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골때리는 가족이 돌아왔다
2007-08-2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심슨 가족이 왔다. 지난 20여년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온 미국 TV코미디 프로의 대명사다. 국내에도 여러 차례 방영된 바 있어 친숙한 그들이다. 20세기의 아이콘으로 시작하여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는 그들이 브라운관을 떠나 영화 스크린에서는 또 어떤 웃음을 선사할 것인가. TV코미디 프로 <심슨>이 영화 <심슨가족, 더 무비>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과 완성된 영화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한손에는 맥주를 그리고 나머지 손에는 도넛 또는 핫도그를 들고 비록 그게 상했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거라도 결코 마다하지 않고 먹으면서 쇼파에 앉아 멍청하게 텔레비전 시청을 즐기는, 그리고 술에 취해 스프링필드의 주정꾼들이 즐겨 찾는 모의 술집에 널브러져 거창한 트림이나 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이 게으른 사내 호머 심슨. 그는 위대한 위를 가졌으니 위장의 슈퍼맨이다. 또는 독실하고 성실하며 다정다감한 옆집의 기독교 신자 플랜더스를 사정없이 조롱하거나, 자식 바트를 가르칠 때는 있는 힘껏 목을 조르는 매우 몰지각하지만 일관된(?) 이웃 사교와 자식 교육법을 가졌다. 그는 좋은 이웃과 좋은 아버지의 반대말이다. 지능은 젖먹이 막내딸 매기보다 확실히 떨어지는 것 같고 때때로 사고를 칠 때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 아들 바트보다 한수 위다(하지만 그렇다고 바트의 말썽 실력이 부족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런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착한 현모양처(이지만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마지를 아내로 만났다는 것과 그에게 리사라는 똑똑하고 교양 넘치며 게다가 정치적 진보주의자이기까지 한 딸 리사가 있다는 것은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텔레비전 코미디 시리즈 <심슨>의 이 가족은 아주 이상한 구성원들이다.

그뿐인가. 원작자 매트 그로닝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흔한 도시의 이름이어서 지었다는 스프링필드라는 이 마을에는 심슨의 가족을 포함하여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이 많다. 어른들은 패잔병 같고 아이들은 못됐고 그중에서 드물게 착하거나 성실한 어른과 아이는 너무 지나쳐 바보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 이 평범한 마을의 이상한 부조화를 보는 것이 그렇게나 신날 수가 없다. 심슨 가족을 포함한 스프링필드 사람들은 세속과 순수가 뒤섞인 조크와 유머를 부리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타임>은 “20세기 최고의 텔레비전 시리즈”라고 <심슨>을 칭했을 것이며, 우리 역시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보아왔기 때문에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미국인의 표상

호머 심슨과 그들의 가족은 지난 18년간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애니매이션 캐릭터가 되었으며, 아마도 가장 멍청한 미국인의 표상쯤으로 말해도 괜찮을 만한 호머의 삶은 미국인들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미국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사랑을 받는다. 1960년대 <플린스톤> 시리즈가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이후 30여년 동안 그런 애니메이션 시트콤이 없었지만, <심슨>이 그 자리를 차지한 뒤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1989년 정식으로 시작한 뒤 매주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면서 올해 5월 400회를 넘었고, 이번 가을 19시즌이 시작될 예정이다.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호머가 지르는 탄성 “D’oh”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었으며 <심슨> 시리즈를 주제로 한 각종 연구들이 쏟아져 나온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미국 텔레비전 코미디 시리즈로는 가장 장수 프로그램인 <심슨>의 떨어지지 않는 인기를 두고 해석이야 많겠지만, <심슨>을 부러워하는 후배들의 증언처럼 더 뜨거운 말도 없다. <심슨>을 더 강력한 성인풍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가공하여 제작한 것이 분명한 <패밀리 가이>의 창작자 중 한명인 세스 맥팔렌이 <심슨>에 관해 “그건 마치 <스타트랙>에 관해 SF팬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심슨> 시리즈라는 장르’의 관객을 창조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리며, <사우스 파크>의 작가 매트 스톤이 “심슨은 우리 존재의 맹독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패러디를 했고,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그건 <심슨>에서 한 거잖아!’, 이 말은 회의 때마다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라고 한탄할 때, 후대의 그 악동 캐릭터들조차 심슨가의 또 다른 자식들이 된다. 게으르고 뻔뻔한 인물 호머 심슨은 모든 악동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니 호머 심슨을 위시한 <심슨>의 이 캐릭터들의 매력을 한데 모아 장편영화로 만들어볼 계획이 없었을 리 없다. 팬들의 요구도 적지 않았다. 미국의 SF 장수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랙>이 이미 오래전 영화 버전을 내놓았다는 걸 감안한다면 텔레비전 코미디 시트콤의 마스터피스인 <심슨>이 지금에서야 영화로 나온 건 거의 미스터리일 정도다. 원작자 매트 그로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뜻처럼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즌4의 에피소드 <캠프 크러스티>나 혹은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이었던 <판타지아>를 패러디하여 <심스타지아>로 만들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원작자 매트 그로닝이 각본과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동시에 <심슨>의 연출 경험이 있고 <몬스터 주식회사>의 연출도 해봤던 데이비드 실버먼이 감독을 맡고, 그동안 이름을 떨쳐온 제임스 브룩스, 알 진 등 <심슨> 시리즈의 제작 주요진들이 총동원되며 드디어 영화화 계획은 윤곽이 잡혔다. 무엇보다 중요했을 성우들 역시 TV시리즈의 익숙한 목소리들이 고스란히 투입됐다. 2001년 성우들의 출연을 확정 지은 뒤 각본 작업을 시작했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100번 이상 각본을 거친 끝에 지금 우리가 만난 <심슨가족, 더 무비>가 탄생한 것이다.

