게 픽사와 결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픽사 임원진 입장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 연출 경험이 전무한 핑카바에 비해 전작인 <인크레더블>을 보기 좋게 성공시킨 브래드 버드쪽이 훨씬 안정적인 선택이었음이 틀림없다. <인크레더블>에서 기존 애니메이션이 한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정교한 액션신을 담아낸 그에게, 쥐에게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는 대신 회색털을 곧추세운 채 네발로 걷게 만든 어쩌면 획기적인 발상의 <라따뚜이>는 기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전 책임자의 고뇌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버드의 심정이야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할리우드적인 시각에서 문제성 프로젝트로 성공적인 영화를 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세 사람, 존 래세터, 에드 캣멀, 스티븐 잡스에게 부탁받았고 언제나 <라따뚜이>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본능적인 스토리텔링과 장르 실험 펼친 <라따뚜이>
가장 시급하게 손대야 했던 과제는 이야기였다. 브래드 버드의 설명에서 짐작건대 핑카바가 “아름다운 외양”과 “쥐가 요리사가 되기를 원한다는 정말로 흥미로운 몇몇 요소들”, “훌륭한 로케이션”, “멋진 캐릭터들의 캐스팅”에도 <라따뚜이>의 성대한 주방에서 쫓겨난 것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픽사가 여러 차례 강조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캐릭터이고 모든 그래픽과 비주얼은 케이크 위의 당의”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읊조렸을 버드는 18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기한에도 줄거리의 강략과 캐릭터의 비중을 세심하게 조율하며 당면 과제를 헤쳐 나갔다. 솜씨 좋은 요리사가 요리에 적정한 불의 온도를 직감적으로 깨우치듯 루이스가 “본능적인 스토리텔링의 절정”이라고 평한 재능을 100% 활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라따뚜이>는 아홉개의 스토리라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중 단 세개로도 완벽하게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링귀니와 쥐의 것이어서 그게 우선순위가 됐다. 다음으로 나는 이것저것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스토(브래드 가렛)를 죽인 다음 그를 레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적인 존재로 불러왔다. 매우 중요한 캐릭터인 꼴레트(재닌 가로팔로)를 만들었고 구스토의 대리인인 스키너(이안 홈)에게 더 큰 역할을 줬다.”
미려한 요리가 유독 많다는 프랑스 파리. 더러운 수챗구멍을 드나들면서 요리사 되기를 꿈꾸는 남다른 쥐 레미(패튼 오스왈트)의 이야기는 이렇게 완성됐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요리사 오귀스트 구스토의 메시지를 믿는 그는 요리를 향한 열망이 빚어낸 위험천만한 사건으로 아버지, 동생 등과 헤어진다. 배를 곯으며 일족의 소리에 귀기울이던 그가 운명처럼 도착한 장소는 시니컬한 요리 평론가 안톤 이고(피터 오툴)의 혹평에 세상을 뜬 구스토의 소유였던 레스토랑. 요리에 단 한 스푼의 재능도 없는 링귀니(루 로마노)와의 인연 역시 이곳에서 비롯된다. 링귀니가 요리하고 레미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그를 조종한다는 얼핏 단순한 그들의 상부상조는, 링귀니가 터프한 여자 요리사 꼴레트와 사랑에 빠지고 총주방장 스키너의 의심과 안톤 이고의 위협이 더해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타고난 재능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듯한 플롯이나 섣불리 봉합하려 한 흔적이 느껴지는 결론은 아쉽지만 <라따뚜이>는 하수도의 급류에 휩쓸리고 벽을 통해 건물을 탐험하는 등 쥐의 시각에서 연출한 일부 장면에서 녹록치 않은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브래드 루이스가 불안하게 여겼다는 어드벤처물의 요소는, <인크레더블>이 <엑스맨>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를 내세운 여타 실사영화와 비견할 매력적인 액션물이었듯 결국 애니메이션 안에서 여러 장르를 실험하려는 버드의 야심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부분으로 작용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와 동등하다’
