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곽경택 감독의 첫 번째 사랑
2007-08-07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글 : 김도훈
<사랑> 촬영현장

생각해보면 곽경택의 영화에서 남녀의 사랑을 본 적은 없다. <억수탕>으로부터 시작해 <태풍>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은 언제나 사춘기 소년들의 몽정 속 선망의 대상이거나 추락하는 청년들을 보듬어주는 누이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곽경택의 신작이 불쑥 내민 제목은 놀랍게도 <사랑>이다. 부둣가 일꾼으로 살아가던 유도선수 인호(주진모)는 그룹 회장의 경호실장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첫사랑 미주(박시연)가 회장의 곁에 나타나고 그녀를 둘러싼 악연의 주인공 치권(김민준)이 등장하자 인호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자 곽경택이 남자들의 세계를 무대로 어떤 사랑을 그려낼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지난 7월27일 밤 11시 <사랑>의 막바지 촬영이 진행 중인 부산 국제시장 골목 어귀는 사랑보다 뜨거운 열대야만이 기세등등하다.

이날의 촬영분은 두 남자주인공의 오랜 악연이 마침내 포문을 여는 장면.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폭염 때문에 커다란 천막형 슬레이트 지붕으로 둘러싸인 골목길은 숫제 찜질방이다. 게다가 주진모와 김민준은 골목을 가열차게 달린 뒤 온몸으로 싸우는 장면을 소화해야만 한다. 한컷 한컷 끝날 때마다 배우들의 모공에서 땀이 분출한다. 그래도 주진모는 여전하다. 10kg를 감량하고 머리를 짧게 자른데다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어도 근사한 용모는 그대로다. 문제는 김민준이다. 문신과 흉터를 포함한 특수분장과 헤어스타일 덕에 기자들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다.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꼭 이 역할을 맡고 싶었다”는 김민준은 부산 출신이라 오히려 연기에 부담이 덜하단다. “사투리가 중요한 영화는 이제 아니다”라고 말하는 남자배우 조련사 곽경택은 두 배우의 칭찬에 여념이 없다. “처음에는 채인호 역할에 주진모가 아닌 다른 배우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는데 지금은 그 배우가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김민준은 편집본을 본 사람들이 대체 저게 누구냐며 놀란다.”

몇번의 우렁찬 “컷!” 소리 끝에 폭염 속 촬영은 끝나고, 남아있는 야간 촬영을 위해 제작진은 분주히 자리를 옮긴다. 이미 부산에서 95%의 촬영을 마친 <사랑>은 추석 시즌인 9월20일 개봉예정이다.

<사랑>의 곽경택 감독

“첫사랑을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친구>가 부산을 배경으로 우정을 다룬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이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 고백하고 싶었던 거고, 내 이야기랑 친구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다 한번 모아서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근데 솔직히, 첫사랑을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남자들은 만날 첫사랑에게 그러잖아. 지켜주겠다. 같이 죽자. (웃음) 그렇게 다 주고 싶어하는 열정을 영화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더라. 근데 주위에서는 곽경택이가 어떻게 멜로를 하냐면서 우려가 참 많더라고. 사실은 나도 시나리오 쓰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아는 사람 조언대로 여자 캐릭터도 그냥 남자라고 생각하고 써봤더만 술술 잘 풀리더라.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다. (웃음) 제목도 아예 <사랑>이라고 했는데 반대도 엄청 많았다. 너무 추상적이고 뻔뻔하다고. 근데 이상하게도 <사랑>이라는 제목을 쓴 영화가 없기에 고집을 했다. 게다가 포스터에도 제목이 이미 나왔으니까 더이상 바꾸라고 할 수도 없을걸. (웃음) 현재까지 촬영은 어땠냐고? 쏘퐈쏘굿!(so far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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