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으로>는 느릿느릿한 판타지멜로다. 또한 실제 197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낸 황규덕 감독의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광주민주화운동의 물결이 몰아치던, 그리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교련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한 40대 대학교수 수영(정진영)이 꿈결 속의 나비를 쫓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이어진 수업시간, 그는 첫사랑 얘기를 들려달라는 학생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수영은 최루탄 연기가 매캐한 70년대의 캠퍼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격렬한 운동권 청년의 투쟁기 혹은 회상기가 아니다. 대학교수 수영이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려하는 것처럼, 한 가난한 학생의 지극히 사적이고 모호한 일상으로 들어간다. 수영 자취방의 낡은 벽지와 식어가는 아궁이를 타고 흐르는 현경과 영애의 노래 <그리워라>는 그러한 몽환적 무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홀로 자취를 하는 가난한 독문과 대학생 수영(정경호)은 수업시간에 한 여학생(김민선)에게 눈길이 간다. 나중에 그녀가 먼저 아는 척을 하는데 알고 보니 자기보다 선배다. 하지만 수영은 쾌활한 그녀에게 어딘지 모르게 호감이 간다. 수영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녀를 ‘삐삐소녀’라 부르기로 한다. 하지만 얼마 뒤 삐삐소녀는 학교 건물 높은 곳에서 민주화 구호를 외치다 떨어져 자살한다. 이때부터 수영이 가는 곳엔 그 삐삐소녀의 유령이라 해야 할지 실재라고 해야 할지 아리송한 그녀가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그 즈음 수영은 학교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통해 한 남자(김C)를 알게 되고 그의 동생 수지(차수연)의 과외공부를 맡게 된다. 대저택에는 오로지 수지와 정체불명의 아주머니(이수나)만이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 수지는 어딘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수영은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자신을 속이는 것인지 헷갈리는 환영과 계속 맞닥뜨리게 된다.
아마도 황규덕 감독을 여전히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1990)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별빛 속으로>가 말하는 ‘한여름밤의 꿈’은 다소 어색할 것이다. 임권택 감독 아래서 <티켓>(1986), 박광수 감독 아래서 <칠수와 만수>(1988) 조감독을 했던 그에게 데뷔작인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는 그를 비판적 리얼리즘의 새로운 적자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이듬해 자신의 두 번째 영화를 완성하고서 충무로를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1993년 파리로 건너가 홍세화 작가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영화화를 모색할 때나, 1998년 귀국해 노근리 사건을 다룬 <노근리 다리>에 매달렸을 때도 그 면모는 변함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노근리 다리>는 현재 이상우 감독에 의해 <작은 연못>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13년 만의 복귀작이었던 <철수♡영희>(2004)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다다른 <별빛 속으로>를 자신의 ‘판타지 3부작’ 중 첫 번째라고 말한다. 이제 현실을 향한 작가적 직설법 대신 좀더 유연하고 세련된 화법을 구사해보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래서였을까. 정경호와 김민선이라는 청춘스타들의 풋풋한 모습에는 70년대 이야기를 현재화된 느낌으로 봐주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어딘가 어색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영화의 모호한 분위기와 더욱 잘 어울리는 김C의 존재 또한 흥미로운 대목이다. 더불어 현실과 판타지의 상생의 길을 찾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은 수영이 첫발을 들여놓은 대저택에서 드러난다. 첫 아르바이트를 가게 된 수영 앞의 으리으리하고 음침한 저택은 판타스틱하면서도 그 시대의 답답했던 공기 모두를 상징한다. 늘 이상한 공기가 흐르지만 그 비밀은 설명되지 않고, 그 속에서 수영은 종종 환영과 맞닥뜨린다. 그것에 대해 궁금해해서도 안 되고 괜한 궁금증에 집안의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도 안 된다. 그저 매일 아르바이트비를 받아가는 것 외에 다른 꿈을 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황규덕 감독은 판타지와 현실의 그 기이하고도 불편한 동거 자체를 즐긴다. 그래야 지금의 현실과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황규덕 감독은 호기심은 허락돼도 질문은 허용되지 않던 그 시절로 돌아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서정을 끌어낸다. <별빛 속으로>의 가장 큰 미덕은 꿈꿀 수 없었던 시대의 꿈을 이야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한 중견감독의 원숙한 시선에 기분 좋게 눈길이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