브래드 버드의 신념은 간명하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닐뿐더러 어른들이 흔히 즐기는 실사영화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 이는 최근작인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는 물론 극장판 애니메이션 데뷔작 <아이언 자이언트>에서도 우러나는 아주 오래된 생각이다. 적지 않은 팬을 그러모았고 호의적인 평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인 <아이언 자이언트>은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미국 메인주의 작은 해안 마을. 누가 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거대한 로봇, 아이언 자이언트가 그곳에 불시착한다. 고철덩어리를 주식으로 하는 아이언 자이언트는 발전소를 뜯어먹다 감전되지만 이상한 낌새에 그곳을 찾은 마을 소년 호가스가 그의 목숨을 구한다. 애완동물 키우는 것이 소원인 소년과 강아지마냥 그를 따르는 로봇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나 <아이언 자이언트>를 감싸고 있는 시공간의 아우라는 명백하다. 이는 작품의 원작인 영국 계관시인 테드 휴즈의 동화 <아이언 맨>과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라는 점에서도 눈에 띄는 특성이다. “스푸트니크를 아니? 외국의 인공위성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 우릴 파괴하기 전에 먼저 그걸 없애야 해.” 냉전의 강박에 사로잡힌 정부 요원 켄트 맨슬리는 아이언 자이언트가 미국을 파괴할 적국의 발명품이라고 여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파괴하려 한다. 결과는 비참하다. 핵무기가 마을을 향해 발사돼 모두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된 것이다. 호가스와의 만남으로 슈퍼맨의 존재를 알고 자신이 살상무기만은 아님을 깨달은 아이언 자이언트는 마침내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하늘로 솟아오른다.
“나도 모르겠다. 내겐 구체제의 몰락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착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소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디즈니가 하는 것과는 다르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냉전의 종식을 부드럽게 종용하는 듯한 <아이언 자이언트>는 50년대 미국의 광기, 폭력을 기억하고 주요하게 학습했을 어른 관객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일 애니메이션이다. 죽은 사슴을 앞에 둔 소년이 “죽이는 건 나쁘지만 죽는 건 괜찮아”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장면에선 과거를 돌아보는 노인의 따스한 지혜마저 느껴진다. 미지의 생명체를 무턱대고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유연한 가치관, 군더더기없는 연출, 로봇에도 영혼이 있다는 독특한 설정, 과감하게 핵폭탄을 등장시킨 결단력 등은 <아이언 자이언트>에 쏟아진 호평의 근거였을 뿐더러 아이들을 타겟으로 생산된 여타 애니메이션과 선을 긋는 확연한 차이점이었다. 버드 자신이 의도했던 것도 당시 디즈니에서 내놓았던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갖췄지만 기술적으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에 반하는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었다.
그럼에도 <아이언 자이언트>는 박스오피스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어쩌면 빤히 들여다뵈는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에서 양질의 작업물을 생산하려면 디즈니가 하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오해가 있다. 만약 누군가 여기서 벗어나 <옐로우 서브머린>이나 <동물농장>, 랠프 박시의 초기작품 같은 영화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정말 열등한 솜씨로 마무리될 게 뻔하다.” <아이언 자이언트>의 개봉 뒤 브래드 버드는 디즈니와 할리우드 시스템을 향해 잇따라 폭탄발언을 던졌다. 일부 영화를 대놓고 언급하는 등 대담하기 그지없는 표현을 써가며. “영화를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아마겟돈>을 보러 갔는데 정말 똑같은 종류의 영화더라. 나는 요즘 성행하는 MTV 스타일의 영화 만들기에는 한치도 본받을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픽사가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한 감독으로 기록되기 전 터너, 디즈니, 폭스, 워너브러더스 등의 제작사를 거치며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으니 가능한 발언이었다. 신세계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러나, 그 역시 처음에는 좋아하는 일을 향한 열정에서 영화일을 시작했다.
