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symbol)이라는 낱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심발레인’(symbalein)은 원래 두 사람이 헤어질 때 쪼개서 나눠 갖던 청동거울을 가리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최근에 내놓은 두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바로 이 심발레인을 닮았다. 거울을 나눠 갖듯이 미군과 일본군은 각자 반쪽의 진리만 소유한다.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일의 전모는 쪼개진 거울의 이 두쪽을 맞춰야 비로소 드러난다.
두 영화에서는 몇 군데 동일한 신이 사용된다. 거기가 거울의 두쪽을 가르는 절단선이다. 그 선에서 한 조각은 왼쪽으로 연장되고, 한 조각은 오른쪽으로 연장된다. <아버지의 깃발>의 미군 병사들은 일본군 진영에서 일어난 일을 보지 못하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일본군 병사들은 미군 진영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다. 오직 두 영화를 다 본 관객만이 전지적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각각의 영화는 자체만으로 완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 완결되어 있지 않다. 다른 영화를 봐야 비로소 사건의 전체적 진행과 전쟁의 전체적 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완전하면서도 동시에 불완전한 모순적 구조. 이를 통해 감독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이라는 게 실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자기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상대의 입장에서 체험해보라. 그때 비로소 판단은 온전해진다.
영웅 만들기
미국과 일본은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이 다르다. 자본주의적 미국에서는 사적 소유의 신성함을 건드리지 않고 ‘공채’로 군비를 마련한다. 국가주의적 일본에서는 헌병대가 국민의 사유권을 무시하고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공출’해간다. 이 차이만큼 전쟁영웅을 만드는 방식도 다르다. 자본주의적 미국에서 영웅은 살아서 ‘스타’가 된다. 반면 국가주의적 일본에서 영웅은 죽어서 호국의 ‘영령’이 된다.
영화는 영웅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이오지마의 영웅들이 전쟁에서 한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역을 했을 뿐이다. 사진 속의 성조기는 이오지마에 게양된 첫 번째 깃발이 아니었다. 그 역사적 깃발은 대대장이 갖기를 원했기에, 소위 영웅들은 고위 정치가에게 넘겨줄 기념품이 될 교체용 깃발을 게양하던 중이었다. 게다가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가 올라간 것은 섬에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소학교 아이들이 이오지마의 일본군한테 라디오로 노래를 보낸다. “제국의 운명이 이 섬에 달려 있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부심과 명예로 싸우리라.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오지마.” 일본의 영웅들은 열심히 싸우다가 죽으라는 노래 외에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자랑스럽다는 그 섬에 소모품으로 버려진다. 그들이 수행한 것은 전투가 아니라 군사적으론 별 의미도 없는 ‘옥쇄’, 즉 집단자살이었다.
반쪽의 진리
“제대로 된 사진이라면 전쟁의 승패를 바꿔놓을 수 있지.” <아버지의 깃발>은 영웅의 허구성에 관한 영화이자 동시에 사진의 허구성에 관한 영화다. “베트남전을 보게나. 베트남 장교가 사람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대고 머리를 날려버리던 그 사진. 그런 거야. 전쟁에서 진 거지.” 에디 애덤스의 사진은 베트남군이 백주에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으로 여겨져 베트남전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구엔 곡 로안 장군이 처형한 것은 구엔 반 렘이라는 이름의 베트콩이었다. 그는 암살과 보복을 담당하는 베트콩 소대의 지휘자로 처형 당일에 학살당한 경찰 가족들의 시체 옆에서 체포됐다.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아니기에, 제네바협정에 따른 전쟁포로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 게다가 당시는 ‘구정 대공세’, 즉 대대적인 도시폭동의 긴박한 상황이었다.
문제의 사진은 반전의 아이콘이 되고, 사진을 찍은 에디 애덤스는 퓰리처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훗날 애덤스는 사진 속의 주인공 구엔 곡 로안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고, 나는 카메라로 장군을 죽였다. 아직도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사람들은 사진을 믿지만, 사진도 거짓말을 한다. 굳이 조작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사진은 반쪽의 진리일 뿐이다.”