스프링필드를 벗어난 심슨 가족?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대통령이 된 미국. 그러나 여전히 그러거나 말거나 스프링필드에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호머 심슨. 그는 지붕을 고치러 올라가 아들과 장난을 치거나 혹은 벌거벗은 채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라고 아들을 꾀고 있다. 왜 아닐까, 아버지에게 질세라 바트는 또 기어이 그렇게 한다. 마을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지자 리사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펼치지만 수월하지 않다. 한편 호머가 얻어온 돼지 한 마리가 문제의 발단이 된다. 호머가 공짜 도넛에 눈이 팔려 돼지똥이 담긴 통을 호수에 버리고 가자 스프링필드의 호수는 완전히 썩어버리고 미국 정부의 환경보호국은 환경오염에 빠진 스프링필드를 돔으로 가둬버린다.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 호머 가족을 습격하고 그들은 매기가 발견한 통로로 빠져나가 알래스카로 향한다. 그러나 정부가 스프링필드를 지구상에서 없앤 뒤 새로운 그랜드캐니언으로 위장하려는 속셈을 선전하는 TV광고를 본 마지와 자식들은 스프링필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마지못해 호머도 가족을 뒤따라 나선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심슨 가족이 스프링필드를 벗어나는 희귀한 경험을 보게 된다. “호머 심슨식의 <트루먼 쇼>”라거나 “호머 오디세이”라는 말은 그런 뜻에서 붙여졌다.

미국의 대중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내게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세 가지 웃음은 폭스 네트워크를 위한 광고, <오스틴 파워>에서 영감을 얻은 스케이트 보딩 시퀀스,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독특한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영화 도중 화면 밑으로 폭스사를 선전하는 문구를 내보내는 장면과 바트가 나체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동안 그의 x추를 교묘히 가려내는 연출의 재치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호머가 호수를 전기로 지지는 장면이다. 중요한 건 여기에 <심슨> 시리즈의 전통 중 하나인 패러디 장면이 꼽혔다는 것인데, 영화에는 환경보호를 강조한 엘 고어의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리사가 ‘짜증나는 진실’(An irritating Truth)에 대해 강연하는 장면이나, 환경운동을 부르짖던 록밴드 그린데이가 썩은 호수로 침몰하면서 전자 악기를 버리고 바이올린을 켜며 <타이타닉>을 패러디하는 장면 등이 들어 있다. 스파이더 피~그, 스파이더 피~그라며 <스파이더 맨>의 주제가를 고쳐 부르는 심슨의 모습을 역시 빼놓을 수 없으며, 톰 행크스가 정부의 정책을 광고하는 모델로 나오는(물론 자신의 목소리로) 장면 역시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이어받은 흥겨운 전통이다.