디즈니, 워너를 거쳐 안착한 픽사
1957년 9월 미국 몬태나 칼리스펠에서 태어난 브래드 버드는 어린 시절을 오레곤 카발리에서 보냈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카발리는 “영화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여기는 이상한 분위기가 존재하는 소도시였다. TV를 보면서 3살 때부터 만화를 끼적였던 그는 11살 때 즈음 첫 완성작이 될 단편애니메이션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4살 무렵에는 그 작품을 계기로 디즈니의 ‘아홉 노인’(Nine Old Men) 중 하나인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밀트 칼 아래서 기술을 익혔고, 칼아트의 캐릭터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해 픽사의 공동창립자 겸 감독인 존 래세터, 팀 버튼 등과 친분을 쌓았다. 졸업 뒤 터너를 거쳐 일찍이 그의 재능에 주목했던 디즈니에 안착했지만 1981년 <여우와 사냥개>의 작업에 참여한 뒤 곧 그곳을 떠났다. “나는 독창성의 결여에 대해 말했고 보트를 뒤집으려 한다고 비난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이어 TV작업이 그를 찾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휘하에서 폭스의 TV시리즈 <어메이징 스토리> 중에서 <패밀리 도그>를 연출해 시선을 끌었는가 하면, <심슨가족> 시리즈의 컨설턴트로 일하면서는 일부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실사영화 작업에도 참여해 매튜 로빈스 감독의 <8번가의 기적>의 크레딧에는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 머지않은 미래에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매끄럽게 지휘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기간 동안 그는 빡빡한 스케쥴 내에 일정 수준의 창작물을 생산해야 하는 TV시스템을 통해 적지 않은 훈련을 거쳤음이 분명하다.
TV의 세계에서 꽤나 유명했던 그는 워너브러더스에 영입돼 마침내 장편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와 조우한다. 여러 미완성 프로젝트들을 전전하던 끝에 찾아온 마법 같은 기회였다. 그가 속해 있던 애니메이션 부서는, 그러나 “일하고 있던 와중에도 계속 부서를 폐지했”고 “매주 상사들이 사라졌”을 만큼 이미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쇠락하는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는 버드가 처했던 물리적 상황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제작기간의 절반”과 “예산의 1/2”을 녹슨 무기처럼 휘두르며 고군분투했지만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영화가 개봉했을 때 포스터도 못 얻”을 정도로 무너진 애니메이션 부서와 운명을 함께한다. “나는 <아이언 자이언트>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연출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냉전 같은 소재가 있고 음악은 없지만 소년 주인공이 있다. 스튜디오의 사람들은 그걸 이해했다. 거대한 로봇에 매혹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같은 이유에서 <아이언 자이언트>는 균형을 잃은 애니메이션 부서의 현실로 가능했던 프로젝트였다. 흥행을 위해 탄탄한 전략을 짜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규격화된 줄거리 안에 작품을 밀어넣어야 했던 상황이었다면 <아이언 자이언트>가 탄생하는 일도, 버드가 픽사로 걸음을 옮기는 일도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꽤나 큰 충격이었던지 픽사에 처음 입사한 브래드 버드는 프론트 데스크부터 사무실의 풍경까지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보관했다. 그곳 역시 곧 공중분해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를 연이어 연출한 그는 그러나, 여전히 픽사에서 세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토이 스토리>에서 출발한 픽사의 무너지지 않는 성공 신화도, <인크레더블>의 어머어마했던 인기에 힘입은 덕인지 건재하다.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했던 픽사와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했던 버드는 레미와 링귀니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물론 의문은 떠오른다. 과연 현실에 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그가 픽사의 안정적인 환경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새로운 요리를 계속 조리할 수 있을까. 푸른 눈에 서린 상냥함과 달리 시니컬한 말투로 격렬하게 디즈니에 반항했던 바로 그 사람이 말이다. “완전한 자유. 존 래세터와 에드 캣멀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이곳에는 우리가 찾고 있는 완전한 의욕이 있다.” 그러니 더 완벽한 환경에서 작품을 만든다고 그를 변절자라고 부르기란 힘들지 않을까.
