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영화가 호황이라는 건 절대 인정 못하겠다”
2007-08-01
글 : 김도훈
사진 : 오계옥
<용이 간다>로 부천에 깜짝 초청된 미이케 다카시

용이 왔다. 올해 부천영화제에 깜짝 초청된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용이 간다>는 숫제 놀이다. 플레이스테이션용 액션 게임 <류가 고토쿠>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영화=놀이”라는 미이케의 공식에 아주 잘 들어맞는 영화로, 끈적끈적한 신주쿠 뒷골목의 인간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즐겁게 노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미이케 다카시 영화지!’라며 무릎을 친다면 미이케의 면박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일년에 서너편의 영화를 뚝딱뚝딱 주문생산하는 열정적인 장인이다. 제작사에서 부탁하는 영화라면 웬만한 것은 다 오케이다. 여전히 비디오용 V시네마와 TV드라마를 만들면서 때때로(최근에는 종종) 상업적인 메이저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미이케는 또 “감독의 개성을 자의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는 재미없다”고 내뱉는 남자이기도 하다. 미이케 다카시는 부천에 도착하기 겨우 이틀 전에 신작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의 촬영을 끝마쳤다.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는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과 일본의 시대극을 마음대로 뒤섞어 만든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부천에 모인 몇몇 일본 관계자들에게 슬그머니 물어보니 “12세기 사무라이 영화에서 검을 빼고 권총을 집어넣은 형국”이란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물론이다. 미이케의 세계에서라면.

-<용이 간다>는 깜짝상영으로 공개된다. 그런데 게임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뭔가.
=다르게 만들어도 된다기에. 내 영화를 보면 게임과 전혀 관계없는 부분도 많다. 게임회사에서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좋다기에 뛰어든 거다.

-게임은 직접 해보았나.
=3일간 쉬지 않고 했다. (웃음) 끝까지 했더니 아주 재미가 있더라. 완전히 중독될 것 같은 재미였다. 하다보니 이렇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 그대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게임 세대가 아니어서 이전에는 별로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체 쉬운 게임이라 하다가 포기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좌절감이 없고 계속해서 도전하게 만드는 게임이더라. 그래서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임의 영화화에 구미가 당겼다기보다는 주인공이 야쿠자라 승낙한 건 아닌가.
=그런 건 아니다.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들긴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드는 건 영화적 전개를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10년은 걸릴 듯한 이야기를 야쿠자를 주인공으로는 단 하룻밤에 끝내버릴 수 있으니까. (웃음) <용이 간다>를 특별히 야쿠자 영화라고 보지는 않으련다.

-<용이 간다>의 도쿄에는 거의 게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세트를 많이 사용한 건가.
=대부분은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찍었다. 게임에서도 신주쿠 거리가 매우 리얼하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알다시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촬영하기가 힘든 나라다. 한국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신주쿠에서 촬영을 하려면 몰래 찍고 빠지는 게릴라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영화의 배우들은 유명한 사람들이라 게릴라 전법도 무리였다. 경찰한테 걸리면 큰일 아닌가. 그래서 패싸움이 벌어지는 장면들은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다.

-영화상에서 꼭 필요했던 캐릭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 배우 공유가 연기하는 한국인 킬러도 나오고, 알아듣지 못할 한국말을 하는 한국인 캐릭터들도 꽤 나온다. 출연시킨 이유는.
=지금의 신주쿠를 그리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캐릭터들이다. 신주쿠에는 한국인들이 아주 많으니까.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중국인 캐릭터를 넣었을 테지. 게임에서는 그런 신주쿠의 인종적인 배경을 드러낼 수 없지만 영화는 그걸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신주쿠는 그러니까, 진정한 동아시아 커뮤니티네. (웃음)
=일본에 살면서도 한달에 한번씩은 꼭 신주쿠에서 삼계탕을 먹는다. (웃음)

-일년에 서너편의 영화를 만드는 스태미나가 거기서 나오나보다. 이번 영화는 제작비로 보아 메이저 영화급이라 할 만한데, 이렇게 메이저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적 접근법이 달라지기도 하는가.
=일본에서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예전에 했던 영화보다는 좀 큰 편이다. 요즘 일본에서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4억~5억엔 정도는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예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접근법이 바뀌지는 않는다. 간혹 영화사에서 보낸 여직원들이 좀 부드러운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 내 대답은 “다른 감독이 찍으면 된다”다. 사실 나한테 접근하는 메이저 영화사들은 대부분 영화를 좀 부숴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진 곳들이고, 요즘은 어떤 영화사건 내 방식을 웬만큼 이해하기 때문에 괜찮다.

