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하드4.0>을 보고나니 대체 존 맥클레인의 매력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흔히 말하는 것은 슈퍼히어로처럼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람보나 코만도 같은 근육덩어리도 아니며 007 제임스 본드처럼 멋지지도 않은, 보통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액션영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매력을 설명하자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도 그런 경우일 텐데 맥클레인과 많이 닮아 보이지 않는다. <하이눈>의 게리 쿠퍼처럼 홀로 악당들과 맞서는 서부극의 고독한 총잡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도 개운치는 않다. 시대가 다르고 무대가 다른데다 서부극의 영웅들보다 훨씬 말도 많고 욕도 잘한다. 맥클레인의 거친 말투에 러닝셔츠를 입은 외모를 덧붙이면 블루컬러 계급의 전형적 이미지가 나온다. ‘블루컬러 액션영웅’이라는 정의는 그런 점에서 적절하지만 그런 계급 규정이 충분한 설명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악당들이 특별해서 맥클레인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악당 가운데 <더 록>의 에드 해리스 정도 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 인물은 없다. 악당 캐릭터만 놓고보면 <다이하드>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맥클레인의 독보적 매력은 그가 경찰조직과 맺는 관계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1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그는 정상적인 조직질서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맥클레인이 대화하는 상대는 조직의 말단에 있는 흑인경찰뿐이며 기존 경찰조직은 물론 FBI도 그의 협력자가 되지 못한다(오히려 훼방꾼에 가깝다). 맥클레인은 여기는 너의 관할도 아닌데다 혼자이니 가만있으라는 조직질서의 명령에 반발한다. 명령에 잘 따르는 합리적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 액션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반면 조직은 번번이 어리석은 대응책으로 관객의 한숨을 자아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료제로 대변되는 기성 질서를 거스르는 일탈의 쾌감이다. 어떤 면에서 <다이하드> 시리즈의 진정한 악역은 테러리스트라기보다 관료나 경찰 상층부 또는 출세주의자들이 맡고 있다. 기성 질서의 기능에 잘 따르며 영악하게 행동하는 인물들은 종국에 한방 얻어맞는데 1편의 밉살스런 기자가 대표적인 예다. 맥클레인은 조직사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역주행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다이하드4.0>은 <다이하드> 시리즈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FBI나 보안시스템은 무기력하며 맥클레인은 수사를 조직에 맡겨두지 않는다. 범죄자들이 모니터를 조작할 때 속수무책 당하는 관료조직과 대조적으로 그는 모니터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온몸 부딪쳐가며 해결해간다. 조직 상층부가 모니터에서 국회의사당이 폭파되는 장면을 보며 경악하는 동안 발로 뛰는 형사 맥클레인은 직접 폭파 현장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맥클레인과 가장 흡사한 영웅이 있다면 <공공의 적>의 형사 강철중이 아닐까. 맥클레인에 비해 훨씬 무식하고 정의감도 별로 없지만 교통경찰 제복을 입고도 회칼을 든 깡패 서넛을 제압하는 그 자 말이다. 마침 강우석 감독이 <공공의 적> 속편으로 <강철중>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니 맥클레인과 강철중의 공통점을 생각하게 된다. 관료나 엘리트하고 사이좋게 지내기 애초에 글러먹은 남자들이 현대의 영웅상 가운데 하나다.
P.S.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면에 정희진씨를 대신해 이번호부터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씨가 합류했다. 그동안 날카로운 시선으로 가부장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해주신 정희진씨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