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대만 청춘들의 여름은 뜨거웠다
2007-08-02
글 : 정재혁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영원한 여름>의 장효전·장예가

10대의 성장을 여리지만 아프게 그린 영화 <영원한 여름>은 좋아한단 감정을 마음에 숨기고 청춘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 어릴 적 단짝 친구로 지낸 위샤우헝(장효전)과 강정싱(장예가)이 그리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애화(哀話)가 성장의 눈물을 자극한다. 남자와 남자의 사정, 속내를 숨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들일까. <영원한 여름>의 국내 개봉을 맞아 방한한 장효전과 장예가를 만났다. 영화 속 관계에서 비롯된 소문 때문인지 실제로 사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많았지만, 이 둘은 좀더 성숙한 우정으로 시끄러운 소문에 답했다. 운동도 함께하고, 영화도 함께 보는 친구 사이. 감독의 주문에 따라 촬영 1달 전부터 ‘사이좋게 지내기’에 돌입한 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었고, 위쇼우헝을 짝사랑하는 역할의 장예가는 ‘나는 저 남자를 좋아한다’는 주문으로 자신의 감정을 길들였다. 대만에선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는 85년생의 장예가와 좀더 선이 굵은 연기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목받고 있는 83년생 장효전.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 순간 퀴어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뜨거운 햇살이 눈부셨던 여름날 한국에 온 대만의 젊은 스타들, 그들이 말하는 아픔과 기쁨,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

소년은 아직 자라고 있다_장예가

장예가는 강정싱과 다르다. 얇게 내려간 턱선과 여린 눈매가 강정싱에 딱,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육을 전공한 장예가는 강정싱은 자신과 많이 달라 힘들었다고 한다. “저와 다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강정싱은 뭐든지 다 속으로 삼키는 역할이거든요. 모든 걸 억눌러요.” 남자를 사랑하는 설정도 그에겐 관찰과 감정의 응용이었다. 예전에 짝사랑했던 경험을 꺼내 되새겼고, 그 느낌을 살려 강정싱을 연기했다. “장효전과의 섹스장면도 힘들었어요. 시작하려고 하니 긴장되고, 망설여지고. 한번에 오케이를 받으려고 노력했죠.” 생애처음이었던 베드신, 그것도 남자와의 긴밀한 감정 장면에 대해 그는 아직도 쑥스럽고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연기는 내가 맡는 역할이 다 다르니까 상상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성격이나 과거, 혹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영원한 여름>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배우 장예가, 그에게 연기는 배움인 셈이다.

고등학생 무렵 타이베이의 한 면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니지먼트사에 캐스팅된 장예가는 그 이전까지 연예인은 본인에게 “불가능한 무엇”이라 생각한 소년이었다. “스크린에 스타들이 나오면 그냥 소리만 질렀어요.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죠.” 학교의 체육 선생님이나 운동 코치가 되고자 했던 꿈과 목표도 어느새 바뀌었다. 유덕화, 양조위와의 연기를 꿈꾸고, 일본에서의 활동에도 욕심을 내비친다.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수업이 없을 때에는 연기학원에서 몸동작, 얼굴 표정에 대한 강좌를 듣고, “장르마다 다른 느낌의 연기가 있다”며 영화관마저 교실처럼 생각한다. 이전까지 출연했던 드라마에선 모두 학생 역할만 했을 정도로 아직도 성장 중인 그이지만, 3~4년 뒤의 입대를 압두고는 “아직은 지금의 일에 더 충실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로 대만 금마장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영원한 여름>의 강정싱이 그랬던 것처럼 장예가의 미래는 영원한 것 같다.

소년의 세계는 확장하고 있다_장효전

“위샤우헝은 얄미워요, 하지만 귀엽죠.” 위샤우헝을 연기한 장효전의 말대로 자기 마음대로 강정싱을 데리고 다니는 위샤우헝은 좀 얄밉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재수생인 강정싱을 자신의 대학 동아리에 데려가려는 심보는 이해하기 힘들다. “위샤우헝은 심정이 복잡한 캐릭터예요. 어릴 때는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고, 유일하게 강정싱이 친구였어요. 그래도 고등학교 이후에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지만 강정싱에 대한 느낌은 특별할 수밖에 없죠.” 실제로도 농구하는 것을 좋아해 영화 속 농구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 있거나, 공부한다고 친구네 놀러갔다가 놀기만 했던 기억”을 영화장면에 대입했다. 강정싱의 애정을 마주하는 부분은 그에게도 역시 가장 힘들었던 난제. “사랑인지 우정인지, 위샤우헝의 마음은 끝까지 불확실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강정싱과 성관계를 하는 것도 그 친구를 내 곁에 계속 두고 싶었기 때문이죠.” 결말이 부정확한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도 그는 장예가와 토론하며 “감독님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려고 하신 것 같아요. 저 역시 부정확한 상황이 더 맞다고 봤어요”라고 말한다.

16살에 광고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장효전은 빨리 피로감을 느꼈다. 빠르게 진행되는 작업과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연예계 생활이 “귀찮고 짜증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촉박했고, 연기, 배우에 대한 정체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무렵 때마침 영장이 나왔어요. 좀 단순한 곳에서 휴식도 하면서 생각을 하고 싶었죠.” 그렇게 그는 1년을 군대에서 보냈다. “기계화됐던 연예계 생활”에 쉼표를 찍고 마음의 계획표를 그렸다. “예전엔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아무런 생각없이 했다면, 이제는 한 작품을 끝내면 휴식을 취해요. 그게 여유인 것 같더라고요.” 그는 사진과 영상, 설치미술에도 꿈을 품는다. 고등학생 시절 미술학원에 다니며 호기심을 갖게 됐고 얼마 전에는 ‘카페라테’라는 커피 브랜드 홈페이지에 사진 일기를 연재했다. “사진은 제가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매체예요. 내가 이런 걸 봤어요, 라고 글과 함께 남기는 거죠.” 외모의 굵은 선과는 달리 부드러운 감각의 사진들을 찍는 장효전. 인터뷰가 있던 이날에도 그는 작은 카메라로 이곳저곳의 그림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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