-무시무시한 다작으로 유명한데, 그 모든 작품들에 저절로 미이케 다카시의 개성을 집어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모든 작품에 개성을 의식적으로 심어넣을 필요는 없다. 나다운 영화라는 건, 여러 영화들을 하면서 나답지 않은 것을 나답지 않게 만들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거다. 여러 장르와 예산의 영화를 만들면서 살면 그게 재미있는 거다. 감독의 개성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는 아무런 재미도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해외의 관객은 자연스레 “그래! 이런 게 미이케 다카시 스타일이지!”라고들 칭송하지 않나.
=사실 영화집단은 굉장한 엘리트 집단이다. 그 밑에 방송사가 있고, 그 하청을 받아서 내가 영화를 만들고, 또 그 밑에 V시네마가 있다. 그때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은 지방에서 외롭게 홀로 비디오를 빌리는 청년들을 위한 영화였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이 세계로 소개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지금(처럼 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소개되는) 상황은, 기적이다. 기적. 지금도 나는 V시네마에서 가졌던 자유를 메이저 영화를 만들면서도 간직하고 싶다. 문제는, 해외의 관객이나 영화관계자들이 그런 성향을 예로 들면서 미이케 스타일이라고 규정한다는 건데, 나는 오히려 그것에 구속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의 일본 영화계에서도 V시네마 시절처럼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최근 일본 영화계는 엄청난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면 자본의 논리도 심해지지 않을까.
=일단, 일본영화가 호황이라는 건 절대 인정 못하겠다. 지금 일본 영화계는 TV와 소설로 미리 검증받은 것들만 영화로 만든다. 그저 적당히 재미있으면 된다는 의식을 모두 갖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적당히 재미있게만 만든다면 물론 관객은 늘겠지만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창조력은 점점 사라지고 만다. 영화로 번 돈은 영화적 자극을 만들 수 있는 영화인에게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5년 전에 다 끝장났다. 관객이나 관수만 늘었지 예전처럼 입소문 타고 서서히 흥행되는 영화는 없다.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고 인정한 이야기들만 영화로 만들어진다.

-하긴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영화들은 작고 예쁘고 탈색된 소녀 취향의 영화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지겹고 별 재미도 없다. 핑크영화와 V시네마로부터 자라온 일본 시네마의 어두운 포스들은 거의 소개되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이 사실은 일본영화의 절반의 축인데.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은 여전히 자기다운 것에 애착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일본 영화계는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에게 예산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반동효과로, 구로사와 같은 작가들은 스스로 스폰서를 구하고 예산을 끌어모아서 자기만의 개성이 실린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보여주는 감독들은 이미 40대 후반이다. 이와이 순지가 그 세대의 끝이었다. 이와이 순지 이후로는 자기다움에 집착해서 뭔가를 창조하는 감독이 없다. 아예 없다.

-이제 인터뷰가 딱 10분 남았다. 마지막은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신작인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는 어떻게 돼가나.
=이틀 전에 완성하고 한국에 왔다.

-아니, 정말인가. 어떤 영화가 될 것으로 기대하나.
=(웃음) 제작사에서 먼저 뭘 가져와서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라 뭘 하고 싶냐며 물어보더라. 그래서 웨스턴이라고 했다. 어릴 때는 TV만 켜면 웨스턴 영화들이 나왔던 터라 잠재의식에 숨어 있었나보다. 하여간 이탈리안 웨스턴과 일본의 시대극이 융합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웨스턴 영화가 될 거다. 기대해도 좋다. 영상이 아주 죽일 거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출연한 걸로 아는데. 현장에서 말은 잘 듣던가.
=굉장히 연기를 즐기면서 해준 덕에 좋은 캐릭터가 하나 나왔다. 제작사 사람들에게 타란티노를 캐스팅하겠다고 말했더니, “그러시겠죠. 좋네요. 그래서 어떤 배우를 쓸까요?”라더라. (웃음) 그렇다면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말했고,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고 감독 대 감독으로 출연 제의를 했다. 일본에서 만드는 웨스턴 영화라고 했더니 타란티노는 좋아서 당장 하겠다더라고. 개런티도 무지 적고 일본에서 촬영해야만 하는데도 성사가 쉽게 됐다.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영화니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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