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대만 사회의 세밀하고 날카로운 관찰자
2007-07-26
대만 영화평론가 원티엔시앙이 바라본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세계

대만 영화계에서는 이미 물러났지만, 종종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거론되던 에드워드 양 감독이 6월29일 결장암으로 미국 LA에서 향년 59살로 생을 마감했다. 에드워드 양은 1947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1949년 부모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한 뒤 타이베이에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에드워드 양 영화의 주 배경은 타이베이다. 교통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를 취득한 에드워드 양의 학력은 영화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이는 지난날 대만에서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던 상황을 반영한다. 그건 대만의 영화교육이 뚜렷하게 발전하지 않았던 결과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영화가 그저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학문이라는 편견에서 기인한 것으로, 영화가 다른 학과에 충분히 붙을 만한 능력을 갖춘 학생이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대만에서 영화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심취했으며, 군악대에서는 고전음악을 섭렵해 시나리오와 콘티, 구성, 리듬 등에 대한 기초를 다지게 된다.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결국 가족들을 설득하여, USC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전공하지만, USC의 수업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미국에서 7년간 컴퓨터 관련업에 종사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과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대만으로 돌아와 영화를 찍게 된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그는 절친한 친구 여위정 감독의 <1905년 봄>(1981)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은데다 직접 출연까지 했으며, 드라마 <11인의 여인> 시리즈 중 <부평>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그 뒤 그는 도덕신, 가일정, 정의 감독과 함께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광음적고사>(1982)로 ‘대만 뉴웨이브’의 기원이 된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는 단절된 대만 영화사를 지금에까지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젊은 감독들로 하여금 도피주의식 영화에 대항하고 역사와 사회정서, 사고방식 외에도 영화형식에 과거와의 경계가 분명하게 변화와 자각을 추구하는 발단이 된다. <광음적고사> 촬영 당시 일어났던 젊은 감독들과 기존의 영화인들과의 끊임없는 충돌은 종종 매체에 보도되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개혁의 과정이라 평가됐다. <광음적고사>가 상영된 뒤 에드워드 양은 인기 감독의 대열에 본격적으로 진입, 눈에 띄는 박스오피스 성적과 함께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다.

<해탄적일천> <청매죽마> 계기로 허우샤우시엔과 관계 돈독

옴니버스영화 <광음적고사>의 단편 4개는 줄거리상으론 연관성이 없지만, 주인공의 유년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각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4명의 감독은 각기 예리함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중 두 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에드워드 양의 <갈망>은 1960년대 중국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녀는 경제적 부담을 심하게 느끼는 보수적인 어머니와 대학 진학을 갈망하고 서양 문화에 젖어 있는 언니를 두고 있다. 어머니가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남은 방 한칸을 남자 대학생에게 빌려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주인공은 세들어 사는 대학생에게 어렴풋한 욕망을 느끼고, 용기를 내 프러포즈를 하러 가지만, 대학생 방에는 이미 언니가 와 있다. 에드워드 양은 이후 영화를 통해 인간의 고독한 성장과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시대의 분위기를 일깨우고자 했으며 <고령가 소년살인사건>(1991)은 그 서막이 된다.

<광음적고사> 중 <갈망>은 비록 4편의 영화 중 한편이지만, 에드워드 양의 특출한 연출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고, 차기작 <해탄적일천>(1983)에 대한 기대 또한 커지게 했다. <해탄적일천>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와 흡사한 줄거리로 여주인공(장에이지아)의 남편이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실종된 남편이 해변에 남긴 증거로 봐 익사 가능성도 생각하지만, 영화는 남편을 찾는 과정을 다루는 대신 (남편이 고의적으로 배반했을 수도 있는) 여주인공과 그녀 오빠의 첫사랑이었던 피아니스트(후인멍)의 재회를 통해 전통적인 사랑과 결혼 관념에서 탈피하려 하고, 좌절과 시험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를 통해 대만사회가 가진 가정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에서 탈피하고자 했으며, 전통적인 대만영화에서 그려졌던 상처받은 여성상의 폐단을 넘어서고자 했다.