과욕부리지 않는 깜찍한 코미디

<심슨가족, 더 무비>에 대한 최상의 찬사는 <타임>의 필자 리처드 콜리스가 한 “이 영화의 작은 기적은 당신에게 일말의 두통도 주지 않은 채 (시리즈의) 네배의 시간을 풀어낸다는 것이다. 영화는 스스로의 보폭을 알고 있고 그 개성을 유지한다. 더 무례해지거나 비꼬려고도 하지 않고 더 크거나 나아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리즈 초반에 제임스 브룩스가 세워놓은 그 룰을 따른다”라는 말일 것이다. 일리가 있다. 물론 <심슨> 시리즈만의 치고 빠지는 식의 조크와 유머가 굵직한 서사 안에서 다소 밋밋해진 면이 있어,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호머가 마치 정장을 갖추고 입 밖으로 음식을 튀기지 않으면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텔레비전 시리즈의 여러 재미를 안고 있다는 건 공감할 만하다.

<심슨가족, 더 무비>를 볼 때 우리를 사로잡는 건 결코 이야기의 매끈함과 인간사의 매너가 아니다. 또한 심슨가와 스프링필드를 통해 미국을 본다는 건 짜릿한 말이며 또 가끔은 그게 사실이지만 그건 너무 호사스런 수긍이다. 그보다 우리는 호머처럼 일상을 유치하고도 나태한 자태로 즐기는 그 캐릭터들의 과장됨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당신은 마지와 리사, 매기의 세계관, 그러니까 착하고 현명한 땅에 결국 도착하겠지만, 당신이 즐거워 웃는 순간은 호머와 바트의 난장판 진창 안에서 놀 때다. 애초에 호머와 스프링필드의 괴팍한 사람들이 대다수 블루컬러라는 건 사실 중요하다. <심슨>은 계층의 조건을 과장되게 유희한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대되는 건 이 영화가 속편에 대한 암시를 남긴 것인데, 그때 늙지 않은 호머의 주접을 보기 위해 다시 기다릴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다. 호머의 유머가 좀더 괴팍한 블루컬러의 맹렬함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도 이 노란 인간들의 주접이 귀엽다.

누가누가 나왔나

<심슨가족, 더 무비>에 캐스팅된 스프링필드 주민은?

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텔레비전 시리즈 <심슨>에는 번갈아가며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영화 <심슨가족, 더 무비>에 나오는 조연들도 모두 그 낯익은 얼굴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조연을 모두 주요하게 등장시키기는 건 무리였기에 이번 영화에서는 다소 주변으로 밀려난 캐릭터와 좀더 부각된 캐릭터들로 나뉜다. 짓궂기로 치면 호머와 만만치 않은 마지의 심술궂은 두 쌍둥이 언니 패티와 셀마, 스프링필드의 블루컬러들과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원자력 공장의 사장 번즈와 그의 비서 스미더스가 주조연 자리에서 다소 밀린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스프링필드의 일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여전히 한몫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바바바~밤, 바바바~밤, 하며 이십세기 폭스의 로고송이 울릴 때 따라 부르고 있는 소년은 상상력 많고 코 파기 좋아하는 랄프다. 뒤를 이어 갑자기 달나라가 등장하면 거기 이치(쥐)와 스크래치(고양이)가 있다. <톰과 제리>에 대한 심슨판 패러디의 진수이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바트와 리사가 공유하는 매우 드문 프로그램이다. 바트가 호머 대신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되는 옆집 아저씨 플랜더스는 두 아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는 착한 홀아비고, 마을에 재앙이 생길 것을 계시하는 할아버지는 심슨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다. 한편, 본의 아니게 재앙의 돼지를 호머에게 건네는 역할을 하게 되는 마을의 변태 엔터테이너 크러스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시건방지게 뉴스를 전하는 앵커, 언제나 사건을 안주 삼고 주정꾼들을 친구 삼는 술집의 주인 모, 사건이 일어나건 말건 수수방관하고 일처리의 무능함과 도넛을 좋아하는 걸로 치면 호머의 거의 유일한 적수인 경찰서장 클랜시가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심슨가족, 더 무비>의 성우들이 역시 시리즈의 전통을 따라 여러 역할의 목소리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호머 역의 댄 카스텔라내타는 20여개의 캐릭터를, 바트 역의 낸시 카트라이트는 7~8개를, 플랜더스 역의 해리 시어러와 경찰서장 역의 행크 아자리아는 각각 10개가 넘는 배역을 목소리 연기한다. 그들이 누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알아맞혀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고보니, 18년을 넘게 해온 이 성우들 역시 스프링필드 지역민으로 쳐줘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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