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캐릭터들은 전통의 순정만화를 닮았다. 테리우스처럼 맘씨좋고 멋진 오빠들과 캔디처럼 씩씩하고 예쁜 언니들이 아기자기 에피소드를 엮는다. 그 판타지 속 흥미로운 리얼리티는 내 마음속의 양다리라는 자연법칙이다. 은찬(윤은혜)은 한결(공유)과 한성(이선균)을 각기 다른 이유로 심하게 좋아한다. 한성은 자신을 떠났다 돌아온 유주(채정안)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은찬을 아낀다. 유주는 한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10년 넘게 자신을 짝사랑하는 한결의 손길도 뿌리치지 못한다. 한결도 예외는 아니다. 유주를 사랑하는 이유가 백 가지가 넘는다지만 남장여자 은찬에게 자꾸 끌린다. 드라마가 깊어지면서 정리 절차를 밟겠지만, 이들의 본성과 행태는 꽤 현실적이다.
양다리 이미지가 처음에 도드라졌던 건 유주다. 유주의 비중은 다른 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화제의 폭발력은 가장 컸다. “채정안 맞아?”로 시작해 “왜 이렇게 분위기가 지적이고 멋있어졌지. 얼굴 고친 거 아냐”라는 질문이 공공연히 떠돈다.
홍대를 중심으로 커피프린스 1호점과 대칭에 있는 한 카페에 채정안이 들어섰다. “그닥 좋아하지 않는 커튼 머리”라고 스스로 희화화하는 물결치는 머리에 미소짓는 모양이 딱 유주의 분위기다. 드라마 이후 첫 인터뷰라는(아마도 이혼 뉴스 이후 처음일) 채정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속사포처럼 말들이 쏟아진다. 그 솔직담백한 품은 은찬을 닮았다.
“일단 성형은 없었어요. 살림하기도 바쁜데. (웃음) 급속도로 개인적 변화가 많아서 외모에 신경쓸 틈이 없었어요. 보통 작품 들어가기 전에 스킨케어도 받고 운동도 하면서 준비하는데 그런 것도 못했으니까요. 처음으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눈빛이 달라졌다는 건 은둔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내 모습을 처음 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이란다. “사극에서도(<해신>) 가수 할 때도 내가 내가 아니었어요. 늘 남의 얼굴, 남의 옷 입은 모습이었죠.”
자신의 밑바닥과 처음 대면한 시간이 배우를 바꿔놓았다. ‘내 안에서 조용히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됐고, 그게 연기로 이어졌다.
“모 아니면 도 같은 성격이었어요. 좀 해보다가 아니면 ‘나랑 안 맞나봐’ 했으니까. 제 주위에서 인내와 끈기를 아쉬워했지만, 난 좀 오만하고 교만해도 된다고 착각했던 거죠. 내 밑이 형편없는데 희망찬 내일만 있을 수 없잖아요.”
그는 자신이 더 변했을 때의 미래가 설렌다고 했다. 더불어 또 뭐가 나를 설레게 할까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주보다 2배속 빠른 말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직설과 유머가 시원스레 섞여나왔다. 코미디를 하면 잘할 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지만, 화장기 없는 토크쇼를 진행하면 훌륭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다른 이름을 자꾸 들먹였다. 서슴없는 코멘트 속에 또 잘 몰랐던 채정안이 있었다.
윤은혜. “한창 주가가 상승하는 아이돌 스타인 줄 알았더니, 내가 저 나이 때 일에 대한 열정이 있긴 했나 반성하게 될 정도로 놀랐어요. 노메이크업에 커트 머리인데도 사랑스러워요. 실제로는 내성적이에요. 공유도 나보고 형이라고 하니 현장에서 여자는 은혜 한명뿐인 거죠. 하하.”
김창완. “천재라고 불러요. 촬영할 때 다른 배우는 집중에 방해 안 되는데 그분이 왔다갔다하면 자꾸 신경이 쓰여요. 더러움이 그분 캐릭터 설정인데 촬영하지 않을 때도 몸에 벼룩 있다고 긁고 다니죠. 나도 가려운 것 같아서 따라 긁기도 한다니까요. 첫회를 다 같이 모여서 보기로 한 날 위스키 한병 들고 와서 죽 돌리고 또 다른 약속 장소로 들고 가시더군요. 술을 그렇게 즐기며 마시는 여유가 멋있어요.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어도 아주 멋있어요.”
프린스들(김재욱, 김동욱, 이언). “어린애들, 다 남의 거 같아서. 스물대여섯살 보면 자꾸 어린애 같아요. 거기에 끼어 놀고 싶다기보다 내 나이에 몰입할 게 따로 있는 거죠. 내가 77년생인데 80년처럼 하고 다니면 불편할 것 같아요. 하긴 그런 친구도 있는데 누군지 말해줄까요.”
전도연. “사랑을 뜨겁게 해봤어야 그런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애기도 없고, 그런 처절한 사연을 겪어보지도 않고 <밀양>에서 하는 연기를 보면서 존경스러웠어요. 저는 제 안의 개인적인 것들을 많이 버리지 못해 눈치를 보는데, 눈치보지 않고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하유미. “나는 내가 섹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니까요. 가수할 때 컨셉으로 밀고 간 적은 있지만. 성숙해지면 섹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긴 했어요. 지적인 게 먼저 가면 섹시함이 따라오지 않을까. 하유미 선배가 그런 것 같아요. 내부에 쌓아올린 뭔가가 파워처럼 느껴져요.”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한유주는 끝까지 가보고 싶은 캐릭터이지만 아직 많은 걸 보여주지 못했으니 기다려달라고 한다. 양다리도 아니라고 한다(드라마와 달리 실제로 맘이 가는 캐릭터는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한결이라고 말해 옆의 매니저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건 이 드라마 다음의 선택일 것 같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