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續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예비 신부 매혹시킨 위험한 로망
2007-08-31
글 : 남은주
<록키 호러 픽처쇼>

정말이지 ‘내 인생의 영화’라는 칼럼명이 유감이다. ‘내 인생’과 ‘영화’ 사이에서 아우성치는 수식어들, 예를 들면 내 인생 ‘최고의’ 영화, 내 인생을 ‘바꾼’ 영화, 내 인생 ‘언제나’ 이 영화와 함께… 등등 때문에 이 칼럼은 클래식 영화 선집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감히 인생을 걸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나면, 누가 영화를 두고 내 인생을 판단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

일찍이 <죽은 시인의 사회> 단체 관람을 주선했던 선생님께서는 굵은 대자로 30분 동안 내 머리를 때렸다. 조금 전까지 ‘내 인생의 여성주의 영화’를 이야기하던 선배는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말을 꺼내자 금방 눈이 똥그래졌다. 그들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도서목록이나 영화목록 따위로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둔한 시절을 탓해야 한다. 영화는 누구 인생에도 지표 같은 건 되지 못한다. 특별히 내 인생을 망치거나 말아먹은 영화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스크린을 자기 동일시와 투사의 대상으로 삼는 마음처럼 어떤 영화를 최고로 꼽는 마음에는 ‘내 인생을 이 영화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욕망과 회한이 90%쯤 되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내가 결혼할 무렵에는 영화 <록키 호러 픽처쇼>가 동일시와 매혹의 대상이었다. 1998년 개봉할 때는 무심히 지나쳐버렸지만 2년 뒤 결혼 즈음에 이대로 결혼하기엔 뭔가 억울하고 껄끄러워진 내 눈에 보석반지를 받아들고 교회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젊은 시절 앳된 얼굴의 수잔 서랜던이 갑자기 떠올랐다. 물론 청교도의 후예인 백인 부르주아 여성처럼 결혼생활을 통해 유지해야 할 가치도 없는 주제에, 청혼할 때 실반지도 못 받은 주제에 수잔 서랜던과 나를 염치없이 동일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영화 같은 일이 있기를, “신이여 바라건대, 우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랐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들을 맺어준 스코트 박사를 찾아 여행을 떠난 자넷(수잔 서랜던)과 브래드(배리 보스위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폭풍을 피해 찾아든 외딴 성에는 폭력과 성, 과학과 창조의 힘으로 성을 지배하는, 트란실바니아 은하계 소속 트랜섹슈얼 행성에서 온 프랭크 N. 퍼터 박사(팀 커리)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모인 정체불명의 괴팍스런 손님들은 사실상 지구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외계인들이란다.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라디오로 닉슨 대통령 사임 연설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곳곳에 권력과 성에 대한 은유를 가득 채워놓았다. 입던 옷을 다 빼앗기다시피 하고, 성 안으로 걸어들어간 커플이 망사스타킹과 하이힐을 신은 팀 커리를 만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직설을 추종하는 이들에게도 프랭크의 성은 낙원이다. 뮤지컬은 못 봤지만 난교와 배설 같은 마약, 살인과 식인 등을 모두 무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다른 성의 침입을 일절 배제하는 견고한 제도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동성애까지 포함한 비혼자들이 가질 만한 모든 경험이 결혼생활의 풍광을 이루기를 바랐었나? 영화 속 성이 통째로 트란실바니아 은하계로 날아갔던 것처럼, 일단 제도에 익숙해지고 그 안락함에 취해서 살다보니 내가 가졌던 욕망 자체도 날아간 지 오래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혹시 ‘인생’은 무시하고 나의 영화, 나만의 영화를 이야기하라는 의도였을까봐 덧붙인다. 삐리리한 인생의 갈피 사이에 접혀 있던 나만의 영화의 추억을 말한다치더라도 얼마나 독자성을 갖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서대문 로터리 화양극장에서 새알초콜릿을 먹으면서 영화 <E.T.>를 보다가 E.T.의 색색 초콜릿에 눈이 뒤집힌 사람? 영화 끝에는 손가락을 쪽쪽 빨아 앞좌석에 씩 닦고 나온 사람? 그날 5시대에 영화를 본 어린이들 100명 중 10명은 그랬을 법한 추억 말고 <록키 호러 픽처쇼>에는 진정 나만의 소유가 될 사실들이 있다. 사당역에서 과천방향 출구에 있던 비디오방과 신림초등학교 앞의 비디오가게에 있는 <록키 호러 픽처쇼> 테이프에는 록키와 호러 사이에 하트 표시가 있다. 미국에서는 집단제의를 통해 이 영화를 보는 게 유행이었다지만 나중에 결국 비디오테이프를 살 때까지 나만의 단독제의, 영역표시는 계속 이어졌다. 이 정도는 되어야 영화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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