앞서 언급한 두편의 영화 모두 여성의 성장을 주제로 했기에 많은 이들은 에드워드 양의 주관심사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 누구도 그의 차기작인 <청매죽마>(타이베이 스토리, 1985)에서 주인공으로 남자가 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더군다나 그 유명한 허우샤오시엔 감독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를 캐스팅했다. 면포상을 경영하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는 남자주인공이 신흥문명을 추구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기 원하는 여자친구(차이친)를 만나면서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한바탕해보려 단단히 벼르지만, 결국 두 사람의 애정전선마저 파경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다. <청매죽마>에서 에드워드 양은 <해탄적일천>보다 더욱 분명하게 인간의 비애를 표현하면서 호탕한 성격의 남자주인공을 급속도로 물질만능주의라는 수렁에 빠뜨린 뒤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영화 속 젊은이들에게 철천지한과 잔인한 상처를 주거나, 그들을 누구의 도움없이 철저히 혼자 고통을 감수해내야 하는 상황에 던지기도 했고, 급속한 경제발전에 대한 환상을 깼으며,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냉철한 관점으로 그려냈다.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주자인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두 감독은 <해탄적일천>을 통해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가 됐고, <청매죽마>는 두 감독의 우의가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에드워드 양과 배우이자 가수인 차이친과의 결혼을 도와주기도 한다. 두 대감독의 두터워진 우정과 반대로 <청매죽마>는 흥행에 실패했고, 비평 또한 좋지 않아 타이베이에서는 상영 4일 만에 상영이 종료됐으며, 이어 금마장영화상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 에드워드 양과 허우샤오시엔 두 감독은 대만 뉴웨이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풍자적 내용을 담은 후속작 <공포분자>(1986)는 살을 에는 듯한 차갑고 냉철한 영화로 에드워드 양의 전작에 호응하지 않았던 평론가들마저 관심을 끌게 했고, 결국 금마장에서 최우수 작품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공포분자>는 안토니오니 감독의 1966년작 <욕망>(Blow Up)과 스토리상 유사한 면이 있다. 경찰에 체포될 상황에 처한 소녀가 창문으로 도망가다 발코니에서 떨어져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는데, 사진 찍기가 취미인 소년이 우연히 소녀의 사진을 찍게 된다. 소년은 자신이 찍은 소녀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에게 매혹되기 시작한다. 불량한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던 소녀는 어머니에 의해 집 안에 갇히게 되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작위로 번호를 눌러 장난전화를 하는데,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창작의 슬럼프에 빠져 있던 한 여류작가가 이 장난전화를 받게 되는 것을 통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에드워드 양은 <공포분자>를 통해 도시 생활의 무기력함과 권태를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담아냈고, 이 영화로 대만 영화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금마장 시상식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대만 평단이 외면한 수작 <독립시대> 이후 대만영화계와 결별

<공포분자> 이후 약 5년간의 공백기를 보낸 에드워드 양은 <고령가 소년살인사건>(1991)을 연출한다.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은 에드워드 양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로, 시대를 역행해 1960년대로 가서 한 소년의 살인사건을 통해 억압과 방황, 도덕과 순결함이 상실된 폐쇄적 시대상을 담아낸다. 도덕과 순결함이 상실된 시대는 소년(장첸)을 자살로 몰고 가고, 끊임없이 남자에게 의지하는 여자친구도 그럴수록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 이 영화는 파벌주의의 몰락과 무리한 교육 방침, 그리고 경찰과 사법 시스템이 부패한 사회가 ‘살인’을 단순히 이상을 실현하려다 실패한 결과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1989)와 비교하면 더욱 흥미롭다. <비정성시>에서 허우샤오시엔이 대만 본토인들이 일본 통치하에서 금기시되던 것들을 타파하려는 모습과 국민당 정권의 흐름, 제국에 통치받는 약소국의 운명을 그렸다면,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에서 에드워드 양은 외부세력에 의해 대만이 부활하는 모습과 이익집단들의 투기와 몰락을 담아낸다. 에드워드 양은 60년대의 암울함을 배경으로 주제를 전환해 비주얼적인 스타일 변신을 시도했고, 캐릭터 또한 강하게 대비시켰다.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은 비록 <비정성시>와 같이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지만, 도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금마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금마장영화상 수상 경력을 보면,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최우수 작품상 수상 경력은 없지만 <비정성시>와 <호남호녀>로 최우수 감독상을 두번 수상했고, 에드워드 양은 감독상 수상 경력은 없지만 두번에 걸쳐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두 감독의 금마장영화상 수상 횟수는 똑같다.