자신만만 이야기꾼의 모험은 계속된다
<라따뚜이>가 <인크레더블>의 성공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수 있을지 섣불리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보다는 잔 핑가바가 남긴 설정을 이용해 브래드 버드가 자유자재로 빚어낸 갖가지 에피소드와 다양한 장르적 즐거움, 안톤 이고의 목소리를 타고 전달되는 묵직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권력을 원하는 가장에게 물리적인 힘을, 유연함이 필요한 주부에게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신체를, 비밀이 많은 사춘기 소녀에게 자기장을, 에너지가 넘치는 소년에게 스피드를 부여해 기발한 조화를 유도했던 <인크레더블>과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게다가 <라따뚜이>는 <인크레더블>이 주지 못했던 감동을 제법 가슴 뭉클하게 실어나른다.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나 사려 깊지 못한 악당의 설정은 우려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관객층을 넓히기에, 선입견을 깨뜨리기에 주력했던 그에게 지금까지의 시간은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만만한 이야기꾼인 그는 지금 다른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실사영화로, 실사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자유롭게 오가고 싶다”는 강건한 신념이 실사영화로 완성될 차기작 <1906>을 통해 곧 현실화될 계획이다. 그렇다면 꿈 하나만을 믿고 주방에 뛰어든 레미의 이야기에 브래드 버드가 겹쳐지는 것도 그저 우연만은 아닐 듯싶다.
픽사의 성공비결
기술적 진보와 창의력 발산의 장, 단편애니메이션
브래드 버드가 자신의 아이디어도 아닌 <라따뚜이>를 큰탈없이 마무리한 데는 그를 뒷받침한 픽사라는 조직의 공이 컸다. 그렇다면 픽사가 매번 실패없이 창의적이면서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을 내놓는 비결은 무엇일까. 인재의 발굴, 자유롭고 의욕적인 분위기, 아낌없는 투자 등 다양하겠지만 픽사의 오랜 전통인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을 빼놓을 수 없다. 픽사의 출발이 조지 루카스의 영화사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전담 부서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애초 컴퓨터그래픽의 기술적인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만들었던 단편애니메이션은 <앙드레와 월리 B.의 모험>을 거쳐 <럭소 주니어>에 이르면 다소 다른 모양새를 갖춘다. 픽사의 로고로도 자리잡은 이 작품은 다름 아닌 이야기와 캐릭터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것이다. 내·외부적인 변화를 겪으며 픽사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탈바꿈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처음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픽사가 가능성있는 스탭들에게 단편애니메이션 연출을 맡겨 얻으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기술적인 진보. 둘째 창의력의 발산. 마음껏 뛰놀 장소를 제공하면서 내용적, 기술적 완성도를 혹독하게 요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단편은 픽사에서 만든 다른 장편의 DVD 서플에 수록하거나 장편 상영 전에 공개되고 있다. <장식품>(Knick Knack)이 <니모를 찾아서>, <바운딘>(Boundin)이 <인크레더블>, <원 맨 밴드>가 <카>와 함께 상영된 것은 그 때문이다. 동전 하나를 두고 두명의 음악가가 벌이는 사투를 그려 폭소를 자아낸 <원 맨 밴드>의 마크 앤드루스와 앤드 지메네스는 스토리 슈퍼바이저와 애니메이터로 <라따뚜이>에 참여했으니, 인재를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픽사의 신념은 잘 유지되고 있는 듯. 곧 개봉할 <라따뚜이> 역시 따끈따끈한 신작 단편과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시카고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던 게리 리드스트롬의 <리프티드>가 그것이다. 실수투성이의 자그마한 외계인과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거대한 외계인의 섬세한 표정이 압권인 이 작품은 외계인들이 잠들어 있는 지구인을 비행접시로 납치하려 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제목인 ‘리프티드’는 지구인을 납치하는 방법과 관련된 단어다. 곤하게 잠에 빠져 깨어나지 않는 지구인 캐릭터에는 <라따뚜이>의 링귀니를 빌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