이오지마의 깃발
“제대로 된 사진이라면 전쟁의 승패를 바꿔놓을 수 있지.” 당시에 미국의 국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조 로젠탈의 사진 한장이 그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희망을 얻는다네. 이유는 내게 묻지 말게. 내게는 엉터리 사진 같으니까. 얼굴도 보이지 않잖아. 하지만 이 사진이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아니 이기고 있다고 말해주지.”
로젠탈이 이오지마에 내렸을 때, 성조기는 이미 세 시간 전부터 수리바치 산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첫 번째 깃발을 촬영하고 내려오던 다른 사진사가 이제야 산을 올라가는 조에게 한마디 던진다. “근사한 사진을 하나 놓쳤네, 조.” 하지만 앞으로 진짜로 행세할 근사한 사진은 세 시간 늦게 도착한 로젠탈의 손에서 나올 예정이었다. 로젠탈은 교체용 깃발이 올라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셔터를 누른다.
영화에서는 정치가에게 주려고 깃발을 교체했다고 하나, 처음에 게양된 깃발이 너무 볼품이 없어, 지휘관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큰 깃발로 교체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작가가 찍은 ‘진짜 깃발’은 너무 작아 썰렁하기까지 하다. 중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미학. 볼품없는 진짜보다 근사한 가짜가 더 실재적이다. 재무부 장관이 반문한다. “뭐라고? 진짜 깃발? 진짜 깃발이란 것도 있나?”
제국의회의 깃발
태평양전쟁의 아이콘이 있었다면, 유럽 전선에도 승리의 상징이 된 사진이 있었다. 예프게니 할데이의 작품으로, 베를린 제국의회에 소련 병사들이 적기를 게양하는 사진이다. 이오지마의 병사들은 처음부터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닥 브래들리, 레니 개그넌, 아이라 헤이즈. 반면 베를린의 영웅들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할데이의 사진이 큰 성공을 거두자, 사람들은 사진 속의 병사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다.
스탈린이 직접 세 병사의 이름을 밝혔다. 칸타리야, 삼소노프, 예고레프. 이 세 병사는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소비에트에서 공식적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사람들의 입에 물린 재갈이 치워지자, 할데이의 딸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이 세 사람은 사진에 찍힌 병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련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 진실이 아니었다. 인민들이 영웅을 요구하자, 수령은 영웅을 만들어주었다.
영웅도 가짜였지만, 사진도 가짜였다. 제국의회에 진짜로 적기가 올라갈 당시에는 아직 전투가 계속되고 있어 현장에 사진사가 없었고, 그 이틀 뒤인 5월2일에야 비로소 병사들을 데려다가 연출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은 직후 할데이는 정치보위부에 끌려가야 했다. “동무, 소비에트 군대는 인민의 약탈자가 아니오.” 그러고 보니 사진 속의 한 병사가 양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다. 시계 하나는 물론 지워져야 했다.
중앙청의 깃발
우리의 중앙청 태극기 게양의 사진 역시 현장을 찍은 게 아닐 게다. 태극기가 게양된 것은 9월26일 새벽 6시10분, 일출 전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상황은 일출 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밝다. 게다가 사진 속의 병사들은 중앙청 마당에서 태극기를 올리나, 원래는 중앙청의 돔 위에 게양됐다고 한다.
폭격으로 끊긴 계단을 로프를 이용해 간신히 기어올랐다고 하니, 거기까지 사진사가 따라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저 사진의 정체는 뭘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1957년 서울수복 기념행사로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장면이란다. 사진 속의 인물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것은 박정모 소위, 양병수 이등병조, 최국방 견습해병이었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 서울수복의 영웅들은 철저히 무명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사진이 없었기 때문일 게다.
한국전쟁의 결정적 순간은 사진으로 남지 못했고, 그래서 영웅이 탄생할 수 없었다. 도처에 숨은 저격병의 저지를 뚫고 청사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은 사진사를 대동하는 한가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전쟁에서는 사진으로 남은 가짜가 사진이 없는 진짜보다 더 큰 실재성을 갖게 된다. 서울수복의 용사들은 무명으로 남음으로써 현실보다 사진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