에드워드 양은 모더니즘의 극치라 표현할 수 있는 <공포분자>에서부터 과거를 배경으로 한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세간을 뒤흔드는 작품활동을 하다 1994년 <독립시대>로 전작들의 분위기에서 과감하게 탈피한다. <독립시대>에서 에드워드 양은 밝고 경쾌한 리듬과 쉴 틈 없는 대사를 통해 신세대들의 사랑과 경제, 예술, 그리고 종교적 위선을 그려낸다. 그는 영화에서 타이베이를 위장 도시로 표현하고, 타이베이가 밝은 면보다 암울한 면이 더 많은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심리학이라도 공부한 사람마냥 다른 사람들을 분석하기 바쁘고, 자기의 결점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이 영화를 통해 에드워드 양은 우디 앨런과 로버트 알트먼같이 날카로운 유머와 해학으로 도덕적 가치관의 왜곡을 보여준다. 하지만 코미디영화인 <독립시대>는 직접적인 화법과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로 영화에 대한 믿음을 깬다. 물론 이 영화로 에드워드 양 감독은 칸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경박한 영화라고 평가한 <마종>(1996)은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고, 공감하는 영화다. 에드워드 양은 타이베이의 뒤틀리는 생존 게임에서 현대인의 처지와 작렬하는 시대를 꿰뚫어보고,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애를 그려낸다. 그는 이른바 말하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한 뒤 다국적기업을 통해 외국인들의 진입이 증가한 타이베이를 외국인들의 도마에 오른 고기 내지는 물 만난 고기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독립시대>는 교훈을 주면서도 유머까지 가미된 영화로, 혼란스런 세상에서 스스로 탈출구를 찾는 젊은이들을 그려낸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안타까운 일은 이 영화가 세계 평단의 가차없는 비평 속에서도 베를린영화제에서 비공식 특별상을 수상했지만, 대만에서는 영화에 관한 어떠한 평론이나 홍보가 없었고 박스오피스도 최악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 결혼생활까지 흔들리면서 1995년 그는 결국 차이친과 이혼했고, 이 사건들은 에드워드 양이 대만과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동시대 중산층 대만 가정 그린 <하나 그리고 둘>, 유작이 되다

이러한 상황에도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는 예전과 다름없이 대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00년 다시 귀로에 오른 에드워드 양은 일본의 투자를 받고 일본 배우를 캐스팅해 <하나 그리고 둘>을 연출,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일본적 요소가 가미되긴 했지만, 그의 영화는 예전과 다름없이 타이베이의 중산층 가정 노인과 중년 그리고 젊은 세대와 아이들 등 각 부류가 겪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과 사회, 그리고 시대를 담아냈다. 당시 그 누구도 이 영화가 에드워드 양의 ‘유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표현된 <하나 그리고 둘>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 영화는 전통적 가치관에 얽매이거나 과거와 융화될 수 없는 현대 젊은이들에게 인간관계와 가치관, 그리고 도덕관과 순결함에 대한 가치를 희망적인 메시지로 전달한다. ‘타이베이’의 에드워드 양 감독은 <하나 그리고 둘>로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중 박스오피스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만에서는 극장 상영을 하지 않았고, 그 또한 금마장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2002년 성대하게 거행된 ‘대만 뉴웨이브’ 2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그는 그저 침묵만을 지켰을 뿐이다. 이것은 아마도 지난날 그에 대해 계속해서 과소평가 혹은 오해를 해왔던 대만 영화계에 대한 항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에드워드 양과 거의 2년간 연락이 뜸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별다른 기대없이 그에게 2003년 타이베이영화제 폐막작으로 <하나 그리고 둘>을 출품해줄 것을 요청했다. 에드워드 양은 선뜻 그러겠노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 뒤 이어진 간담회까지 참석해주었으며, 관객에게 일일이 사인도 해주고,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당시 나는 에드워드 양이 생각을 바꾸어 한 극장에서 <하나 그리고 둘>을 상영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 뒤 다시 4년이 지나도록 그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적당한 극장을 찾지 못해서일까(최근 몇년간 극소수의 대만영화들만이 대형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뿐이다), 아니면 그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해서일까? 물론 나는 그 답을 모른다. 이제와 그저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프랑수아 트뤼포를 흠모하고 장 뤽 고다르의 위대함을 부인할 수 없다.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이 두 사람은 이미 위대한 감독들이다. 나 자신이 허우 감독을 편애한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에드워드 양 감독의 뛰어남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에드워드 양은 대만사회의 격렬했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해왔을 뿐만 아니라 대만 사람들의 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그는 모던함과 지성, 날카로움,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닌 작가의 지위에 올랐다. 타이베이의 모습을 전문적으로 그려왔던 에드워드 양 감독은 전세계의 인정을 받는 걸출한 영화 거장이 되었다. 그것은 그가 도시문화의 독특한 양상을 묘사해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물 구조 안에서도 인성을 통찰하려는 갈망과 인간의 약점을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에서부터 전세계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영화의 길은 위대하고 찬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티엔시앙은 16살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여, 20살에 대만 영화계에 평론가로 등단했다. 1997년 ‘차이밍량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타이베이영화제 프로그램 기획을 담당했다. 그동안 8권의 영화 관련서적을 출간했다.

원티엔시앙(聞天祥)/ 대만 영화평론가 번역 채보현/ 아시안필름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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